밤에 쓴 인생론
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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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 시(詩)는 많이 접했지만, 그의 수필은 처음이다. 이전에 시인의 아들 박동규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를 읽으면서 박목월 시인이 가정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고 따뜻한 마음으로 가정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시인이 직접 자신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이 책 <밤에 쓴 인생론>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시인은 내면의 성찰을 통해 가정과 일상의 삶의 의미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시인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천사 미카엘의 미소가 가장 의미심장하고 신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한 청년의 도움을 기억하고, 자신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비록 그들이 사기꾼이라 할지라도 도우려고 힘썼다고 한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에서 작은 친절과 사랑의 의미를 잔잔하게 알려준다. 그는 계속해서 톨스토이의 글을 인용한다. “미래에 있어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오로지 현재의 활동이다. … 인간의 사랑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따라서 현재로도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pp. 77~78).

 

시인은 또 괴테의 <미뇽의 노래>의 시구와 그가 헤어진 여인을 백발이 되어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강릉 가는 기차 속에서 ‘실연(失戀)해 보신 적이 있느냐’고 묻는 여대생이 결국 자살한 것을 알고 좀 더 진지하게 대답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이러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사랑과 고독, 이별과 만남,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인의 수필에는 시인답게 시(詩)가 많이 나온다. 김춘수 시인의 <꽃>, 괴테의 <미뇽의 노래>, 헤세의 시구와, 릴케의 시, 칼 부세의 시,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의 시, 절친 조지훈 시인의 시 등. 물론 시인 자신이 쓴 시들도 많이 소개한다. ‘남도 삼백리’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저 유명한 <나그네>를 다시 접했다. 아, 학창시절 외웠던 이 유명한 시구를 눈감고 외워 본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 술 익은 마음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시인은 이 시의 배경을 밝힌다. 시인의 나이 이십대 후반, 2차 세계대전은 절정에 다다랐다. 그 당시 시인의 삶은 암울하고 이울어질 징조가 보였단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시인은 남도적(南道的) 향토적 세계에 침잠하여 구름에 달 가듯 가는 과객으로서의 체념과 달관으로 이십대 후반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의외였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체념과 달관으로 살았다는 것이….

 

어쨌든, 이 가을의 문턱에서 박목월 시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사색(思索)의 계절 가을에 가정의 소중함, 믿음과 사랑, 인생의 고독과 이별, 시(詩)의 가치, 독서의 즐거움 등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이 책을 천천히 읽어 가면, 삶과 그 의미에 관해 차분히 숙고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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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질문 20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4
줄리언 바지니.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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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하나같이 흥미로운 인생 질문 스무 가지에 대해 심리학자와 철학자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했다. 철학은 가치를 따져 묻는 일이고, 심리학은 사실 연구에 더 집중하지만 이 두 영역이 만나 상호보완적으로 균형 잡힌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도록 독자를 인도한다. 확실히 장밋빛 해답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깊이와 통찰력을 제공한다.

 

자기계발서에서는 최고가 되라고 도전하고, 성공과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그것들을 쟁취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답게 살라고 부추긴다. 이런 자기계발서를 읽는 순간에는 정말 뭔가 될 것 같은 마음에 들뜬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다르다. 최고가 되지 않아도 실패한 삶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정직하게 인정한다. 우리의 능력 하나를 향상시키면, 불가피하게 다른 능력을 잃기 마련이라는 사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완벽해질 수도 없다. 행복은 너무 모호한 개념이라서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추구할 수 없다. 그렇다. 행복은 미래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지금 행복해질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가치 있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자기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 책은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도대체 ‘자기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인간이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져가는 과정에 있는 자들이라면, 자기답다는 것을 어떤 고정된 이미지에서 찾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속적인 자기 창조의 과정 안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해야 한다. 나에게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치러야 대가를 치룰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과 같은 질문에 정직히 답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관해서 심리학자와 철학자의 관점은 상당히 다르다. 심리학자는 빅터 프랭클을 인용하면서 창조 행위를 통해, 혹은 경험을 통해, 혹은 삶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태도를 분명히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반면 철학자는 좀 더 냉철하다. 사람은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한한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할 때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점이 아니라 충분한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처럼 많이 격려 받거나 고무되지는 않았다. 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세워놓은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삶의 의미와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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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자수 - 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My Lovely D.I.Y. 시리즈 8
학연출판사 편집부 지음, 노인향 옮김, 최수정 감수 / 미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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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접어든 아내가 자수를 배우겠다고 했다. 특히 예쁜 꽃들을 수놓고 싶어 한다. 이전에도 아내는 들에 나가면 예쁜 들꽃들을 책 사이에 껴서 말려 책갈피로 쓰곤 했다. 이제 자신이 직접 수놓아 집안의 소품들을 장식하고자 한다. 아내는 이런 글을 써 놓았다.

“토담 아래 옹기종기 모여 핀 복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백일홍, 분꽃을 수놓고 싶다. 얌전히 무릎에 얹은 수틀에 봉숭아물 들인 손으로 흙내 나는 꽃들의 이름을 수놓고 싶다. 키 순서대로 쪼르륵 세워 수놓고 머리 맡 창에 커튼을 만들어 꿈에서도 그들을 만나고 싶다.”


이런 아내의 바람을 어느 남편이 못 본 척할까? 이제 돋보기를 써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조금은 했지만, 의욕 있게 고상한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아내를 기쁜 마음으로 격려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건넸다. 아내는 또 이렇게 적어 놓았다.

“꽃향기처럼 찾아온 책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건네주었다. 제목도 <나의 첫 자수>여서 뭉게구름처럼 부픈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책 하나 건네고 아내의 설레는 마음을 얻었으니 수지맞는 장사다.

책을 살펴본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다. 일주일이 지나 아내에게 물었다.

“책 어때?”

생각보다 시큰둥하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내가 기대했던 책이 아니어요. 내가 처음 자수를 시작하는 마당에 <나의 첫 자수>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데, 내가 원하던 꽃 자수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정말 자수의 쌩 기초만 실어 놓았어요. 그리고 오래된 일본판 자수 책을 옮겨 놓은 것 같아요.”


아내는 서점에 나가 자신이 원하는 자수 책 한 권을 사왔다. 거기에는 밑그림 그리기를 시작으로 씀바귀, 아메리칸 블루, 민들레, 백일홍, 알리움, 아네모네, 채송화, 능수화, 엉겅퀴, 코스모스, 구절초 등 수많은 꽃들을 스케치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어떻게 씨앗, 꽃받침, 줄기, 등을 수놓을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자수한 것들을 사진 찍어 실어 놓았는데, 한 페이지 가득 채운 사진 하나하나가 자수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었다.

 

두 책을 비교해보니, 내가 건넨 <나의 첫 자수>는 30년 가까이 집안일을 하며 바느질도 어느 정도 한 중년의 여인에게는 너무나 쉬운 기초 책이었다. 이 책은 자수에 필요한 기본 도구와 실 사용법, 바느질의 기초를 설명하고, 헝겊에 놓는 다양한 무늬의 꽃 자수 디자인, 그리고 주방 용품, 바느질 도구, 외출용품 등에 놓은 자수 소품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이제 막 결혼한 새색시나 실과 바늘을 거의 사용해본 적이 없는 초보자 아가씨들에게는 유용하겠다 싶다. 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독자를 잘못 만난 것이다. 아내의 말마따나 ‘서로 잘못 만난 것이다.’ 아내의 바람에 걸맞은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선물함으로 나는 살가운 남편으로 톡톡히 점수를 땄다. 그리고 자수라는 여인들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여인들의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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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 역명에 담긴 한자, 그 스토리와 문화를 읽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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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어쩌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각 역 이름의 유래에 관해 호기심이 생겼다. 영등포는 왜 영등포고, 노량진은 왜 노량진이며, 남영은 왜 남영일까? ‘포’(浦)나 진(津)이 들어가면 포구나 나루와 관련이 있고, ‘영(營)’이 들어가면 그곳에 군대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역사를 찾아내는 일은 번거롭게 느껴져 시도하지 않았다. 게다가 포구 앞에 왜 ‘영등’이 붙었는지, 나루 앞에 왜 ‘노량’이 붙었는지, 그 궁금증을 풀길이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나의 호기심도 채워주고 한자도 공부시켜 줄 것이라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course1, 서울역을 시작으로 시청, 종로, 동대문, 신설동, 제기동, 청량리까지 순식간에 읽어갔다. 서울은 큰 마을을 가리키는 ‘서라벌’이 우리말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며 정착한 말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 때 위례성(慰禮城), 한성(漢城)으로 부르다가 조선 시대 때 한성(漢城)과 한양(漢陽)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의 타당성을 논한다. 이 외에도 중국의 옛 수도를 따라 장안(長安)이라 말하기도 하고, 경조(京兆) 혹은 경사(京師)라고 쓰였단다. 일제 시대 때는 경성(京城)이라 적었는데, 가장 좋은 이름은 서울, 역시 서울이라고 말한다. 서울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렇게 많은 역사와 한자를 접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이 책, 이런 식이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있었다. 종로(鐘路)는 시간을 알리는 종루(鐘樓)가 있어서 얻은 것이며,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종로 피맛골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다. 제기역(祭基驛) 근처에는 선농단(先農壇)이 있어서 붙여졌고, 창량리(淸凉里)는 신라 말엽 창건한 청량사(淸凉寺) 때문에 얻은 이름이란다. 저자는 ‘청량’과 관련해 ‘염량(炎凉)’과 ‘염량세태(炎凉世態, 잘 나가는 사람 앞에서 굽실거리고 어려운 사람 깔보는 사회 풍조)를 소개한다. 영등포(永登浦)의 ’영등(永登)은 ‘영원히 번창하는’이란 뜻인데, 특히 ‘등(登)’은 벼슬길이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영등포 건너편 국회 의사당을 떠올리며 우리 국민이 인재를 제대로 뽑아 의사당에 등용(登用)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각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어서 이 땅을 사랑하게 만든다. 각 역(驛) 이름의 역사를 따라가며 많은 한자를 수록해 놓고 있어, 수많은 한자와 고사성어까지 배울 수 있다. 책 제목이 <지하철 한자 여행>인데, 한자 여행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 여행이다. 정말이니 역사와 문화 상식과 한자 지식을 충분히 업그레이드 시키고도 남는 책이다.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 지하철 1호선을 넘어, 모든 지하철역과 기차역의 이름에 담긴 한자의 의미와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책들이 계속 출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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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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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 터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우리를 절망시킨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보고 분노하고, 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연약함으로 인해 절망한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야 이 절망의 시대를 견디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자에게 이 인문학 강연집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여정의 출발선상에 세운다. 지금이야 말로 자기계발과 성공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고민들을 풀어 놓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강신주는 절망적인 시대에 제자백가 사상이 꽃 피웠듯이, 진짜 절망할 상황에서 인간은 출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며 희망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는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parrhesia), 즉 ‘진실 말하기’를 소개한다. 진실을 목도할 때 위대한 철학이 생겨났듯 우리는 삶의 현실과 관련 있는 철학을 해야 한다. 그는 상아탑에 갇혀 철학자 놀이를 하지 말고 진짜 철학자가 되라고 도전한다. 그의 강연은 쉽고 뭔가 끌리는 매력이 있다. 때로 너무 한 쪽을 힘주어 말해서 인상적이긴 하지만, 과격하다는 느낌을 갖게도 한다.

 

이현우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의 끝없는 세 개지 욕망을 지적한 것은 명쾌하다. 인식 욕망, 성적 욕망, 그리고 권력욕망. 그는 니콜라이 고골의 <광인일기>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인간은 대단히 고상한 열망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저급한 욕망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욕망은 학습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고미숙은 ‘욕망과 존재의 계보학’을 보여준다. 오늘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들추어낸다. 내가 좋아하는 강준만 교수는 ‘감정독재의 본질, 증오’라는 타이틀로 먼저 우리의 정치현실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한다. 초강력 일극주의와 승자독식과 속도주의 체제, 연고주의, 미디아 당파주의 등의 설명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이전과는 달리 명징한 해답이 없다. 스스로가 밝혔듯, 그는 양비론을 말하는 ‘비겁한’ 지식인이 된 것인가? 좋게 말해, 균형잡힌 학자가 된 것인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가 처음 접한 정여울의 글이다.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거대 담론보다 절망적인 사회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세를 말한다. 그는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대참사를 보며 집단의 사악함과 개인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낙하산 비유를 말한다. 절체절명의 높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위태로운 낙하산을 내일도 무사히 쓸 수 있게 찢어진 구멍을 꿰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비유를 접할 때,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쁜 놈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놈들을 없애는 과정에서 낙하산에 더 큰 구멍이 생길수도 있겠다 싶다. 정여울의 주장이 옳다. 개인의 위대함은 ‘악에 맞서는 악’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다.

 

시인 문태준은 물질적 욕망이 담겨있지 않은 시(詩)들을 소개하면서 물질적 욕망을 무화시키는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권한다. 정병설은 <구운몽>을 소개하면서 환상이 때로 절망을 이기고자 하는 자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명우는 불안의 시대에 강한 자아의 확장이 아니라, 공감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있는 존재로 살기를 희망하라고 도전한다. 그것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노명우의 마지막 은유처럼, ‘요괴인간’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오늘도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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