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지금 우리 사회에서 터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우리를 절망시킨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보고 분노하고, 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연약함으로 인해 절망한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야 이 절망의 시대를 견디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자에게 이 인문학 강연집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여정의 출발선상에 세운다. 지금이야 말로 자기계발과 성공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고민들을 풀어 놓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강신주는 절망적인 시대에 제자백가 사상이 꽃 피웠듯이, 진짜 절망할 상황에서 인간은 출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며 희망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는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parrhesia), 즉 ‘진실 말하기’를 소개한다. 진실을 목도할 때 위대한 철학이 생겨났듯 우리는 삶의 현실과 관련 있는 철학을 해야 한다. 그는 상아탑에 갇혀 철학자 놀이를 하지 말고 진짜 철학자가 되라고 도전한다. 그의 강연은 쉽고 뭔가 끌리는 매력이 있다. 때로 너무 한 쪽을 힘주어 말해서 인상적이긴 하지만, 과격하다는 느낌을 갖게도 한다.

 

이현우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의 끝없는 세 개지 욕망을 지적한 것은 명쾌하다. 인식 욕망, 성적 욕망, 그리고 권력욕망. 그는 니콜라이 고골의 <광인일기>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인간은 대단히 고상한 열망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저급한 욕망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욕망은 학습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고미숙은 ‘욕망과 존재의 계보학’을 보여준다. 오늘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들추어낸다. 내가 좋아하는 강준만 교수는 ‘감정독재의 본질, 증오’라는 타이틀로 먼저 우리의 정치현실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한다. 초강력 일극주의와 승자독식과 속도주의 체제, 연고주의, 미디아 당파주의 등의 설명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이전과는 달리 명징한 해답이 없다. 스스로가 밝혔듯, 그는 양비론을 말하는 ‘비겁한’ 지식인이 된 것인가? 좋게 말해, 균형잡힌 학자가 된 것인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가 처음 접한 정여울의 글이다.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거대 담론보다 절망적인 사회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세를 말한다. 그는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대참사를 보며 집단의 사악함과 개인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낙하산 비유를 말한다. 절체절명의 높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위태로운 낙하산을 내일도 무사히 쓸 수 있게 찢어진 구멍을 꿰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비유를 접할 때,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쁜 놈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놈들을 없애는 과정에서 낙하산에 더 큰 구멍이 생길수도 있겠다 싶다. 정여울의 주장이 옳다. 개인의 위대함은 ‘악에 맞서는 악’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다.

 

시인 문태준은 물질적 욕망이 담겨있지 않은 시(詩)들을 소개하면서 물질적 욕망을 무화시키는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권한다. 정병설은 <구운몽>을 소개하면서 환상이 때로 절망을 이기고자 하는 자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명우는 불안의 시대에 강한 자아의 확장이 아니라, 공감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있는 존재로 살기를 희망하라고 도전한다. 그것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노명우의 마지막 은유처럼, ‘요괴인간’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오늘도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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