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함께한 마지막 여름 개암 청소년 문학 15
마리 셀리에 지음,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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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흐를 좋아해 그의 작품 200여점을 제 PC에 저장해 놓고 자주 봅니다. 그의 전기와 작품 해설집도 많이 읽은 편이죠.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측백나무>, 아를의 풍경들과 다리, 정원, 들판, 신발, 수많은 인물화와 자화상, 등.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고결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을 책 표지로 사용한 「고흐와 함께 한 마지막 여름」을 보았을 때, 청소년 문학판이지만 서슴없이 선택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1년 전쯤 오베르의 라부 여관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그림을 남겼죠. 이 책은 라부 여관집 딸, 아들린의 일기를 통해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묘사한 소설입니다. 작가는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이런 문장 하나에 의지해서 상상력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번 주에 열여섯 살, 아니 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의 초상화를 그렸어. 파란색 배경에 파란색 옷을 입은 그림이야. 내가 묵고 있는 하숙집 딸인데, 다 그린 그림은 그 아이한테 줬어. 너한테 보내는 사본은 15호 캔버스에 그렸어.”(p. 126).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켰지만,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일기형식의 소설입니다. 하지만 고흐에 관해 그 어떤 책보다 고흐를 잘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표지의 그림과 첫 페이지에 있는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아들린 라부의 초상>을 실은 것은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빈센트와 아들린의 모습이 아른거렸습니다. 소설 곳곳에 언급된 여러 인물들의 초상이나 고흐의 작품들을 인터넷에서 일일이 찾아 감상하는 번거로움도 오히려 즐거움이었습니다. 고흐에 대해 알고 싶은 청소년이나 고흐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이 일기소설을 통해 고흐의 마지막 여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오베르의 라부 여관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쉽다기보다 출판사에 바라는 점이 있습니다. 일기 곳곳에 언급된 고흐의 작품들을 실어놓았다면, 독자들은 이 소설을 훨씬 실감나게 읽고 고흐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판형도 커지고 컬러인쇄 등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고흐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이 책을 소장하고 싶지 않을까요? 뒷부분에 나오는 ‘빈센트 반 고흐의 연보(年譜)’도 간략하지만 매우 유용했습니다.

  지금 고흐와 그의 작품은 무척이나 사랑받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그림을 향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이 소설의 주인공 아들린은 노부인이 되어 그 때를 기록한 일기를 난로 속에 집어넣습니다.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들린의 사랑이었던 루이 오빠와 빈센트 아저씨의 그림자도 굴뚝을 따라 저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영혼조차 고독해지면서 동시에 정화되고 고결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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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에게 인생을 배우다
전도근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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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르네상스형 인간, 시대를 고뇌하는 대표적인 지식인,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식을 추구한 실학의 대가 다산(茶山) 정약용! 저자 전도근은 이런 다산에게서 인생을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웠고, 그것은 멋진 책으로 엮어 냈습니다. 이전에 <목민심서>를 읽었을 때는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따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목민심서>가 그의 18년 유배생활 말년인 나이 57세에 집필했음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산이었다면, 그 긴 세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를 원망하고 인생을 한탄하며 자포자기하며 허송세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산에게는 큰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희희호호(嬉戲皥皥, 백성의 생활이 매우 즐겁고 평화로운 세상)”라는 큰 이상(vision)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는 <목민심서>, <흠흠신서>같은 위대한 책을 후세에 남겨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다산의 삶과 글들을 소개하면서 진정한 리더십, 창의력, 공부하는 법, 미래를 내다보기, 인내의 중요성, 진정한 성공을 위해 훈련하고 갖추어야 할 미덕에 대해 말합니다. 이 책은 실용성을 표방하지만 허접한 이야기로 가득 찬 자기경영서가 아니라, 깊은 철학과 삶의 지혜를 드러내는 인생경영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다산에 관해 이미 이전에 알고 있던 것들을 마음 깊이 느꼈습니다. 다산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고고한 사상, 그러면서도 매우 실용적인 생각들, 그의 인품, 세상을 대하는 자세, 어느 하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시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安貧)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그만 체통이 꺾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p. 46)

 

  수령들의 생활신조로 청렴, 근검, 명예와 재리를 탐내지 말 것을 강조한 다산은 자신이 믿고 가르친 대로 살았기에 오늘날에도 그의 가르침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목민심서> 서문에 기록한 글,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반이고 그 반은 목민(牧民)이다”도 잊을 수가 없군요. 그리고 그가 평생 530여 권의 책을 썼다는 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자 전도근은 다산이 이렇게 많은 책을 집필한 것은 그가 학문에 정진하면서 그것을 체계화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합니다. “다산의 독서는 책을 읽기 위한 독서라기보다는 책을 쓰기 위한 독서”(p. 145)였다는 것입니다. 또 다산의 인내(忍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주막의 뒷방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짓고 사년동안 거하면서,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하게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p. 200)했습니다. 그리고 다산초당(茶山艸堂)을 지어놓고 10년을 기거하며 수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에게 보여주었으며, 이 책의 저자 전도근은 다산의 삶과 가르침을 매우 명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 책꽂이 가장 손이 잘 가는 곳에 두고 자주 들추어볼 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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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임재 기쁨 - 안식과 기쁨을 주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행복한 동행
찰스 스펄전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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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황태자, 마지막 청교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스펄전 목사님은 지금부터 120여 년 전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가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언제나 성경중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믿음의 본질을 붙잡고 설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핵심 개념으로 붙잡고 그리스도의 임재와 친밀한 사귐이 무엇인지 힘주어 말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유를 누릴 때(1장), 우리는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합니다(2~3장).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축복과 평안과 위로와 영적 휴식을 경험합니다(4~7장).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임재를 갈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8~14장).

  저는 개인적으로 ‘7장.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 휴식’을 읽으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말씀이 마음 깊이 담겨졌고,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매우 문학적입니다. “본래 가슴은 바다 물결처럼 쉴 줄 모른다. 애정의 대상을 찾다가 반짝이는 별 아래에서 발견하면 기쁨으로 출렁인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변심하거나 … 사별하게 되면 절망의 파도가 높아진다.”(pp. 128~129). 아! 이렇게 출렁이는 마음과 절망의 파도로 상처 입은 마음은 어디서 피난처를 찾고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가슴뿐 아니라, 양심과 지성도 불안의 또 다른 근원이라고 목사님은 말합니다. 아니 거의 모든 문제가 우리의 전 존재를 괴롭힙니다. 사실 요즘 제가 많이 지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설교가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과거에 대해 마음을 놓는다. 현재는 예수님의 애정 어린 친교 때문에 낙관한다. 미래는 기대하는 재림 때문에 두렵지 않다.“(p. 132).

  청중들에게 재미를 주고 소위 ‘들리는 설교’를 추구하는 목사님들의 설교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큰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고 주님으로부터 진정한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의 설교는 아직도 많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간절히 주님의 임재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 거하는 삶을 더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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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테라피 - 웰빙을 위한 행동심리학
토마스 비엔 지음, 송명희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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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는 ‘마음공부’임을 다시 한 번 깊이 느꼈습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데, 마음을 올바로 먹기가 쉽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것은 마음공부를 통해 이룰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일까요?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비엔(Thomas Bien)에 대한 소개를 보니, 심리학자로 <마음챙김>에 대한 많은 글을 썼군요. 그는 불교의 수행에 꽤 깊은 조예가 있는 듯합니다. 그는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데, 그 행복은 심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불교가 마음을 챙기고 다스리는 데 완벽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불교는 강렬한 인본주의 요소가 있습니다. 즉, 붓다가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드러내며, 붓다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수련법은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또 불교는 종교의 도그마와 같은 독단적 요소가 없어, 붓다의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능숙한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저자가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행복을 얻는 기술로 본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인 ‘다르마’(dharma)는 고대 심리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행복은 쟁취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만히 현재에 집중하면 느낄 수 있습니다. 붓다가 그랬듯이 누가 나를 욕하면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붓다가 말했다지요.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준 사람이 도로 가져가야 한다”(p. 47). 붓다는 욕설은 단지 소리였을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과연 나는 욕을 먹을 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저건 단지 소리일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마음수행을 통해 가능하다고요? 글쎄요. <붓다 테라피>는 결코 모든 사람이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스님들도 출가해 새털같이 많은 세월을 수행하지만, 도박과 색과 권력 추구의 추악한 모습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진실하게 수행하며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요. 하물며 일상의 평범한 삶을 살아내는 자들에게 이런 경지의 마음수행을 요구하는 것이 평범한 심리처방일 될 수 있을까요? 익숙한 개념들과 편협한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습관에서 벗어나기,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키기, 등 모든 것이 제게는 너무 멀어 보이네요. 저자도 의식했는지, 수행의 파라독스, 즉 “수행은 쉽고도 어렵다”라고 말하네요(pp. 232~233). 그러니 어떤 대단한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기보다 한 걸음만 걸어보라고, 과정 자체를 지향해보라고 충고합니다. 몇 가지 작은 제안들이 저의 흥미를 끕니다. 좋은 책을 곱씹어 읽어보기, 감각에 집중하기, 육 바라밀(Six Paramitas)을 일상의 지침으로 삼기, 등입니다.

  어쨌든, 행복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 자체가 길이며, 행복은 지금 내 곁에 존재한다는 말이 마음에 울림을 주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조금은 넉넉해졌습니다. <붓다 테라피>, 효과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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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 인문을 묻다
송광택 지음 / 강같은평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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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는 반지성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첫째, 기독교는 본래 계시의 종교입니다. 믿음의 삶은 인간의 철학이나 깨달음에 입각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지하여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은 종종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논리를 뛰어 넘습니다. 둘째,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로 믿고 순종합니다. 언뜻 보기에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입각해 사는 것과 반대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즉, 하나님처럼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해서 그 순수한 이성도 부패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인간 속에 있으며, 특히 구원받은 자들은 이성(理性)까지 새롭게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으로부터 도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성을 사용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들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저자 송광택 교수의 설명처럼,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으로, 역사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을 통해 삶의 궁극적인 본질이나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삶의 궁극적 본질과 의미를 추구하는 자는 자연스럽게 인문학에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흥미를 끕니다. 「예수께 인문을 묻다」! 부제목이 거창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 89문 80답, 인문학이 묻고 성경적 통섭이 답한다.’ 저는 특히 “성경을 문학적 텍스트로 본다면 어떠할까?”라는 질문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만 받아들여, 그것을 너무 경직되게 해석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인류 문화유산의 하나로, 고전(古典) 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에는 삶의 기쁨과 슬픔, 고뇌와 환희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성경을 문학적 텍스트로 읽을 때, 한 종교의 경전으로 읽을 때와는 다른 삶의 진리들과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인문 고전을 읽으면서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왜 때때로 천천히 읽어야 하는가? 능동적으로 읽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철학은 기독교의 친구인가 적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의 아군인가, 적군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등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명쾌하거나 깊이가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저자의 말처럼 이런 글들을 징검다리 삼아 더 넓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인문학적 탐구의 마당으로 나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관심 있는 질문들에 나름대로 생각하고 답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독교 인문교양 서적입니다. 이곳저곳 뒤적거리면서 이것저것을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깊이 생각해보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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