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스비의 기도 세계기독교고전 55
오 할레스비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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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인 나에게 기도는 정복할 수 없는 높은 산과 같아 보인다. 교회에서 여는 기도회에 자주 참석하지만 형식적인 기도로 끝날 때가 많다. 기도를 하지만 확신이 없을 때가 많다. 기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실상 나는 기도에 너무 무지하다. 나는 올바로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오 할레스비는 기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깔끔하게 지적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기도는 주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움직여서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 우리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마음과 상황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의 마음의 태도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느껴야 한다. 기도응답에 필요한 믿음은 오직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다. 다른 그 어떤 특별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무력감의 표시이며 동시에 믿음의 증거다.

 

저자도 분명히 말한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라고, 그래서 기도의 두 가지 기술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하나는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끈기와 인내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돕거나, 하나님께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 자체가 하나님에 대해 불경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이다. 오 할레스비는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영적 각성을 위해 기도하고, 다른 이를 위한 중보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싸움'이라는 타이틀로 두 장에 걸쳐 이야기하는 것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보통 기도의 싸움이라 하면 야곱의 씨름을 생각하며 하나님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기도가 하나님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교도적이라고 지적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에서 싸워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옛 아담이며 육체적 본성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 편안하고 안락함을 사랑하는 마음, 계속해서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책에서 뇌리에 남는 인상적인 구절 중 하나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은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기도 가운데서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하나님께 부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입니다."(p. 101). 그러고 보니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나의 부모님이 나를 위해 많이 기도하셨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누군가를 복되게 하고 있는가? 나의 가족, 공동체의 사람들을 위해 나는 얼마나 기도하는가? 나는 다시 기도에 대해 도전받아 기도한다. '주님의 기도학교에 들어가 기도를 배우겠습니다. 기도의 영이시여, 내가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 하시며, 자신을 부인할 수 있게 하소서. 저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십시오.' 기도에 대해 많은 책을 읽는다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영이 임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기도에 대한 강렬한 도전을 받았기에 다시 정독하며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저 높은 기도의 산에 올라가면 무엇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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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비즈니스 - 11가지 비즈니스 행위에 관한 성경적 원리
웨인 그루뎀 지음, 배응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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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삶의 대명제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행위인 예배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스도인은 종교적 행위로서의 예배 와 더불어 일상의 삶도 하나님께 드린다. 일상의 삶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비즈니스’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성서신학자요 조직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이 ‘비즈니스’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주제를 들고 나왔다. 신학이 추상적인 진리추구를 넘어 삶의 현실, 장사를 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안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저자는 비즈니스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지만 방치된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비즈니스의 구체적인 행위인 소유권, 생산성, 고용, 상거래, 이윤, 돈, 소유 불균형, 경쟁, 차용과 대출, 등을 다루며 이 모든 것이 그자체로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적절하게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성경이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있음을 밝혔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악용되고 왜곡될 수 있음도 분명히 지적한다. 그래서 매 장 마지막에 후렴구처럼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강조한다. 어떤 선한 것이 왜곡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즈니스 자체는 선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나는 ‘소유 불균형’과 ‘경쟁’에 관해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소유 불균형’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나온 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소유 불균형도 선한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담대하게 주장한다. 청지기 비유에서 주인은 모두를 불균등하게 대한다. 보상도 공정하게 하려면 불균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유무상통의 교제도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며, 그들은 여전히 개인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소유의 불균형이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의 불균등이 문제인 것이다. 자신을 위해 부를 지나치게 소비하는 것, 향락과 사치에 빠지는 것이 문제이며, 성경은 이를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경쟁’에 대한 가르침도 유익했다. 나는 경쟁의 부정적인 측면에 많이 집중했는데, 저자는 경쟁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경쟁은 우리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자신이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경쟁 자체는 선하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마음의 자세와 비즈니스가 세계 빈곤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할 때 돈과 이윤을 사랑하면 안 되며, 오직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어디 비즈니스뿐이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과 목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비즈니스를 필요악으로 생각하며 묘한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비즈니스는 단순히 복음 전파의 수단이 아니다. 비즈니스 그 자체로 선하며, 세상을 더 풍요롭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지혜의 선물이다.

 

이 책 덕분에 비즈니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교정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비즈니스에 대한 성경적 생각을 가져야 하며, 비즈니스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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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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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처음에는 글이 재미있어서 웃고 그 다음에는 그의 글 속에 담겨있는 진실에 감동하여 미소 짓게 된다. 화천의 감성마을에 칩거,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외로움의 방에서 길어 올린 이외수의 글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 그는 글쓰기에는 무통분만도 불로소득도 없다고 믿는다. 그가 수도승처럼 수행하며 쓴 글에 생명력이 넘치는 이유다. 그의 글에 정태련의 그림까지 어우러지면, 책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한 페이지 가득 매운 그림은 나의 시선을 한참이나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주로 꽃과 나무를 그려 놓았는데, 여백이 있는 그림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다. 화폭에만 여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나의 삶에 작은 여백을 선물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글에는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무한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바위를 뚫는 뿌리의 아픔이 없다면 절벽의 낙랑장송이 저토록 멋있는 자태를 보여 줄 수 있겠는가. 나 태어나 이 강산에 작가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칠십 년, 쉽게 쓰여지는 글은 한 번도 없다.”(p. 31). “문학, 내게는 온 생애와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영혼의 안식처인데 …”(p. 75). "글 쓰는 사람이 지적 허영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악습은 잘 쓰겠다는 욕심이다“(p. 116). 작가의 마음을 아니, 그의 글에 있는 비속어와 욕설까지도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 곳에 남들이 천박하다고 지적하는 ”지럴“, ”써글“, ”푸헐“, ”저쉐키“, ”개시키“가 들어가야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해학(諧謔)의 문장이 된다.

 

그의 글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삶을 사랑하자는 것이며, 사랑하며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개들을 풀어 주었다가 애완견들이 돌아오지 않아 애태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애물단지들이다. 수시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그래도 우리는, … 사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p. 9). 이 글을 읽으며 자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식들은 부모 속 썩이는 일에 전문가다. 얼마 전 아들이 연신 외박을 하며 정신 줄 놓고 놀았다. 아내는 속이 상해 ‘저 녀석 때문에 내가 암이 걸릴 것 같다’고 나에게 카톡을 했다. 나는 ‘이제 자식 놈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고 사랑의 이모티콘을 날렸다. 아내는 “요즘, 우리 둘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도 한다”고 응답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아들 일하는 곳에 갔다 왔다. 아내 왈, “자식이 그런다고 나 몰라라 하면 그게 또 애미가 아닌 듯”.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 철렁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살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한 것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독특성을 말한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절대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지성체로 존재한다”(p. 99). “내 사전에는 약육강식이라는 단어가 없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세계는 짐승의 세계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약한 자가 낙오되어 있을 때, 강한 자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목적지까지 동행할 수 있어야 한다.”(p. 59).

 

이 책에서 위로를 얻고 쉼을 누렸다. 이번 명절에 소파 탁자에 올려놓고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도 눈길을 주어야겠다. 그러다 졸리면 이 책을 눈가리개로 사용하겠다. 이 책은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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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탐닉 - 미술관에서 나는 새로워질 것이다
박정원 지음 / 소라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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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참 마음에 든다. 그림을 전공한 저자가 취미로 미술 작품을 대하는 일반인들에게 작품을 폭넓게 감상하는 법을 아주 쉬운 말로 알려준다. 일반인들에게 작은 이미지로 경험한 명화들은 감동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미술에 흥미를 갖고 있지만 작품 전시회에 자주 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나는 미술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작게는 책 한 페이지의 4분의 1, 크게는 두 페이지에 걸쳐 실린 작품은 아무래도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자체보다는 해설에 더욱 눈을 돌리게 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림을 말없이 조용하게, 오직 나의 눈초리로 더듬어 나가는 은밀한 ‘눈팅’이 미술 감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 갑자기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들과 삶의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저자는 마음, 사람, 삶, 시대, 풍경, 다섯 가지 주제로 각각 열 둘 혹은 열 세 작품을 소개한다. 화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 제작 연도와 그림의 크기를 기록해 놓아서 작품의 크기를 그려보며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소개된 60가지가 넘는 작품들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그 중에서 오래 나의 시선을 끄는 작품이 몇 가지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은 화가가 교황의 권위를 표현하기보다 연약하고 고집 센 노인인 인간을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표현한 작품이다. 의미 있는 작품이란 사람과 삶을 정직하게 표현할 때 만들어지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앤드류 와이어스의 <헬가의 초상> 또한 인상적이다. 박정원은 앤드류가 모델의 숨소리, 체온, 땀구멍, 축축한 입김까지 느끼는 인간적 교감을 통해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 마지막에 소개된 두 작품과 그 해설이 오래 마음에 남을 듯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사무실>은 도시인의 쓸쓸함과 고립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화가는 도시인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억눌린 감정과 욕망을 그림에 보일 듯 말듯 교묘하게 넣에 두었다는 박정원의 설명에 감탄한다. 마지막에 소개된 작품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이다. 중세의 그림에서는 예수의 거룩함에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오직 히에로니무스 보슈만이 독보적인 구성을 통해 십자가 처형의 현장에서 광기 어린 군중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을 덮으니 앞에 언급한 작품들을 넘어 수많은 작품들이 내 눈 앞에 떠오른다. 이 책은 각 주제의 마지막 장에 ‘그림을 넓고 깊게 보는 방법’이라는 타이틀로 작품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책 덕분에 그림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그림 해설 책 중 가장 인상적이다. <그림 탐닉>이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당분간 내 서재에 있는 수십 권의 미술책에 푹 빠져 지낼 것 같다. 행복한 독서, 아니 행복한 미술 감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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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중독자 - 멸종 직전의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내일
다니엘 S. 밀로 지음, 양영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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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것은 도구나 불, 언어의 발명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발명했기 때문이라는 담대한 주장이 흥미롭다. 내일을 생각하는 것, 다른 동물에게는 전혀 없는 것일까? 몇 몇 동물들은 다음 날 먹기 위해 먹이를 숨겨 두기도 한다는데,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다니엘 밀로의 주장은 이렇다. 많은 학자들은 인류가 아프리카 소말리아 반도를 떠나 전 세계로 흩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이동했는지를 밝혀냈지만, 왜 떠났는지를 분명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지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떠났다고 추측한다. 그것은 ‘미래’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오늘만 사는 동물들의 낙원에서 추방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미래를 생각해 오늘을 포기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미래라는 발명품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큰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라고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미래를 발명해 냄으로써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문명은 없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인간은 무엇인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지나침’ 혹은 ‘과도함’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뇌도 쓸모이상으로 지나치게 커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미숙아로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열두 살까지는 나약한 존재로 부모와 사회에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인간은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불안한 존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은 미래를 발명함으로 모든 생물체의 최고 정점에 다다랐지만 항상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사는 존재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마존의 어느 부족은 미래를 나타내는 시제가 없고 오직 현재 경험하는 것들만 언어로 표현한단다. 그들은 오로지 오늘에만 삶의 초점을 맞추면 산다. 그래서 걱정이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지만 그렇다고 그들처럼 그런 상태로 살고 싶지는 않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개가 되고 싶어 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불안하게 사는 현실에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선악과를 따 먹었으며, 판도라 상자를 이미 열었다. 이제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과도하게 준비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이런 숙명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미래와 현재에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는 것과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 현재를 포기하는 것, 이 두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독특성을 규명한 책이지만, 이런 숙명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로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도록 도전한다. 흥미롭고 도전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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