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탐닉 - 미술관에서 나는 새로워질 것이다
박정원 지음 / 소라주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 참 마음에 든다. 그림을 전공한 저자가 취미로 미술 작품을 대하는 일반인들에게 작품을 폭넓게 감상하는 법을 아주 쉬운 말로 알려준다. 일반인들에게 작은 이미지로 경험한 명화들은 감동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미술에 흥미를 갖고 있지만 작품 전시회에 자주 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나는 미술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작게는 책 한 페이지의 4분의 1, 크게는 두 페이지에 걸쳐 실린 작품은 아무래도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자체보다는 해설에 더욱 눈을 돌리게 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림을 말없이 조용하게, 오직 나의 눈초리로 더듬어 나가는 은밀한 ‘눈팅’이 미술 감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 갑자기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들과 삶의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저자는 마음, 사람, 삶, 시대, 풍경, 다섯 가지 주제로 각각 열 둘 혹은 열 세 작품을 소개한다. 화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 제작 연도와 그림의 크기를 기록해 놓아서 작품의 크기를 그려보며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소개된 60가지가 넘는 작품들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그 중에서 오래 나의 시선을 끄는 작품이 몇 가지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은 화가가 교황의 권위를 표현하기보다 연약하고 고집 센 노인인 인간을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표현한 작품이다. 의미 있는 작품이란 사람과 삶을 정직하게 표현할 때 만들어지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앤드류 와이어스의 <헬가의 초상> 또한 인상적이다. 박정원은 앤드류가 모델의 숨소리, 체온, 땀구멍, 축축한 입김까지 느끼는 인간적 교감을 통해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 마지막에 소개된 두 작품과 그 해설이 오래 마음에 남을 듯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사무실>은 도시인의 쓸쓸함과 고립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화가는 도시인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억눌린 감정과 욕망을 그림에 보일 듯 말듯 교묘하게 넣에 두었다는 박정원의 설명에 감탄한다. 마지막에 소개된 작품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이다. 중세의 그림에서는 예수의 거룩함에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오직 히에로니무스 보슈만이 독보적인 구성을 통해 십자가 처형의 현장에서 광기 어린 군중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을 덮으니 앞에 언급한 작품들을 넘어 수많은 작품들이 내 눈 앞에 떠오른다. 이 책은 각 주제의 마지막 장에 ‘그림을 넓고 깊게 보는 방법’이라는 타이틀로 작품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책 덕분에 그림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그림 해설 책 중 가장 인상적이다. <그림 탐닉>이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당분간 내 서재에 있는 수십 권의 미술책에 푹 빠져 지낼 것 같다. 행복한 독서, 아니 행복한 미술 감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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