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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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처음에는 글이 재미있어서 웃고 그 다음에는 그의 글 속에 담겨있는 진실에 감동하여 미소 짓게 된다. 화천의 감성마을에 칩거,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외로움의 방에서 길어 올린 이외수의 글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 그는 글쓰기에는 무통분만도 불로소득도 없다고 믿는다. 그가 수도승처럼 수행하며 쓴 글에 생명력이 넘치는 이유다. 그의 글에 정태련의 그림까지 어우러지면, 책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한 페이지 가득 매운 그림은 나의 시선을 한참이나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주로 꽃과 나무를 그려 놓았는데, 여백이 있는 그림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다. 화폭에만 여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나의 삶에 작은 여백을 선물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글에는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무한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바위를 뚫는 뿌리의 아픔이 없다면 절벽의 낙랑장송이 저토록 멋있는 자태를 보여 줄 수 있겠는가. 나 태어나 이 강산에 작가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칠십 년, 쉽게 쓰여지는 글은 한 번도 없다.”(p. 31). “문학, 내게는 온 생애와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영혼의 안식처인데 …”(p. 75). "글 쓰는 사람이 지적 허영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악습은 잘 쓰겠다는 욕심이다“(p. 116). 작가의 마음을 아니, 그의 글에 있는 비속어와 욕설까지도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 곳에 남들이 천박하다고 지적하는 ”지럴“, ”써글“, ”푸헐“, ”저쉐키“, ”개시키“가 들어가야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해학(諧謔)의 문장이 된다.

 

그의 글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삶을 사랑하자는 것이며, 사랑하며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개들을 풀어 주었다가 애완견들이 돌아오지 않아 애태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애물단지들이다. 수시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그래도 우리는, … 사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p. 9). 이 글을 읽으며 자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식들은 부모 속 썩이는 일에 전문가다. 얼마 전 아들이 연신 외박을 하며 정신 줄 놓고 놀았다. 아내는 속이 상해 ‘저 녀석 때문에 내가 암이 걸릴 것 같다’고 나에게 카톡을 했다. 나는 ‘이제 자식 놈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고 사랑의 이모티콘을 날렸다. 아내는 “요즘, 우리 둘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도 한다”고 응답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아들 일하는 곳에 갔다 왔다. 아내 왈, “자식이 그런다고 나 몰라라 하면 그게 또 애미가 아닌 듯”.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 철렁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살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한 것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독특성을 말한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절대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지성체로 존재한다”(p. 99). “내 사전에는 약육강식이라는 단어가 없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세계는 짐승의 세계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약한 자가 낙오되어 있을 때, 강한 자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목적지까지 동행할 수 있어야 한다.”(p. 59).

 

이 책에서 위로를 얻고 쉼을 누렸다. 이번 명절에 소파 탁자에 올려놓고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도 눈길을 주어야겠다. 그러다 졸리면 이 책을 눈가리개로 사용하겠다. 이 책은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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