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도리, 인간됨을 묻다
한정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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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정주의 <문장의 온도>와 <이덕무를 읽다>를 흥미롭게 읽으며 동양고전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이제 저자는 <인간 도리, 인간됨을 묻다>에서 한자(漢字)를 통한 인문학적 질문,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깊이 성찰을 담아냈다. 60개의 한자를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1~2부에서는 안하무익격의 사람들과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3~4부에서는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일에 관한 생각을 펼쳐 놓았다. 책의 구성이 참신하고 흥미를 끈다. 사실 한자를 익히는 일은 많은 시간 익혀야 할 뿐 아니라 긴 시간 동안 한자를 쓰고 외우는 일은 따분하다. 하지만 이 책은 한자를 파자(破字)해서 글자의 의미가 나온 유래를 알려주고, <사마천의 사기>나 <四書三經> 같은 동양고전의 내용을 연결해 주니, 너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자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저절로 외워진다. 

 

부끄러울 치(恥)를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파자하여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면 귀가 붉어진다고 설명한 뒤, 맹자의 사단(四端) 중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말하고 <맹자, 盡心 上>의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후안무치(厚顔無恥)라 한다고 슬쩍 알려준다. 교만한 교(驕)를 설명하면서 서초패왕 항우가 교만해서 결국 패망했음을 역사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저자는 혐오할 혐(嫌)자에 계집 녀(女)자가 들어간 것에서 여성 멸시와 혐오가 담긴 한자가 많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간사할 간(姦), 시기할 질(嫉), 샘낼 투(妬), 등 ‘녀(女)’가 들어간 한자에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등, 여성 멸시의 옛 속담이 나왔다. 저자는 이런 혐오와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적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데,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된다)’의 성찰과 용서(容恕)와 관용(寬容)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길’(pp. 142~144)에서 저자는 선(善)의 의미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양처럼 온순하고 온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맹자의 사단(四端) -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공경지심(恭敬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 과 사덕(四德) -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언급한다.

 

이 책은 주요 한자를 익히고자 하는 학생들, 동양사상과 역사를 배우고 싶은 이들, 인간답게 사는 일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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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틱낫한 지음, 정윤희 옮김 / 성안당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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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서 전도서에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선언한다. 여기, ‘헛되다’는 것은 ‘의미 없다’가 아니라 ‘덧없다, 무상(無常)하다,’ 즉, 모든 것이 변하며 너무 빨리 지나간다‘라는 뜻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전도자는 더 나아가 삶의 부조리를 관찰한다. 학대와 박해가 끊이지 않는 삶, 성공하여도 시기와 질투를 받는 삶, 열심히 부를 축적했지만 외로운 삶, 야심찬 비전을 가지고 얻은 권력의 무상함, 등을 말한다. 결국 삶의 현실을 보니 인생에서 무엇인가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도자는 전도서 곳곳에 ‘사람이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부조리하고 무상하지만 놀랍게도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 삶의 지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매 순간을 느끼며 살는 것이다. 라틴어 격언, carpe diem(현재를 낚아채라)도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마음 다해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덧없는 인생 속에서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지혜다.

 

틱낫한의 <삶의 지혜>도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마음 다해 오늘을 사는 구체적인 수행법을 알려준다. 스님은 불교의 일곱 가지 중요한 개념들인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 무상(無常), 무욕(無慾), 내려놓음, 열반(涅槃)을 설명한다. 공(空)과 무상(無相)은 존재론적 개념이다. 존재하는 것은 모든 것들로 가득 차 있으나 동시에 동떨어진 존재들의 비어 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존재하는 것의 겉모습인 상(相)은 다르지만, 모든 것을 구별하고 차별을 두는 것은 妄念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 존재한다. 무원(無願)과 무상(無常)과 무욕(無慾)은 불교의 존재론적 개념으로부터 파생된 가르침이다. 현재 나의 존재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니, 신(God)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이 가능하니 항상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 행복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다. 내려놓음과 열반(涅槃)은 지속적으로 무원, 무상, 무욕을 실천하는 일과 그 궁극적 상태를 알려준다.

 

틱낫한은 이런 개념들에 집중하며 명상하는 수련법을 제시한다. 일상의 삶에서 의식적인 걷기 명상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호흡에 100% 집중하다보면 스스로 자유로워진다. 때로는 편안한 자세로 좌선하며 복식호흡을 해 보란다. 마음의 평화로움을 방해하는 것들을 내려놓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시하여 고통의 근원을 파악해 보라는 것이다. 인간은 호모 컨시어스(Homo conscius), 즉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존재이므로 마음 다함과 명상, 통찰력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틱낫한의 주장이다. 맺는 글에서 스님은 “시간은 돈이 아닙니다. 시간은 삶이고 사랑입니다”(p. 253)라고 말하며 자신이 제안한 수행법을 실천에 옮겨볼 것은 도전한다. 명상과 호흡을 위해 천천히 걷거나 멈춘다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나는 신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틱낫한의 불교적 가르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불교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바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명상과 걷기와 호흡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법은 기독교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추구하는 바와 통하는 데가 있다. 결국 우리는 종교를 초월해 사람과 자연만물을 사랑하며 오늘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다해 오늘을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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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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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지속된 폭염과 열대야로 심신이 지쳤다. 휴가기간에는 숙소에서 느긋하게 한 두 권의 책을 뒤적였는데, 올해는 가져간 책 표지도 열지 못했다. 그 중에 한 권이 <한밤의 미술관>이었다. 휴가에서 돌아와 열대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에도 집 거실에 에어콘을 켜 놓고 책상을 내놓았다. 덕분에 늦은 밤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었고, <한밤의 미술관>과 함께 미술관의 뜨락을 거닐 수 있었다. 적지 않은 화가들의 삶을 엿보았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세계의 여러 미술관들도 소개 받은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이 책,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든다. 우선 저자의 글 솜씨가 뛰어나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화가의 삶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어찌나 담백하면서도 흥미롭게 들려주는지 그만 화가의 감정에 푹 빠져버린다. 작가는 첫 번째로 브와디스와프 포드코빈스키와 그의 작품 <광분>을 소개한다. 3미터가 넘는 대작인 이 작품은 대중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지만 화가가 기대한 값에는 팔수가 없었다. 화가는 갤러리로 가서 칼로 자신의 그림을 찢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칼로 찢긴 부분은 말 위에 올라탄 여자였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전시가 끝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화가는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또 한 명의 화가 이야기가 아련하게 다가왔다. 존 윌리엄 고드워드! 신고전주의에 매료된 그는 당시 유행하는 미술사조에 눈을 돌리지 않고 신고전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고전주의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조차도 그의 그림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유서에는 “세상은 나의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을 모두 받아들일 만큼 크지 않다.”고 쓰여 있었단다. 이소라는 이렇게 덧붙인다. “고드워드가 캔버스 위에 그려낸 아름다움은 마치 고난의 시절 한가운데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달콤한 시어(詩語)같다.”

 

이외에도 소개된 화가와 그들의 작품은 많은 생각과 질문을 하게 한다. 비비안 마이어나 에곤 실레, 이들의 이중적인 모습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모델에서 화가로 인생을 바꾼 빌리동, 그녀는 아들의 친구와 연인관계로 살았다. 그녀는 그림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금기와 경계를 넘나들었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삶과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까? 우울감과 불안 속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던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작품은 오히려 강렬한 생명력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소개하는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자극을 주는 좋은 기획이다. 미술애호가들은 책이나 사진에서 볼 때와 실제 미술관에서 볼 때 작품이 주는 감동이 얼마나 다른지 알기에 소개받은 그림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이 책이 그런 마음에 불을 지핀다. 또한 이 책의 저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화가와 작품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무더운 여름밤 때로는 마음의 위로를 얻고 삶의 의지를 다잡아 본다. 이 책 덕분에 살인적인 폭염의 2018년 여름밤을 미술관의 뜨락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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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시작과 끝을 여닫는 대학·중용 옛글의 향기 5
주희 지음, 최상용 옮김 / 일상이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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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최상용이 옮긴 <도덕경>을 재미있게 읽었다. 출판사 ‘일상과 이상’에서 기획한 ‘옛글의 향기’ 시리즈였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의 또 다른 번역서 <대학, 중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주희(朱熹)의 주석이 달린 대학, 중용을 담백하게 번역했다는 것이다. 자질구레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원전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리고 각권 마지막에 한자어원풀이를 해 놓았다. 또 다른 장점은 가독성이다. 굵은 글씨체로 공자의 <대학>과 <중용>를 번역하고 아래에 원문을 실었다. 그리고 다시 주희의 주석을 충실하게 번역해 놓고 아래에 주석 원문을 실었다. 또 각 권 끝에는 ‘한자어원풀이’도 실었는데 참으로 유용하다. 나에게 가장 큰 유익을 준 것은 주희가 달아놓은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와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다. 이 서론들을 통해 대학과 중용의 역사적 위치와 그 의의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주희의 서론에 따르면, <대학>은 옛날 태학(太學)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이었다. 하은주 3대가 융성할 때 수많은 학교가 세워졌고 태학에서는 이치를 궁구하게 하고, 마음과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쳤다.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가르침은 많이 침체되었다. 공자(孔子)는 홀로 선왕(先王)의 법을 후세에 전했고, 이 가르침은 증자(曾子)와 맹자(孟子)로 이어졌지만, 아는 이가 적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도교의 허무주의와 불교의 적멸사상, 그리고 제자백가의 가르침에 현혹되었다. 후에 송나라가 융성해지면서 하남정씨 두 형제(명도와 이천)이 맹자의 전통을 이었다. 주자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교화하기 위해 이 책을 주석 보충해서 내 놓았다. <대학> 내용은 3강령 - 명덕(明德), 신민(新民), 지선(至善) - 과 8조목 -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희의 서론에 따르면, <중용>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수한 것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때 사람들이 성인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져서 자사는 <중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것이 맹 씨에게 전해졌고, 후에 주희가 연구하여 여러 사람의 해설을 모아 장구(章句은) 한 편을 책정하였다. 중용의 중(中)은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다는 뜻이고, 용(庸)은 평범하고 떳떳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중용>은 인간의 삶은 어떤 우주의 원리에 근거해서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매우 인식론적인 내용이다. 특히 20-19 ‘널리 배움’이 마음에 남는다. “널리 배우며(博學之), 자세히 묻고(審問之), 신중하게 생각하며(愼思之), 밝게 판단하고(明辯之), 도탑게 행해야 한다(篤行之)”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주희의 <대학, 중용> 원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싶다. 그렇게 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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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전해주신 복음
존 맥아더 지음, 서경의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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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아더는 미국 보수주의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목회자요 성경해석가다. 그의 성경해석은 언제나 철저하고 집요한데, 이 책 <하나님이 전해주신 복음>에서도 이사야 53장의 ‘여호와의 종(에베드 야웨)’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세계 역사에 대한 이사야 예언은 언제나 고등 비평학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수백 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이다. 이사야52~53장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증명해야 성경이 초자연적 계시임을 보여줄 수 있다.

 

이사야에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기 네 편 실려 있다. 42장 1~9절(세상에 정의와 구원을 가져오는 택함 받은 메시야), 49장 1~13절(이방까지 다스리는 메시야), 50장 4~11절(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 52장 13절~53장 12절(죄를 대속하기 위해 속건 제물로 죽는 메시아)이 그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노래에 집중한다. 부활하신 예수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을 가르쳐주셨는데(눅24:27), 가르치신 성경구절이 이사야에 나오는 네 번째 ‘종의 노래’라고, 맥아더 목사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후에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경을 가르치실 때도(눅24:44~45) 이 노래를 자신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고 풀어주셨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렇게 명약관화한데 유대인들은 어째서 이 예언을 해석하는 데 감도 잡지 못했을까? 그들은 죄를 짊어질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52장 13절에서 53장 12절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향한 종의 사역에서 각기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다섯 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이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본 뒤 이사야 53장을 요약하는 일곱 개의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첫째,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인가? 고통스러운 고난이다. 둘째, 그는 고난 받을 만 했는가? 아니다. 여호와의 종은 의로운 자로 고난 받을 이유가 없다. 셋째, 하나님은 종을 고난으로부터 보호하려 하셨는가?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받게 하셨다. 넷째, 죄 없는 종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의로운 본성과 합치하는가? 그렇다. 종의 고난은 백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왜 주의 종은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복종하는가? 의로운 종은 기꺼이 남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셨다. 여섯째, 그가 고난 받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의 고난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일곱째,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 종은 과연 누구인가? 단연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에서 이사야 52장보다 더 중요한 진리는 없다. 챨스 스펄전의 말처럼, 이사야 52장은 성경의 지성소며, 축소판이다.

 

이 책 제 2부는 선지자 이사야의 삶과 시대를 조망해줌으로써 이사야 53장의 중심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부록으로 실려있는 찰스 스펄전의 설교 “간고를 많이 겪은 자”는 고난받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사랑과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지 뚜렷이 보여준다. 그런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경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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