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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평점 :
<예술, 상처를 말하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왜 진정한 예술은 상처 속에서 자라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열 명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함으로써, 예술의 진정한 기능과 의미에 관해 말합니다. 예술이 하나의 비즈니스로 전락한 이 시대에서 예술은 세속적인 성공과 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듯합니다. 성공한 예술가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끈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성공한 예술가들 중에는 시대의 요구에 편승한 속물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끈 예술가들의 작품들에도 예술의 진정한 기능을 잘 구현한 것들도 더러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진정한 예술은 고통과 상처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저자는 열 명의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자신의 어조로 찬찬히 들추어냅니다. 카미유 클로델, 빈센트 반 고흐, 케테 콜비츠, 프리다 칼로, 권진규, 백남준, 이성자,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장미셀 바스키아. 이들은 모두 시대의 약자로, 수많은 고통과 상처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자들입니다. 이들은 영원한 이방인들이었고, 스스로 혼돈 속에서 예술을 붙잡았던 자들입니다. 저는 카미유 클로델과 권진규의 삶과 작품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 조각가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적으로 철저히 약자인 상황에서 모두에게 버림받고 30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했던 카미유였지만, 그녀의 삶과 작품은 예술정신의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그녀의 작품, <성숙>을 보고 있노라면, 철저히 소외된 자의 갈망을 가슴 아프게 느낄 수 있습니다.
권진규는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본 여인과 가정을 이루었지만, 굳이 조국 땅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하며 끝내 아내와 이혼해야 했습니다. 그는 예술보다 조국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추상주의가 시대적 주류로 인식되던 시기에 구상주의와 사실주의를 고집했기에 그의 실패는 아마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지나치게 민족적 정서에 부응하고, 불필요하리만치 심오하고 성찰적이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그의 두 테라코타 작품, <지원의 얼굴>과 <자소상>은 상향성과 정면성을 유지하며 구도적 초연함을 보입니다. 결국 그는 50대 초반에 마지막 유서에서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이라 쓰고, 자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작가 심상용은 예술에 대해 이런 도전을 던집니다. “타인과 자신이 욕망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서 그리고 허무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삶의 중요한 실체인 고통과 슬픔을 깊이 안을 수 있는 가능성, 그럼으로써 실존의 깊은 뿌리에 다가설 수 있는 여지 그리고 예술이 그렇게 하도록 돕는 전인격의 길이 되도록 하는 것이 다시금 절박한 논의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p. 171).
이런 식으로 저자는 열 명의 예술가를 통해 성공한 예술, 힘의 예술에 대해 반성합니다. 심상용은 창조성은 안정이나 성공과 공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예술 작품들은 혼돈과 위험 속에서 상처받은 영혼이 도전한 결과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디트리히 본회퍼가 ‘무기를 들지 않을 힘’에 위해 기도한 것을 거론합니다(p. 8). 그러다보니,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한 수많은 글들은 미술과 관계없는 기독교 작가의 책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토마스 머튼, 오스 기니스, 브라이언 왈쉬, 폴 투르니에, 자끄 엘룰, 게리 토마스, 필립 얀시, 데이빗 씨맨즈, 모건 스콧 펙, 리차드 포스터, 포사이스 등. 아마도 저자는 예술의 정신으로 ‘약함이 강함’이라는 사도바울의 역설적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예술가의 힘의 부재, 무능력, 상처가 곧 예술의 힘의 근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은총의 근거”(p. 323)입니다.
자신의 시대에 화려하게 성공하고 인정받은 예술가들의 작품보다, 자신의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훨씬 더 선명하게 예술의 정신과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술 작품이 고통당한 예술가들의 영혼을 치유했듯, 이런 작품들은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저는 저자의 논지에 동의합니다. 이 책은 예술의 정신과 의미를 넘어 삶의 의미와 은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많은 울림이 있었던 독서였습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