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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지상파방송 OBS가 2년 동안 방송했던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의 내용을 PD 환성환 씨가 엮은 것입니다.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 이렇게 여섯 가지의 키워드로 근대 조선인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욕망을 파헤쳤습니다. 말하자면, 역사를 거시사가 아니라 미시사로 파악한 것입니다. 이런 시각 덕분에 근대 조선,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고 정감 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고, 대중음악, 미디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서민의 삶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변천과정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보고 들었던 많은 것들이 일제 강점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다양한 역사 상식도 늘었네요.
광고에 관해, 최초의 신문 광고는 1886년 <한성주보>에 처음 나온 세창양행 광고라는 것, 당시 광고는 ‘고백’(告白)이라고 표현했다는 것, 광고라는 표현은 <독립신문> 창간호에 처음 나왔다는 것, 등 많은 상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공터나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고문 끝에는 언제나 “주인장 백”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백”은 고백의 백(白)이랍니다. 쌀로 만든 술을 정종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말로 청주라고 해야 맞습니다. 정종(正宗)은 일본 청주의 상표명(마사무네)이랍니다. 또 1899년 나온 전차에도 “오루도 히이로”(Old Hero)라는 담배 브랜드가 광고되었군요. 일제시대 국가 간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일상생활은 계속되고, 사람들의 욕망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음을 광고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트로트에 관해, 나는 학생시절 트로트는 촌스럽고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들떠보지도 않죠. 주로 팝송을 들으며 고상한 척 했습니다. 그런데 트로트가 일제시대에 신교육을 받고 일본어도 꽤 하는 대도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던 노래였답니다. 나 어릴 적에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이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는데,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낍니다. 그리고 트로트만을 왜색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우리는 은근히 일본 것은 무조건 나쁘고 촌스러운 것이라고 세뇌당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신문에 관한 것도 많이 유익했습니다. <한성순보>,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 <한성주보>, <한성신문>, <제국신문>, 장지연 선생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기재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이런 신문들은 언제 창간되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치며 폐간되거나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주제를 대화체로 전개하고, 한 꼭지 끝에 대담식 ‘역사토크’를 적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오늘날의 광고나 대중음악, 신문 등을 어떤 관점에서 비평하며 대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를 읽고 시대는 변해도 사람의 욕망은 변하지 않음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고 동일한 생각을 해 봅니다.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