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너머 그대에게 - 세상 속 당신을 위한 이주향의 마음 갤러리
이주향 지음 / 예담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이주향 교수의 글들을 좋아합니다.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꼬박꼬박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그림 너머 그대에게」를 접했을 때, 강하게 끌렸습니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깊은 철학적 사고가 명화 속에 나타난 이야기와 만나, 어떻게 멋진 글로 표현될지 궁금했습니다. 이 책은 철학적 통찰력으로 그림을, 아니 실상은 우리 자신과 우리네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글과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는 내면을 향하고, 치열하게 삶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번 존스의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에 대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림은 낭만적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거지 소녀를 사랑해서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왕관을 내려놓고 있는 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p. 035). 그런데 이어지는 글이 내 생각을 붙잡습니다. “저런 상황이라면 왕으로 사는 것은 괴롭고, 왕관을 내려놓는 것은 외롭겠습니다.”(p. 36). 나는 어느새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몸담고 있어서, 어느새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끼고 이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왕관, 즉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뤄낸 업적과 명성,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들! 이것을 내려놓는 것은 외롭고, 쓰고 있어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가 왕관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의 덫이 되고,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겉치레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왕관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왕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p.38)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 그림의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이전에 미술책을 읽으며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주향 교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림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여인의 표정은 단정하지도 않지만 도발적이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천연덕스럽지요.”(p. 73). 그러다 보니 그림속의 인물들은 모두 편안하지 않으면 취할 수 없는 자세들을 하고 있군요. 비록 이 그림의 신사들은 단정히 양복을 입고 있지만 나체로 있는 여인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함께 앉아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입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으로 책장을 넘기고, 글을 읽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그림은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달빛 한 줌, 이슬을 모으는 물 병, 만돌린 소리와 내 속의 사자, …”(p. 121) 이 모든 것은 집시의 삶의 동반자들입니다. 우리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면서, 삶의 소중한 동반자들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 책, 이런 식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 아니 그림과 철학을 좋아하는 분들, 분주한 삶 속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 자신의 내면을 살며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책을 넘기다가 마음에 와 닿는 그림, 문장 한 줄을 붙잡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자가 친절히 다가와 질문을 던집니다. 어느새 저자와 깊게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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