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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작가 헤르만 헤세의 문장은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나는 이 책, <헤세의 문장론>을 통해 책과 책읽기에 관한 그의 생각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다.
헤세는 책이 지닌 마력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말과 글, 책이 없이는 역사도, 인류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p. 255). 외관상 오늘날 글과 책은 특별한 마력을 모조리 빼앗긴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관상 그렇게 보일 뿐이다. 글과 책에는 영원한 기능이 있고, 여전히 소수의 사람만 영험한 부적을 수중에 넣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책의 세계가 화단과 연못이 딸린 유치원인 줄 알았다가, 그 정원이 풍경이 되고 대륙이 되고 세계가 되고 낙원이 됨을 경험한다(p. 265). 나는 책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헤세의 은유(mataphor)에 감탄한다. 당시 영화나 방송으로 책이 그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염려가 있었지만, 헤세는 글과 책에 영원한 기능이 있음을 확신했기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도 인쇄된 글과 책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마력은,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 소수의 사람에 의해 발견될 것이다. 책의 무한한 세계와 그 마력에 푹 빠지고 싶다. 그것이 나름 위험하다할지라도 책의 광활한 세계가 없는 삶보다 더 위험하겠는가!
책 읽기에 대해, 헤세는 세 단계의 독자를 말한다(pp. 193~199). 첫째 단계, 순진한 독자는 식사하는 자가 음식을 먹듯, 말이 마부의 인도를 따르듯, 책은 이끌고 독자는 따라간다. 둘째 단계, 천재적 놀이 본능을 보여주는 독자는 짐승의 발자국을 쫓는 사냥꾼처럼 작가를 쫓는다. 셋째 단계, 개성적이고 주관적인 독자는 책을 단지 출발점이나 자극으로 여길 뿐이다. 물론 헤세는 독자들은 하나의 단계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둘째 단계였다가 내일은 셋째 단계, 혹은 모레는 첫째 단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셋째 단계의 독자는 더 이상 독자가 아닐지 모르지만, 그에게 글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은 비길 데 없이 희귀한 책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헤세는 독서에 대해 “사람들이 도처에서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p. 118)고 주장한다. 책은 삶에 유익할 때만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는 독서의 질 자체에 관심을 둔다. 생각 없는 무가치한 독서는 마치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p. 120). 따라서 그는 ‘책 읽기와 책 소유하기’(pp. 84~88)에 대해서도 뚜렷한 주관을 보인다. 올바른 독자는 기본적으로 책 애호가이다. 하지만 그 자신도 책을 검사하고 정리했다(p. 159~162). 그는 역사서, 예술사, 철학자들의 책들을 먼저 정리한다. 그래도 칸트와 니체,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의 책들은 치워버리지 못한다. 작가들의 책도 정리한다. 모든 책 정리를 마쳤을 때, 그는 비로소 책과 자신의 관계가 무척이나 변했음을 인식한다. 전에는 아끼는 마음으로 참고 있던 것들을 웃으면서 정리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훨씬 환히 빛나는 보물들을 남겨두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도 적지 않은 책을 소장하고 있고, 읽었으며, 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읽기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다독이 아니라 정독을 통해 독서의 질을 높여야 함을 느낀다.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을 읽기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책은 왜 읽는 것인가? <헤세의 문장론>을 읽으며, 책 읽기의 마력으로 내 삶이 변화되길 기대한다. 나만이 생각하고, 나만이 살아낼 수 있는 나만의 삶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