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 성도의 품격 - 성품의 변화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길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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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믿음은 좋은데 성품은 형편없어라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말을 들으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성품이 따라가지 않는 믿음이 진짜 믿음인가? 얼마 전 김병삼 목사의 <웰컴 투 광야>를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싶어, 이 책 <성품, 성도의 품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성품이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그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이데, 삶의 위기 가운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성품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때 변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품은 평생을 써 내려가야 하는 서술형 문제”(p. 23)이다. 따라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딤전4:7)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교제해야 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 예배, 교회 생활에 익숙하고 편안해졌고 그것은 곧 무덤덤으로 이어졌다. ‘무덤덤은 무덤에다 덤을 하나 얹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무감각한 믿음생활은 나를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행복과 기쁨을 주지 못한다. 익숙함을 넘어 친밀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면, 예수님의 성품이라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럼, 대표적인 성도의 성품은 무엇인가? 저자는 겸손을 제일 앞에 놓는다. 그리고 성경에서 겸손한 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하신다(벧전5:6). 둘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11:2). 셋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부흥의 특권을 주신다(대하7:14).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11:29) 본래 하나님과 본체시지만 자기를 낮추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까지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2:5~8). 성도는 예수님의 인격처럼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저자는 다니엘 이야기를 통해 겸손 다음으로 용기를 성도의 품격으로 제시한다. 그 다음, 비전도 성품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사람은 모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 책 곳곳에 재미있는 예화와 탁월한 적용이 가득하다. 또 각 장 마지막에 있는 [소그룹 나눔]생각열기’, ‘배워보기’, ‘내 삶에 적용하기’, ‘묵상&기도순으로 되어 있어 앞에 배운 것을 정리하고 기도까지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책을 다 읽고 겸손, 용기, 온유, 비전, 기쁨, 감사 중에 나에게 가장 부족한 성품은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다 부족하다. 그것도 너무 부족해서 부끄럽다. 하지만 성품은 평생을 써 내려가야 하는 서술형 문제라는 말씀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고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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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광야 - 광야 여정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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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의 삶은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걷는 것처럼 팍팍하고 힘들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왜 이런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냐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김병삼 목사는 <웰컴 투 광야>에서 현재의 어려운 길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해주는 축복의 길이라고 설교한다. 저자의 서문에 있는 제안이 마음에 든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부르시는 곳이 광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걷기보다는 기대를 갖고 광야로 들어서면 어떨까요?”(p. 8). 이왕 광야 길에 들어섰고 이 길을 걸어야 한다면 하나님을 향해 기대하는 마음을 갖자! 그렇다. 순조로운 길보다 위험하고 황량한 길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가 훨씬 많을 것이다.

 

저자는 고센 땅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는 늘 원하는 자리에 있을 수는 없지만, 원하지 않는 곳에서 고생을 해도 그 고생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홍해를 건넌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감이 생기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광야 생활 초입 마라와 엘림 사이에서 여정은 은혜가 떨어질 때이며 계속 순종하며 걸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점검하는 때이다. 하나님의 산, 시내산에 오른 것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 때문에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곳이었다. 드디어 느보 산이다. 느보 산이 보여주는 교훈 중 하나는 “The best is yet to come(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p. 186)이다. 이 문장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는 단순히 긍정적 사고방식이 안라 신앙적 사고방식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고 자주 외쳐야겠다. 이 책은 고센에서 시작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여리고 성 앞에 서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침묵과 순종!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이 책, 재미있는 예화와 쉬운 설명, 삶의 탁월한 적용이 돋보인다. 설교 한 편이 끝나면 ‘소그룹 나눔’으로 정리하고 묵상하고 적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단순한 설교집으로 끝나지 않고 소그룹 교재로 사용하거나 혼자 묵상하며 적용할 수 있도록 아주 주의깊게 기획되어 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앞날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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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지도로 읽는다
라이프사이언스 지음, 노경아 옮김 / 이다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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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를 가진 자로 타종교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그 무지함 때문에 타종교에 대해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배타적이지 않았는지, 전세계적으로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그래서 세계 5대 종교를 도표와 지도로 비교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1장은 세계 5대 종교의 창시자, 핵심 교리, 경전, 성지, 교파 등을 한 눈에 보도록 정리한다. 2장부터 5장까지는 종교와 관련된 뉴스거리와 상식들, 경제적 문제와 분쟁을 다룬다. 나는 특히 ‘4장. 종교지도로 세계분쟁을 읽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종교적 충돌은 우리의 피부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종교의 충돌은 새뮤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지적하기 훨씬 이전부터 빈번히 발생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지를 둘러싼 3대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지금까지 지속되는 대립은 종교 충돌의 상징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종교 간의 충돌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의 가톨릭교, 세르비아정교, 이슬람교의 분쟁은 무려 2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북아일랜드군(IRA)과 개신교도들의 무력 투쟁, 이슬람교 내에서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싸움, 인도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대립, 등 수없이 많은 갈등을 열거할 수 있으리라. 이런 무력 충돌 이외에서 문화 정치적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 ‘부르카’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계속 확산되고 있고, 지하드(성전, 聖戰)라는 미명하에 IS의 지속적인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본래 이슬람교에서 ‘지하드’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대(大) 지하드’는 자기 내면의 ‘악’과 싸우는 정신적 수양을, ‘소(小) 지하드’는 공동체를 침략한 적과의 싸움을 가리킨다. 본래 무함마드는 대지하드를 장려했으며 소지하드는 어쩔 도리가 없을 때만 선택하라고 가르쳤단다. 무차별 자살 폭탄 테러는 이슬람의 지하드 사상에 위배되는 것이다(pp. 179~182). 이전에는 이슬람 하면 폭력적인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고등 종교는 신과 인간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모두와 평화롭게 살라고 가르친다. 종교간 교리의 차이보다 이런 거시적 가르침의 공통점에 집중해서 서로를 인정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에 함몰되지 않고 타종교인을 좀 더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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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신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악하는게 만드는가
아라 노렌자얀 지음, 홍지수 옮김, 오강남 해제 / 김영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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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종교 진화적 관점에서 종교, 특히 초월적 감사자인 Big God을 믿는 거대종교가 어떻게 초사회성(ultra-sociality) 형성에 공헌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종교의 미래는 어떠할지를 진지하게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의 논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결속력이 강한 소규모 집단(게마인샤프트)에서 유전적으로 무관한 익명의 낯선 이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규모로 지속적으로 협력을 실천하는 익명의 거대한 사회(게젤샤프트)로 급격히 변모하는 과정을 겪었다”(pp. 18~19). ,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혈연과 관계없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일에 거대한 신들(Big Gods) 을 섬기는 친사회적 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수렵채집 사회에 있던 샤머니즘은 도덕적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조상들이 믿었던 신은 비도덕적 범죄행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통해 달래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신은 인간의 도덕적 행동을 제대로 감시할만한 전지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였다. 하지만 친사회적인 거대 종교가 등장하면서 거대 집단 내 구성원들의 협력을 촉진시켰다. 왜냐하면 보는 눈이 있으면 언행을 삼간다는 말이 있듯,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는 초월적인 신의 존재는 인간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좀 더 올바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거대 사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속적 사회는 종교라는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왔다. , 거대종교 덕에 거대 사회는 구성원 간의 협력과 신뢰를 이루었다. 이제 목표를 이루었으니 사다리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일까? 실제로 덴마크 같은 무신론적 사회에서는 거대종교의 역할을 정부가 감당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강해지면 종교는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미래에 종교는 사라질 것인가? 저자는 친사회적 거대 종교가 세속 제도나 정부보다 유리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들의 높은 출산율이라고 말한다. 사실 아직도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아직도 종교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종교로 귀의하는 자들도 여전히 많다. 아마도 종교 간의 갈등과, 종교와 세속적 삶의 방식과의 알력은 다음 세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p. 351). 

 

종교를 가진 자로서 매우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오강남 종교학 교수의 해제도 유익했다. 결국 종교의 기본은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 천국에 가고자 애쓰는 자는 진정한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일 것이다. 종교는 신앙인들에게 이기주의와 탐욕을 극복하고 도덕적으로 고결한 삶을 추구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타종교와 대립하기보다 같은 방향으로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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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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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인생길, 시가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을 체험한 김기택 시인, 그는 시에는 “신나는 즐거움, 슬픈 즐거움, 괴로운 즐거움, 지루한 즐거움, 무서운 즐거움”(pp. 9~10)이 있다고 말한다. 시를 통해 그는 지겹고 틀에 박힌 일상을 두근거리며 쳐다보게 되었단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그가 들려주는 시와 관련한 인생 이야기에서 나의 영혼은 정화되고 위로를 얻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 산문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학집배원’으로 임명받아 일년간 매주 월요일마다 인터넷망에서 시 편지를 배달한 것을 묶은 것이다. 목차를 보니 51편의 시 중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낯선 시(詩)에 기댄 시인(詩人)의 산문(散文)이 더 기대가 된다.

 

가을이니 ‘3부. 가을에 읽는 시’를 들추어 본다. 윤희섭의 <바람의 냄새>를 소개한 뒤, 김기택은 가을의 첫날을 냄새로 느낀다고 말한다. 가을의 냄새는 성장의 숨가쁨을 벗어나 여유롭게 내쉬는 호흡의 냄새란다. 가을바람의 냄새에는 세월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일까? 가을바람의 냄새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는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가을저녁 바람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래, 시(詩)를 통해 나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숨을 쉰다.

 

김혜순의 <잘 익은 사과>도 맛있다.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 … /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 … ”(p. 172). 김기택의 지적처럼, 이 시는 오감을 통해 사과가 걸어오는 말을 들려준다. 어제 저녁 아내가 깎아준 사과를 먹으며 나는 가을바람과 고향풍경을 오물거리며 온몸에 흡수했다. 가을에 먹는 사과는 내 영혼의 보약이다.

 

‘3부. 가을에 읽는 시’의 타이틀은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이다. 김기택은 박형준의 <사랑>을 실어놓고는 사랑은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일처럼 난해하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시인들의 시 일부를 언급한다. 이상의 <지비(지碑)>, 함민복의 <부부>, 장석남의 <묵집에서>, 윤제림의 <젓가락쓰기 혹은 사는 법>. 사랑이란 두부나 묵을 젓가락으로 붙잡는 것처럼 어려운 것인가? 그래서 사랑은 자주 깊은 슬픔을 열매로 맺는 것일까?

 

김기택의 말처럼 “슬픔에도 맛이 있다”(p. 237). 시인은 삶의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세월을 담아 향기로운 맛이 배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조은의 <등 뒤>에 배어있는 슬픔은 너무나 잘 익어 “눈없고 코없는 등으로도 눈물과 우는 얼굴의 주름과 어깨의 들먹거림이 선명하게 보일 것 같다”(p. 239)고 표현했다. 김기택의 산문은 시를 닮았다. 시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을에 읽는 시와 시인의 산문은 나의 가슴에 아련한 향수, 슬픔, 기쁨, 사랑, 추억을 가득 담아 주었다. 이 책,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잠 안 오는 밤 뒤적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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