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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팍팍한
인생길, 시가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을 체험한 김기택 시인, 그는 시에는 “신나는 즐거움, 슬픈 즐거움, 괴로운 즐거움, 지루한 즐거움, 무서운
즐거움”(pp. 9~10)이 있다고 말한다. 시를 통해 그는 지겹고 틀에 박힌 일상을 두근거리며 쳐다보게 되었단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그가
들려주는 시와 관련한 인생 이야기에서 나의 영혼은 정화되고 위로를 얻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 산문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학집배원’으로 임명받아 일년간 매주 월요일마다 인터넷망에서 시 편지를 배달한 것을 묶은 것이다. 목차를 보니
51편의 시 중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낯선 시(詩)에 기댄 시인(詩人)의 산문(散文)이 더 기대가 된다.
가을이니
‘3부. 가을에 읽는 시’를 들추어 본다. 윤희섭의 <바람의 냄새>를 소개한 뒤, 김기택은 가을의 첫날을 냄새로 느낀다고 말한다.
가을의 냄새는 성장의 숨가쁨을 벗어나 여유롭게 내쉬는 호흡의 냄새란다. 가을바람의 냄새에는 세월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일까? 가을바람의 냄새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는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가을저녁 바람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래, 시(詩)를 통해 나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숨을 쉰다.
김혜순의
<잘 익은 사과>도 맛있다.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 … /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 … ”(p. 172). 김기택의 지적처럼, 이 시는 오감을 통해 사과가 걸어오는 말을 들려준다. 어제 저녁 아내가 깎아준
사과를 먹으며 나는 가을바람과 고향풍경을 오물거리며 온몸에 흡수했다. 가을에 먹는 사과는 내 영혼의 보약이다.
‘3부.
가을에 읽는 시’의 타이틀은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이다. 김기택은 박형준의 <사랑>을 실어놓고는 사랑은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일처럼 난해하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시인들의 시 일부를 언급한다. 이상의 <지비(지碑)>, 함민복의 <부부>, 장석남의
<묵집에서>, 윤제림의 <젓가락쓰기 혹은 사는 법>. 사랑이란 두부나 묵을 젓가락으로 붙잡는 것처럼 어려운 것인가? 그래서
사랑은 자주 깊은 슬픔을 열매로 맺는 것일까?
김기택의
말처럼 “슬픔에도 맛이 있다”(p. 237). 시인은 삶의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세월을 담아 향기로운 맛이 배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조은의
<등 뒤>에 배어있는 슬픔은 너무나 잘 익어 “눈없고 코없는 등으로도 눈물과 우는 얼굴의 주름과 어깨의 들먹거림이 선명하게 보일 것
같다”(p. 239)고 표현했다. 김기택의 산문은 시를 닮았다. 시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을에 읽는 시와 시인의 산문은 나의 가슴에 아련한
향수, 슬픔, 기쁨, 사랑, 추억을 가득 담아 주었다. 이 책,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잠 안 오는 밤 뒤적거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