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길, 휴거 -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 소설
어니스트 앵그리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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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소설은 출판된지 50년이 넘은 기독교 소설이다. 내가 대학교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을 때, 필독서 중 하나였다. 이 소설은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히 믿게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도전하는 이야기라고 소개받았다. 그 때 읽을 때는 왠지 무시무시했고 두려웠다. 이 소설의 스토리의 전개가 어땠는지 가물가물한데, 브니엘 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와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수천 명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바로 전날 순수한 신앙으로 무장한 작은 교회 목사, 리오 매스퍼가 예수님의 재림과 믿는 자의 휴거를 설교했고, 그것을 믿는 경건한 여인 콜린스와 그가 양육하던 어린 손주들은 휴거한 것이다. 반면 대형 교회의 목사, 모어헤드는 성경의 이야기를 신화로 여기고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를 믿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설교에 평안함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휴거가 일어난 것이다. 남아 있는 자들은 혼돈에 빠졌다. 얼마 후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상을 통치하며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며 이 표를 받지 않는 자들을 핍박한다. 한편 헤스터 가족은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았음을 뒤늦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기로 한다. 반면에 콜린스의 아들 짐은 어머니의 신앙을 버리고 ‘짐승의 표’를 받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낸다. 헤스터의 부모님은 믿음을 지키다가 온 몸이 절단되어 죽고, 결국 헤스터도 메리의 신앙을 격려하고 자신은 화형의 순교를 당한다. 그리고 메리도 단두대에서 순교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천국에 이르는 길이었다. 바로 그 날 이 땅에 진노의 날이 임하였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태양도 빛을 잃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흰색 말을 타고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모습을 나타내셨다. 짐승의 표를 받은 불신자들(그들 중에 짐도 있었다)은 두려워 떨며 거대한 돌과 산 앞에서 ‘나를 덮쳐달라’고 외친다. 짐은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었다. 그는 영원히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책은 분명 미지근하게 믿음 생활하는 자들에게 도전이 되는 책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예수님의 이중 재림, 즉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믿는다. 공중재림이란 예수님이 첫 번째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믿음 생활을 잘 하는 자들만이 휴거(携擧) 즉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서 재림하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재림이란 천년왕국 뒤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믿는 자의 휴거를 전제로 해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이런 스토리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나도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 그리고 휴거도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밀스런 공중 재림을 믿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보는 전 우주적인 재림만을 믿는다. 성경은 이것만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휴거도 믿는다. 그러나 잘 믿는 자만 휴거되고 땅에 남은 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주님의 재림 시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또 특정한 시대에 순교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 구원론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세대마다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믿는 세대주의자인 듯하다. 

이 책은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소설’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이 분명하고 확고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도전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믿는 자만의 휴거 그리고 휴거 후 환란의 시대에 순교만이 구원을 얻는 길이라는 주장은 성경적이라 말할 수 없다. 믿음의 후배들에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차라리 성경을 한 번 더 읽으며, 주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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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er 2014-05-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대주의에서 세대마다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나 개혁주의에도 아류가 있고 이단이 있는 것처럼, 세대주의를 표방하면서 이상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세대주의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임재 연습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발견하기
앤드류 머레이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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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19:2).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리고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모두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신다고 배웠다. 나는 이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앤드류 머레이는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에게 도전한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회심과 믿음의 삶으로 인도하시지만 우리 안에 내주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준비하시고 계신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 완전히 내주하셔서 우리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하시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 믿으니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너무 조급하게 안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에베소의 몇 몇 제자들은 예수 믿고 나중에 바울의 안수를 받으니, 성령이 임했고 방언도 예언도 했다. 또 오순절 사건도 이미 예수님을 믿고 따른 제자들에게 임한 일이 아니던가! 내가 배우기는,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 사건으로 제자들에게만 특별히 일어난 일이라고 배웠다. 분명 오순절 사건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순절에 임한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신자들에게 찾아오시고, 내주하시길 원하신다. 저자가 말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일이다. 저자는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임재가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성령의 임재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원 제목이 더 저자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In Search of Spiritual Excellence, <영적 탁월함을 추구하라> 이 정도의 번역이 어떨까? 

이 책을 통해 나는 도전받았다. 현재의 믿음 생활에 만족하거나 안심하지 말고 더 영적인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5:18)고 권면한 것의 핵심 내용이다. 머레이 목사님은 충만한 것과 흘러넘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p. 126). 그릇에 충만해도 남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가득차서 넘쳐야 계속해서 공급된다. 따라서 우리는 한 번 성령의 충만함을 맛보았다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차고 넘치기를 소망하고 추구해야 한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붙잡고, 자기를 부정하고 희생과 내어줌을 통해 성령의 흘러넘침을 추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성령의 지배 아래 산다. 성령의 충만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넘어 성령의 흘러넘침으로만 온전하고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성령 하나님을 열망하는가? 나는 성령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는가? 성령의 축복을 누릴 뿐 아니라 유지하고 더 나아가 증가시키고 있는가? 현재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한두 가지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자. 현재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행하는 한두 가지 일로 만족하지 말자. 오늘도 성령님의 임재를 온전히 경험하길 소망한다. ‘내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시여, 내 속에 차고 넘치시옵소서. 내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이, 나의 전부가 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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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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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기치를 내걸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갔다. 은혜를 붙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선택하여 구원과 복을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마지막 청교도이며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설교자요 복음 전도자인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해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다.   

오늘날 여전히 값싼 복음과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설교가 인기 있다. 이러한 시기에 스펄전 목사님의 은혜에 관한 설교가 출판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며 다행스러운 일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놀라운 은혜의 언약을 사모하라’에서 먼저 은혜의 언약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첫 번째 행위언약을 맺으셨지만, 첫 번째 아담은 실패했다. 이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두 번째 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맺은 언약으로 실패가 없다. 인간은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전적인 은혜의 언약인 것이다. 사실 우리의 믿음조차 은혜의 언약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책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한다. 우리에게 은혜의 언약을 허락하신 성부 하나님은 주권자요 통치자이신데, 우리를 특별한 방식으로 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양자 삼으시고, 의로 덮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성자 예수님은 은혜의 디딤돌이 되셨다. 그래서 그분의 모든 직분, 모든 성품, 모든 사역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 속에 그리스도를 두심으로, 우리는 위로받고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부요함을 마음껏 경험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은 은혜의 인도자가 되셔서 우리를 살리시고 도우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  

스펄전 목사님처럼 하나님께 집중하여 은혜를 설교한 목사님은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은혜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믿음 생활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는 것임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 책의 제목(God's Grace to You)이 잘 의역되었다. “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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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기 연습 - 행복을 만끽하는 평생 축복의 길
정영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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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앙의 본질은 ‘나를 비우고(내려놓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려놓기’란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모습과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하는 외식적인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이 ‘내려놓기’는 모든 영성의 출발점이다. 하나님과 본체이신 예수님도 자기를 비우시고(내려놓으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빌2:6~8). 신앙이란 이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 아닌가!(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외쳐지는 메시지는 ‘내려놓기’가 아니라, ‘채워넣기’다.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에 근거해 믿음 생활을 하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자기중심적이 되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위선자가 되어 간다. 기도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어 간다. 그리고 이런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또 하나의 바벨탑이 되어간다.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정영순의 <내려놓기 연습>은 나름대로 개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루터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 2 종교개혁의 소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과 교회 생활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자기중심적인 의식,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 신앙생활의 외식적인 껍데기, 왜곡된 신앙의 태도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라고 도전한다. 또 교회 생활에서 조직의 틀, 배타적인 태도, 차별적 의식, 정치적 유혹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도전한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내려놓기 연습’을 해야 할 것들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 빠져있고, 저자 자신이 올바른 신앙 공동체를 이루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의 예만 들어 보자. 그는 타 교회에 대한 배타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교인이 새로 교회에 등록하면 크게 환영을 한다. 그러나 교인이 다른 교회로 옮긴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 박수를 치고 환송을 하는가, … 배신자와 같이 여기는 경우도 많이 본다. … 같은 주님을 섬기는데 내가 다니는 이 교회면 어떻고 다른 교회에서 섬기면 어떠한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이웃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인가?”(pp. 47~48).  

나는 저자의 이런 단세포적인 비판에 못마땅하다. 저자는 어떤 교인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근본적으로 물었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교인들이 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서 멀어져 있다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더 많은 경우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혹은 자신이 교회의 중요한 직분에서 밀려나서, 개인적인 필요(감정적, 물질적, 영적 필요)를 충족받기 위해 옮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자기 중심의식, 다른 교인이나 목회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 교회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려는 마음의 결여, 등)을 내려놓지 못해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정죄하면 안 되겠지만, 그들을 박수치고 환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가 오히려 이기적인 신앙을 부추기는 것이며, 제대로 신앙을 지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큰 틀에서는 대부분 옳지만, 비판하는 글들이 때로는 피상적이고 일방적이다. 이런 책을 쓰려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대안을 제시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프로필에 제시한 것처럼, “한국교회 ‘성장’에 꼭 필요한 등불이 되려는 비전을 갖고” 교회 친절 및 매너 교육, 여성 리더십 등을 교육하는 일들을 한다. 교회 성장을 위해 친절 교육과 여성 리더십을 교육하는 저자에게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비판을 넘어 더 근본적인 비판과 올바른 신학적 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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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박형만 지음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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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필사(聖經筆寫), 믿음이 돈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성경책을 직접 자신의 글씨로 쓴다. 성경의 분량이 만만하지가 않아, 신구약 성경을 모두 필사하려면 하루 4~5시간씩 꼬박 1~2년은 걸린다. 나는 누가 성경을 필사한다면 ‘대단하십니다’하고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성경필사는 미련한 짓이라고 차라리 성경을 연구하고 암송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필사 과정에서 대부분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아프고 팔목이 시큰거림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의 과정에서 독특한 은혜를 체험한다. 인내하며 말씀을 차곡차곡 노트에 적어가면서 자신의 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경험들을 한다.  

한 크리스천이 나무에 성경을 빼곡히 적고 십자가를 형상화하여 기독교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작품을 만들 때의 작가의 마음과 신앙고백들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선물>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작품 해설집이라 할 수 있다. 표지부터 참 마음에 들었다. 한지 분위기가 나는 흰색바탕에 어디서나 쉽게 주울 수 있는 십자가 모양의 나뭇가지가 그림자를 드러내며 찍혀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인간이 손을 높이 쳐들어 맞잡고 있는 듯하다. 왼편에는 붉은 세로 막대로 처리하고 책제목도 붉은 색으로 단아하게 새겨져있다. 표지만 보고 있는데, 내 마음에 십자가의 울림이 있다.  

‘천사의 날개’라는 작품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십자가 나무판에 대못을 빼곡히 박아 넣은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죄를 하나하나 고백하며 나무에 못을 박았단다. 어느새 십자가는 온통 못으로 뒤덮이고, 더 이상 못 박을 공간이 없다. 처음에는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십자가였는데, 두 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십자가가 되었다. 작가에게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곧 회개의 행위였고, 인간의 엄청난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예수님의 지독한 사랑에 대한 신앙고백의 행위였다. ‘천사의 날개’ 작품 사진이 너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흠이 가득한 검은 바탕에 못이 가득 박힌 십자가가 걸려 있다. 조명이 비치고, 뒷그림자는 마치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이 작품 사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작가는 건축 현장에 굴러다니던 나무토막을 들고는 거기에 성경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버려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너를 내가 구원해 주마’(p. 13). 이것은 작가 자신을 향한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는 1,000일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나무에 성경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다메섹에서 바울이 보았던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무에 필사할 때, 그는 바울처럼 살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집을 내면서, ‘성경공부’, ‘기도’, ‘필사’가 자신의 믿음 생활의 근간이라고 고백한다. 성경적인 삶이란, “단순하라(Be simple)”, “포기하라(Give up)”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무와 여러 재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십자가를 형상화하는 작업들을 통해 온전한 구원과 믿음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십자가 작품들을 전시한 가게를 열게 된 것은 선물+(PLUS GIFT)라고 말한다. 그의 미술작품 뿐 아니라, 글 솜씨 또한 맛깔스럽고 빼어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로 살기를 추구해야 신앙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조금 더 천천히 묵상하며 아날로그로 살기! 나도 그렇게 살아보리라. 삶의 몸짓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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