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칼로레아 세계사 - 깊이 있는 질문은 시대를 관통한다
임라원 지음 / 날리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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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역사 공부! 바칼로레아 세계사를 읽으면서 이게 진짜 역사 공부라고 감탄했습니다. 학창 시절 역사 공부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사건을 배열하고 연도를 암기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세계사 공부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략적 사고를 함양할 최고의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칼로레아 세계사 교육의 특징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열두 개의 꼭지 제목은 모두 질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고대 유럽이 중세 유럽인의 생활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중세 봉건제도), “질병이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가?”(흑사병), 위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르완다 대학살), “왜 어떤 전쟁은 끝나지 않는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등, 하나같이 관심을 끄는 주제와 질문입니다.

중세 유럽의 봉건제와 장원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 공화정 때 광대한 토지 유지를 위해 지주와 노예가 필요했던 라티푼디움(Latifundium)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지주 귀족과 농노들이 서로 이익을 위해 상호호혜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봉건제, 경제적으로는 장원제였다는 설명이 쏙 들어옵니다. 흑사병 같은 생존의 위기 상황에 인간들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결정을 내립니다. 생존의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이 질문에 답할 줄 알아야 먼 훗날의 후세대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해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잔인하게도 역사는 살아남은 자가 남긴 기록”(p. 52)이라는 표현이 강하게 남습니다.

다음과 같은 역사적 진실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생각해 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갈등의 주요 원인은 식민 정부의 종교 차별정책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르완다 대학살 사건과 그 이후 상황은 식민 정부의 부족 차별정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또 에비앙 회담은 히틀러에게 유대인을 학살해도 국제 사회가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끝나지 않는 전쟁은 강대국들이 자기 이익 중심으로 외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과거 역사 공부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적어도 대학생 시절에 바칼로레아 식으로 역사 공부를 했다면, 역사를 보는 눈과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략적 사고가 크게 향상되었을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서술형으로 답하게 하는 역사 공부가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의 교육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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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잡초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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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어디서나 다양하고 흔하게 볼 수 있어서 잡초라 이름 붙이지만, 식물의 입장에서 잡초는 그만큼 탁월한 생존전략으로 나름 성공한 식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꽃보다 들에 핀 작은 야생화를 훨씬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길이나 공원을 걷다 보면, 아내의 탄성 소리가 연신 들립니다. 덩달아 나도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봅니다. 서울 태생인 아내는 식물에 관한 책들을 많이 보고 들에서 꽃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 검색해서 그 식물의 특성을 분명히 파악해 놓습니다. 그야말로 식물의 이름과 줄기와 꽃의 특색까지도 꿰뚫고 있는 식물 박사입니다. 아내가 들풀에 대해 말할 때 나도 좀 거들고 싶어서 일본의 유명한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잡초들의 전략>을 설레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습니다.

! 저자의 설명이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그는 잡초에 관한 한 일타 강사같습니다. 저자는 애기땅빈대는 개미를 의지해 꽃가루를 운반하기에 밟혀도 꽃을 피우고 씨를 남기는 데에 에너지를 쏟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애기땅빈대로부터 배우는 삶의 교훈은 위만 바라보지 않고 옆으로 뻗는 것, 땅바닥을 딛고 사는 것도 생각해 본다라고 적었습니다. 잡초에게서 배우는 멋진 삶의 전략입니다. 첫 번째 칼럼에서 저자는 식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로제트형태의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런 형태이기에 땅바닥 아래에 축적된 영양분을 사용해 다른 식물보다 앞서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운다죠. 살아가면서 자세를 낮추는 지혜가 필요함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민들레에게서 치열한 경쟁을 피함으로써 살아남는 지혜를, ‘닭의장풀에게서 다음의 다음까지 생각해 선택지를 버리지 않는 지혜를 배웁니다.

각각의 식물이 살아가는 방식을 재미있게 풀어쓴 이 책은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잡초 하나를 배우면, 인터넷에서 생생한 사진과 설명을 찾아보면서 그 잡초의 특성을 확인해봅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 ()’다양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합니다. 잡초(雜草)는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풀인 것이죠. 잡초처럼 우리도 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잡초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뜻깊은 독서였습니다. 이 책, 자연으로 휴가를 떠나는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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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희 옮김, 변광배 해설 / 코너스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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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와 함께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야간 비행>!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벨벳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초판본 리커버 양장본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봅니다. 이 소설은 저녁 시간부터 하룻밤 만에 읽어내기에 제격입니다. 책의 분량뿐 아니라 내용이 하루 동안에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조종사 파비앵이 비행을 하는 동안 땅 위에서는 국장 리비에르가 모든 것을 통솔 지휘합니다. 리비에르 아래서 일하는 감독관 로비노, 그 외의 여러 조종사, 정비사, 전화 교환수 등등. 이들의 생각과 담담한 대화와 행동을 머리에 그리면서 읽다 보면 마음속에 묵직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리비에르는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직원들에게 엄격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강력한 기쁨을 줄 수가 있는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죠. 그는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라 여깁니다. 폭풍은 피했지만 연료 부족으로 파비앵의 귀환이 점점 불가능해지자 리비에르는 말합니다. “사람의 목숨은 값을 매길 수 없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p. 102). 파비앵과의 교신도 끊어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사무실은 고요해지고 동이 트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비에르는 감독관 로비노에게 엔진 회전수를 최대 1,900으로 제한하는 서류를 작성하게 합니다. 파비앵의 실종과 관계없이 야간 비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코너스톤에서 펴낸 <야간 비행>에는 변광배 교수의 작품 해설이 실려있어,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을 줍니다. 변 교수는 1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이 성행했던 시대에 허무주의 성향을 청산하고 문학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행동주의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그중 앙드레 말로와 생텍쥐페리가 유명하죠.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야간 비행>에서 영웅주의적 태도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야간 비행>은 강한 동료애, 불굴의 의지, 침착, 인내, 의무, 사명, 행복 등. 굵직한 주제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야간 비행을 하거나 야간 비행을 감독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지만, 때로는 생명을 희생하면서도 개척해야 할 인생길도 있는 법입니다. 사명과 생명, 의무와 행복, 이런 가치들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신비가 아닐까요? 앞길에 무엇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어느 한날 밤 이 고급스러운 양장본을 다시 펼쳐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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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욕망과 삶
이문균 지음 / 밥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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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와 성서 속에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일은 그 어떤 연구보다 흥미롭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 이문균은 삶의 현장에 의미를 주는 신학을 추구합니다. 그가 여러 소설의 줄거리를 음식과 사랑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저자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환대한 미리엘 주교의 식탁을 말하면서,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아름다움”(p. 83)이라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강렬한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편의 영화도 거론됩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음식 남녀>, <바베트의 만찬>, 등등. 함께 식탁에 앉고 사랑하는 것에 어떤 행복과 윤리적 의무가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특히 <바베트의 만찬>은 기독교의 가치관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됩니다. 이제 그녀의 힘든 삶을 끝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금욕적 공동체 안에서 즐거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첨금을 다 사용해 거창한 만찬을 준비합니다. 그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를 용서하고 즐거움을 향유합니다. 말하자면 그 만찬은 공동체 사람을 위한 바베트의 희생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치스러운 식탁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행위로서의 식사는 동물의 식사일 뿐입니다. 인간다운 식사는 포용과 감사와 즐거움이 넘치는 법입니다.

Part 에는 극한 상황에서 음식 인생을 다루는데,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있어서 식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식탁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선물일 수 있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저자는 신학자답게 결론 부분인 Part 에서 예수의 인생 식탁을 다룹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나란히 나오는 분봉왕 헤롯의 생일 식탁과 예수의 오병이어 식탁을 비교하며, 헤롯의 식탁은 죽음의 식탁이고 예수의 식탁은 생명의 식탁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 식탁은 음식뿐 아니라 사랑을 함께 나누며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바베트와 예수는 이런 식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책을 덮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식사 때마다 왜 기도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마주한 식탁이 주님이 베푸신 식탁임을 명심하고, 자신도 이런 아름다운 식탁을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멋진 식사를 한 것 같은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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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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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수 코스티카 브라다탄이 쓴 <실패예찬>은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자기계발서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삶의 궁극적 목표인 성공을 위해서는 많이 실패해야 한다고,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라고 주장입니다. 자기계발서는 언제나 성공의 관점에서 실패를 다룹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인문학 관점에서 실패 자체를 다룹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패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시몬 베유의 삶을 통해 인간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 실패임을 알려줍니다. 인간은 모든 일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자신을 실제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움빌리쿠스 문디 신드롬(umblilicus mundi syndrome)’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이 육체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실패 혹은 죄라고 가르치는 그노시스파, 카타리파의 영향을 받은 시몬 베유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경험하고 가난한 동포보다 더 먹지 않겠다고 단식을 결심합니다. 그녀의 평생 대부분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는 순간이 삶의 핵심이자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시몬 베유는 철학적 확신과 개인적 소명에 따라 죽음을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몬 베유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은 그녀를 통해 영적으로 잘 사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별볼일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겸손하고 정직해집니다.

이 책은 시몬 베유를 통해 물리적 실패를, 비폭력주의를 주창한 간디를 통해 정치적 실패를, 무위만이 무의미한 존재에 대한 타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한 루저(loser) 에밀 시오랑을 통해 사회적 실패를, 그리고 할복으로 삶을 마감한 일본의 작가 미사마 유키오를 통해 죽음, 즉 생물학적 실패를 다룹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실패의 원들을 통과하면서 자기중심성과 자만심, 자기망상과 자기기만으로부터 치유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네 가지 실패의 원을 통과하는 여정 자체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 이야기는 신의 존재를 믿는 나로서는 마음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으며, 정말 우리 삶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자는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이런 충고를 합니다. 삶이 고통스러워할 가치조차도 없다면, 삶을 끝내는 것이 옳을까요? 삶의 이야기는 실패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나아갈 길을 완전히 막지는 않습니다. 그들 삶의 이야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한번 두고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글쎄요.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인생인데, 과연 한번 두고 보고 싶어질까요? 저자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어쨌든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독서였습니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합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사고와 성찰을 요구하는 만만하지 않은 독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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