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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 - 위대한 사상가들의 실패에 대한 통찰
코스티카 브라다탄 지음, 채효정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6월
평점 :
철학 교수 코스티카 브라다탄이 쓴 <실패예찬>은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자기계발서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삶의 궁극적 목표인 성공을 위해서는 많이 실패해야 한다고,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라고 주장입니다. 자기계발서는 언제나 성공의 관점에서 실패를 다룹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인문학 관점에서 실패 자체를 다룹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패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시몬 베유의 삶을 통해 인간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 실패임을 알려줍니다. 인간은 모든 일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자신을 실제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움빌리쿠스 문디 신드롬(umblilicus mundi syndrome)’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이 육체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실패 혹은 죄라고 가르치는 그노시스파, 카타리파의 영향을 받은 시몬 베유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경험하고 가난한 동포보다 더 먹지 않겠다고 단식을 결심합니다. 그녀의 평생 대부분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는 순간이 삶의 핵심이자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시몬 베유는 철학적 확신과 개인적 소명에 따라 죽음을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몬 베유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은 그녀를 통해 영적으로 잘 사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별볼일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겸손하고 정직해집니다.
이 책은 시몬 베유를 통해 물리적 실패를, 비폭력주의를 주창한 간디를 통해 정치적 실패를, 무위만이 무의미한 존재에 대한 타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한 루저(loser) 에밀 시오랑을 통해 사회적 실패를, 그리고 할복으로 삶을 마감한 일본의 작가 미사마 유키오를 통해 죽음, 즉 생물학적 실패를 다룹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실패의 원들을 통과하면서 자기중심성과 자만심, 자기망상과 자기기만으로부터 치유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네 가지 실패의 원을 통과하는 여정 자체가 카타르시스를 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 이야기는 신의 존재를 믿는 나로서는 마음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으며, 정말 우리 삶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자는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이런 충고를 합니다. 삶이 고통스러워할 가치조차도 없다면, 삶을 끝내는 것이 옳을까요? 삶의 이야기는 실패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나아갈 길을 완전히 막지는 않습니다. 그들 삶의 이야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한번 두고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글쎄요.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인생인데, 과연 한번 두고 보고 싶어질까요? 저자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어쨌든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독서였습니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합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사고와 성찰을 요구하는 만만하지 않은 독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