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머무는 곳에 인생이 있다 - 최민식 포토에세이
최민식 지음 / 하다(HadA)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한 최민식, 그는 본격적으로 ‘인간’을 피사체 찍어오면서 인생을 알아갔다. 그의 포토 에세이 <생각이 머무는 곳에 인생이 있다>도 여전히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사진에 담음으로써 찰나에 생각을 머무르게 했다. 그러기에 그는 인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진처럼, 에세이의 일관된 주제는 인생, 인격, 운명, 나이, 인간 그 자체, 이런 것들이다. 나는 그의 포토에세이에서 유독 사람의 얼굴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앵글로 담아낸 그 표정들, 어찌 저리 정직할까? 웃거나 찡그린 모습, 피곤한 모습, 때로는 체념한 듯, 때로는 달관한 듯한 모습이다. 그는 담담하고 평범하게 에세이를 이어간다.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 …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은 없다. … 화사한 미소의 얼굴은 대인관계의 성공을 일컫는 징표다. … 그래서 많이 웃어야 한다.”(p. 81). 너무나 상식적이고 밋밋한 글이지만, 그의 사진이 옆에 있으니, 문장이 마음에 확 와서 닿는다.  
  
 
 
 
 
 
 그의 사진, 참 정감 있다. take-out 커피를 웃고 있는 두 여인(0. 16), 오랜만에 만난 동창일까? 추운 겨울 그들은 어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나? 혹시 라면을 먹고 비싼 커피를 사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산의 수염 많은 할아버지(p. 35), 무얼 보고 저리 웃으시는지, 눈에 천진난만함이 가득하다. 아기를 하나 안고 하나는 업고 있는 30대중후반의 아주머니(p. 72)에게서 모성애가 깊게 느껴진다. 삶을 행복하게 요소는 무엇일까? 친구의 우정, 삶의 연륜, 모성애와 가족사랑.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으리라.   
  
 
 
 
 
 
 
 
 
 
 
 
 
 
 
 최민식의 사진에 유독 시장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 부산 시장터에서 국수를 만드는 아주머니는 피곤한 삶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p. 22). 생선을 잔뜩 널어놓은 아저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생선 한 마리를 손질하고 있다(p. 46). 손이 얼마나 시릴까? 이날 그는 생선을 다 팔았을까? 하루의 고단함 속에서 못다 판 생선은 다시 뒤에 놓여 있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기겠지. 이번에는 아주머니다(p. 78). 생선장수 아저씨 사진보다 조금 더 흐릿하다. 1999년 작품인데 왜 6.25전후가 생각나는 것일까? 밀양 양파 밭에서 일하는 분들(p. 100), 작가는 사진 옆 에세이의 제목을 ‘소박한 농부의 삶’이라 표현했다. 밭에서 일하는 시골 아주머니들, 그들의 마음이 모두 소박한 것은 아닐 게다. 하지만, 도심에 사는 자들에 비하면 그들의 삶은 소박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또 시장에 연이어 장사하는 생선장수 사진이다(p. 126). 맨 앞 아주머니 뒤에 말쑥한 아저씨가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서 있다. 아주머니의 남편일까? 고생하는 아내가 생선을 팔아 번 돈을 챙기려고 서 있는 것일까? 세 번째 아주머니의 좌판 앞에 한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문 채 서 있다. 왜 그가 시장에 나왔을까? 그의 아내가 병들어 누웠을까? 이 사진은 고단하지만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오랜 세월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가난한 시장의 서민들.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아야 이 사회가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 바로 뒷장(p. 128)에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소주맛이 좋다카이’라고 적혀 있는 앞치마를 걸치고 오른손으로는 팥죽 같은 것을 젓고 왼손으로는 연신 손님을 부른다. ‘맛 좀 보고 가이소 마. 소주도 한 잔 걸치고 가야지예~’ 주어진 처지에서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진실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최민식의 흑백 사진 한 장 한 장에 내 생각을 머물게 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말하는 인생, 평범하지만 삶의 연륜에서 나온 진실한 말들을 내 가슴에 담는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살아온 날들 만큼 인생의 애환이 묻어난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에 생각이 머물고, 생각이 머물러 있는 그 순간 작가는 나에게 말을 건다. ‘인생, 산다는 건 소중한 것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십후애사전
이나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내 나이 어느새 사십을 훌쩍 지나 오십 초반에 이르렀다. 머리는 흰색으로 물들어가고, 뱃살은 처지기 시작한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사진을 찍으면 나이든 표가 나서 이전처럼 선뜻 사진기 앞에 서지 않는다. 동창들을 만나면 ‘너는 어째 아직도 청춘이냐’고 인사말을 받지만, 그것이 ‘그래 보았자 우리는 중늙은이야’하는 마음으로 건넨 인사치레임을 느낀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열심히 살았다. 성공을 위해 부지런했고, 어느 덧 내가 속한 조직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가정에서도 아직은 가장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 부모의 품을 떠날 준비들을 한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데, 오십이라는 나이가 왜 안타깝고 서글프게 느껴질까?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씨가 나이 오십의 심리를 명쾌하게 에세이로 남겼다. ‘인생 후반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에세이’, <오십후애사전>! “오십”(五十), 나이에 대한 새로운 상상; “후”(後), 세월의 흔적에 익숙해지기; “애”(愛), 사추기(四秋期)의 은밀한 감정 다루기; “사”(事), 다시 세상과 사랑하기 위한 조건; “전”(典), 인생의 수레바퀴를 완성하는 행복 공식! 어쩌면 이렇게 맛깔스럽게 오십의 심리를 들추어 낼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책을 읽는다. 

"오십은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야 하는 나이“(p.29)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아도 자기와 가족만을 위해 산다면 결코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이 아니다. 인생 오십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나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 인생이 헛헛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남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렇다. 흰머리가 생긴다고 서글퍼하지 말자. 세월이 흐르면 우리 몸의 기능은 점차 쇠퇴하기 마련인 것을! 저자가 지적했듯,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몸에 관심을 집중하고,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청춘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답다”(p. 80), "나이에 맞는 외모가 아름답다“(p. 90)라는 저자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십대가 자식에 대한 불평으로 자주 하는 말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는 오십대의 심리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부모의 이런 감정의 근저에는 자신이 부모로서 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보답해달라는 소망이 숨어 있다는 점, 또 이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자녀에 대한 질투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p. 109). 이제 나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나만의 새로운 삶을 꿈꿀 나이가 되었다. 조금 느긋하고 겸손히 배우는 자세로, 욕심 부리지 않고, 현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별다른 사람 없다. 세월 앞에 인생은 공평해 진다. 더 이상 성공이나 돈이 아닌, 인생의 참된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할 나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남을 위한 삶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인용한 헨리 나웬의 글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용기를 지닌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 이웃을 좋게 생각하고, 비록 우리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더라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불안해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 나는 모든 이의 사랑과 우정에 고마움을 표하고 … ”(p. 244. <헨리 나웬의 마지막 일기>의 재인용).  

나이 오십 줄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정신과 의사와 대화하고 인생 상담을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지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사무실에 있는 나의 넓은 책상 한 구석에 놓아둔다. 빨간 바탕에 쓰인 표지의 아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제는 두려울 것도 없는 나이, 과거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나아가라!”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나는 오십대를 사는 내 안의 중년 남자를 응원한다. ‘브라보. 내 인생(Bravo, my life)! 참된 행복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출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길, 휴거 -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 소설
어니스트 앵그리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출판된지 50년이 넘은 기독교 소설이다. 내가 대학교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을 때, 필독서 중 하나였다. 이 소설은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히 믿게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도전하는 이야기라고 소개받았다. 그 때 읽을 때는 왠지 무시무시했고 두려웠다. 이 소설의 스토리의 전개가 어땠는지 가물가물한데, 브니엘 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와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수천 명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바로 전날 순수한 신앙으로 무장한 작은 교회 목사, 리오 매스퍼가 예수님의 재림과 믿는 자의 휴거를 설교했고, 그것을 믿는 경건한 여인 콜린스와 그가 양육하던 어린 손주들은 휴거한 것이다. 반면 대형 교회의 목사, 모어헤드는 성경의 이야기를 신화로 여기고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를 믿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설교에 평안함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휴거가 일어난 것이다. 남아 있는 자들은 혼돈에 빠졌다. 얼마 후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상을 통치하며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며 이 표를 받지 않는 자들을 핍박한다. 한편 헤스터 가족은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았음을 뒤늦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기로 한다. 반면에 콜린스의 아들 짐은 어머니의 신앙을 버리고 ‘짐승의 표’를 받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낸다. 헤스터의 부모님은 믿음을 지키다가 온 몸이 절단되어 죽고, 결국 헤스터도 메리의 신앙을 격려하고 자신은 화형의 순교를 당한다. 그리고 메리도 단두대에서 순교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천국에 이르는 길이었다. 바로 그 날 이 땅에 진노의 날이 임하였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태양도 빛을 잃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흰색 말을 타고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모습을 나타내셨다. 짐승의 표를 받은 불신자들(그들 중에 짐도 있었다)은 두려워 떨며 거대한 돌과 산 앞에서 ‘나를 덮쳐달라’고 외친다. 짐은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었다. 그는 영원히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책은 분명 미지근하게 믿음 생활하는 자들에게 도전이 되는 책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예수님의 이중 재림, 즉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믿는다. 공중재림이란 예수님이 첫 번째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믿음 생활을 잘 하는 자들만이 휴거(携擧) 즉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서 재림하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재림이란 천년왕국 뒤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믿는 자의 휴거를 전제로 해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이런 스토리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나도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 그리고 휴거도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밀스런 공중 재림을 믿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보는 전 우주적인 재림만을 믿는다. 성경은 이것만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휴거도 믿는다. 그러나 잘 믿는 자만 휴거되고 땅에 남은 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주님의 재림 시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또 특정한 시대에 순교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 구원론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세대마다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믿는 세대주의자인 듯하다. 

이 책은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다룬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소설’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이 분명하고 확고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도전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믿는 자만의 휴거 그리고 휴거 후 환란의 시대에 순교만이 구원을 얻는 길이라는 주장은 성경적이라 말할 수 없다. 믿음의 후배들에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차라리 성경을 한 번 더 읽으며, 주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er 2014-05-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대주의에서 세대마다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나 개혁주의에도 아류가 있고 이단이 있는 것처럼, 세대주의를 표방하면서 이상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세대주의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임재 연습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발견하기
앤드류 머레이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19:2).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리고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모두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신다고 배웠다. 나는 이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앤드류 머레이는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에게 도전한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회심과 믿음의 삶으로 인도하시지만 우리 안에 내주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준비하시고 계신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 완전히 내주하셔서 우리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하시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 믿으니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너무 조급하게 안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에베소의 몇 몇 제자들은 예수 믿고 나중에 바울의 안수를 받으니, 성령이 임했고 방언도 예언도 했다. 또 오순절 사건도 이미 예수님을 믿고 따른 제자들에게 임한 일이 아니던가! 내가 배우기는,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 사건으로 제자들에게만 특별히 일어난 일이라고 배웠다. 분명 오순절 사건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순절에 임한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신자들에게 찾아오시고, 내주하시길 원하신다. 저자가 말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일이다. 저자는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임재가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성령의 임재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원 제목이 더 저자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In Search of Spiritual Excellence, <영적 탁월함을 추구하라> 이 정도의 번역이 어떨까? 

이 책을 통해 나는 도전받았다. 현재의 믿음 생활에 만족하거나 안심하지 말고 더 영적인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5:18)고 권면한 것의 핵심 내용이다. 머레이 목사님은 충만한 것과 흘러넘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p. 126). 그릇에 충만해도 남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가득차서 넘쳐야 계속해서 공급된다. 따라서 우리는 한 번 성령의 충만함을 맛보았다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차고 넘치기를 소망하고 추구해야 한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붙잡고, 자기를 부정하고 희생과 내어줌을 통해 성령의 흘러넘침을 추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성령의 지배 아래 산다. 성령의 충만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넘어 성령의 흘러넘침으로만 온전하고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성령 하나님을 열망하는가? 나는 성령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는가? 성령의 축복을 누릴 뿐 아니라 유지하고 더 나아가 증가시키고 있는가? 현재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한두 가지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자. 현재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행하는 한두 가지 일로 만족하지 말자. 오늘도 성령님의 임재를 온전히 경험하길 소망한다. ‘내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시여, 내 속에 차고 넘치시옵소서. 내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이, 나의 전부가 되옵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기치를 내걸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갔다. 은혜를 붙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선택하여 구원과 복을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마지막 청교도이며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설교자요 복음 전도자인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해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다.   

오늘날 여전히 값싼 복음과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설교가 인기 있다. 이러한 시기에 스펄전 목사님의 은혜에 관한 설교가 출판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며 다행스러운 일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놀라운 은혜의 언약을 사모하라’에서 먼저 은혜의 언약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첫 번째 행위언약을 맺으셨지만, 첫 번째 아담은 실패했다. 이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두 번째 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맺은 언약으로 실패가 없다. 인간은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전적인 은혜의 언약인 것이다. 사실 우리의 믿음조차 은혜의 언약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책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한다. 우리에게 은혜의 언약을 허락하신 성부 하나님은 주권자요 통치자이신데, 우리를 특별한 방식으로 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양자 삼으시고, 의로 덮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성자 예수님은 은혜의 디딤돌이 되셨다. 그래서 그분의 모든 직분, 모든 성품, 모든 사역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 속에 그리스도를 두심으로, 우리는 위로받고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부요함을 마음껏 경험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은 은혜의 인도자가 되셔서 우리를 살리시고 도우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  

스펄전 목사님처럼 하나님께 집중하여 은혜를 설교한 목사님은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은혜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믿음 생활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는 것임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 책의 제목(God's Grace to You)이 잘 의역되었다. “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로 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