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만원

 박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제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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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형준의 ‘칠백만원’이란 시다.

이 시가 동료 문인들이 선정한 지난해 최고의 시로 꼽혔다.

 

칠백만원이란 금액이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그리움과 결핍을 의미하고 있다.

 

아 그 돈이 참 짢하겠구나.

어머니는 늙은아들 장가갈때 돈 때문에

힘들까바 이불속에 숨겨든 칠백장이라고하니,

먹먹해져 온다.

 

음... 울 엄마는 울기만 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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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위 시에 대한 시인의 변입니다...

시가 시인의 살아 있는 마음이었더군요..우어..ㄷㄷㄷ

 

어머니는 생애 말년 허리가 망가져 침대에 매인 몸이 되기 직전까지 내게 꾸준히 편지를 쓰셨다.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무렵부터이니까 근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이었다. 그 편지들은 우체국에서 붙인 편지들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올라오시면 내가 자취하는 작은 방에서 혹은 부엌에서 편지를 쓰셨다. 그러곤 내 책상에 편지를 올려두곤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만해 선사는 오세암에서 한겨울에 좌선하던 중에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도 일생 동안 물건 하나를 허투루 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길이 묻어 있는 그 물건들에, 그리고 그 물건들을 감싸고 있던 포장지에 적힌 편지를 통해 삶과 시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가 시를 쓰느라 몇 자 적어놓지 않고 구겨놓은 종이나 생활 용품 포장지인 마분지 조각, 그리고 비눗갑을 잘 펴서 여백에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셨다. 특히 내가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고 나서부터는 자식이 시인이니까 당신도 시인이 되어야 한다며 편지 쓰기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내가 시인이니까 어머니도 시로 내게 말씀을 하면 내가 당신의 당부를 잘 새겨들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였다. 그 당시에 마분지 조각에 쓰셨던 편지 한구절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형준아 어머니가 쓴 글을 지긋지긋한 글로 보지/말고 잘 잇고 가슴을 찌저라 지혜로운 아들은/어머니의 훈계를 잘 듯은다고 햇다”.

 
어머니는 내가 낮에는 자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지만, 무엇보다 막내인 나와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셨다. 알고 보면 어머니의 나에 대한 궁금증이란 것이 큰 것은 아니었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가장 사소한 것, 하지만 당신에겐 그 어떤 것보다 눈물겹게 소중한 것들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바란 것은 바른 생활이었다. 그것을 요약하면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직장을 다니고 장가를 가 자식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내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 말로 하면 10원이라도 받아서 아껴서 쓸 줄 아는 그런 직장 생활을 꾸준히 하지 못했고 장가도 들지 못했다. 어머니는 생활 용품 포장지나 자식이 밤새도록 종이에 쓴 시 여백에 언문체로 편지를 쓰면서, 어머니의 훈계를 지긋지긋한 잔소리로 듣지 말고 그 말씀을 통해 가슴을 찢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라는 당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성실한 농부셨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땅뙈기만을 목숨처럼 가꾸시다가 돌아가셨다. 논이 있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나와 형이 함께 사는 인천에 서민아파트를 마련해주려고 팔아버리고 난 뒤에는 동구에 있는 밭 하나만을 자신이 돌봐야 할 마지막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며 팔남매를 키웠으니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원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어머니는 일체 아버지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다. 또한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셨다.


결국 어머니는 허리 수술을 받으신 이후 인천의 형 집을 거쳐 용인의 요양원에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받기 직전 고향 집에서 혼자 지내실 때의 삽화이다. 고향에 내려온 내게 어머니는 칠백만원 이야기를 하셨다. 장롱 속에서 이불을 꺼내며, 그 이불 속에 내 장가 밑천으로 남겨놓은 칠백만원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속곳에 등록금을 꿰매고 올라오셨듯이, 이불 속에 막내의 장가 밑천으로 칠백만원을 꿰매놓은 것이다.

 
그 뒤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허리 수술을 받고도 차도가 없으셨고 허리가 더 악화되어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인천 형 집에 있을 때는 형수가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주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부담스러워하셨다. 다행히 용인의 요양원에 모실 수가 있었는데 간호사 연수소를 겸한 그 요양원은 시설도 좋은 편이었고 노인을 모시는 마음에 정성이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나도 그 칠백만원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나는 그 칠백만원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실 때 당신이 다시 고향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를 내게 되묻곤 했다. 그 사실을 떠올려 보면 어머니가 내게 칠백만원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당신이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예감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에게는 그 칠백만원에 대해 말하지 말고 자신이 죽은 다음에라도 내가 장가를 가게 되면 그 돈을 꼭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껏 내가 장가를 가지 않아서 어머니 돌아가신 뒤 벌써 5-6년이 흘렀는데도 그 돈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자식이 자신의 말을 잔소리로 들을까봐, 말 대신 자식의 곁에서 생활의 남루한 물건 포장지에 편지를 쓰신 어머니. 저승의 여비로도 쓰지 않고 자식을 위해 당신이 생애 마지막에 남겨놓은 그 칠백만원. 고향집 장롱 어딘가 이불 속에 어머니가 꿰매놓은 그 칠백만원을 끝내 찾지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 돈이 고이 모셔져 있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어머니가 장가 밑천으로 남겨놓은 그 칠백만원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무엇이라도 견딜 수 있고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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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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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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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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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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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5: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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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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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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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6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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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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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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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5: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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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6: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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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4-25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그런 지극한 애정이 있는 세상이 앞으로도 좀 되야할 텐데 가난해도 오롯한 부모 마음이 자식을 키우듯 ....지금은 물질이 사람을 키워서 뭔가 공허합니다. 잘 읽고 가요 .

yureka01 2016-04-25 13:53   좋아요 2 | URL
아 너무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물질이 사람을 키우면 공허해진다는 말씀..공감 됩니다....

cyrus 2016-04-25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니를 소재로 한 시 중에서 최고인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6-04-25 15:22   좋아요 1 | URL
몸으로 겪어서 나오는 시가 아무래도..관념적 시상보다는 더 진한 것이니까요..
절절히 져며 오는 느낌!!!~

우민(愚民)ngs01 2016-04-25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거기에 아픈 손가락이 더욱 신경쓰이는게 부모님 마음인가 봅니다.

yureka01 2016-04-26 09:14   좋아요 1 | URL
시가 문학적이 아니라 삶의 진면목에서 나오는 문장이면,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가슴이 쓰려 오는 건가 봅니다...

2016-04-26 1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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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6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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