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근 30년 넘게 근무하며 눈칫밥 먹다 보니, 두 가지 분위기에 좀 밝아진다. 누가 지지하고 좋아하며 찬성하는 건지, 반대로 누가 자기를 지지하지 않고 싫은 티가 팍팍 나는지, 대충 감이나 느낌적 느낌 등의 그 눈치를 읽게 된다. 지근한 관계가 아닐 경우라면 지지하든 반대하든 별로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어쩌다 마주치는 먼 관계라서 연관이나 연계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반대자가 상당히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라면 관계적 상황이 괴로워질 수 있다는 거다. 눈치를 보게 되는 이유이다. 만나지 않아서 안 보고 살면 눈치 볼 것도 없지만, 가족이나 가까인 지인이라 안보고 살 수도 없을 경우, 그러려면 지지하지 않는 자의 동감과 교감을 얻어야 하는 과정이 필수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진 생활에 제일 큰 걸림돌이 와이프였고 또는 가족 중 몇몇들이다. 열심히 돈이나 많이 벌어서 안락하고 풍족한 생활을 바랐던 건데 카메라 들고 돈도 안되는 사진이나 찍으러 돌아다니니까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본에 부합된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철저한 부응을 제대로 못했다. 더구나 직장 생활이라는 게 다 누구에게 노동력이나 지식과 시간을 제공하고 받는 급부인데 능력 부족으로 고액의 연봉도 받지 못했다. 뭐 대단하게 좋은 스펙의 입지전적인 업역도 아니었으니, 그저 지방의 소소한 소기업의 월급쟁이였다. 돈도 안되는 사진이나, 혹은 예술 따위는 전~혀 아니라는 식의 반응들이 일반적인 주류이다. 물론 가족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사람의 행복에 대한 관점이라는 게 그런 것들이 많았다. 장사꾼같이 영업적인 돈벌이보다는 사진이나 예술이나 찾겠다고 사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한심하고 걱정스럽고 못나 보이고, 부족하게 보이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관점에서 보는 공감의 지지와, 반대로 탐탁하지 않는 사람의 성향이 상당히 갈리는 기준이 있었더라. 그게 각자가 가진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가 결정되고 과정을 결정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지지자 대부분은 그나마 책을 좋아하고 자세히는 알지 못할지라도(물론 나도 디테일하지 않음) 간간이 자본을 제외한 것들에 대해 보려 하는 등의 호기심도 있는 편이었다. 행복의 근원이 오로지 세속적인 것에만 있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가 찬성 파였고(몇몇의 시인 분, 혹은 화가 분 등등 이른바 예술 계통에 활동하시는 분들이 찬성 파였다.) 물질적인 욕구와 욕망에 대부분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비공감자 내지는 반대자였다. 결과적으로 요약하자면, 비유물론자는 찬성파 대열이었고, 유물론자(자본론자)는 반대파 대열이란 대척점을 이루고 있더라.

물론 그게 어느 것이 나쁨도 아니다. 대부분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따라서 이에 의거해서 옮음으로 판단하고 주장하며, 반대자에게 심정적으로든 강요이든 어떻게든 바꾸길 바라며,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반대한다는 의사를 피력할 때는 그 차이로 인해서 반대자와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관점은 전부 다르지만, 자본주의적 사회에 살면서, 수렴되는 행복은 어디까지나 자본 축적이라는 생각이 다수를 이룬다. 다수는 이 반대되는 소수를 향해서 질타하고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파가 간과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란 게 자본적 집약만이 행복의 모든 총체를 이루었다거나, 합집합이라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딱 하나만이 가진 가치의 전부처럼 믿는다는 거였다. 흔히 자주 듣는 말 중에 "돈이 최고지"라는 말이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문장이고 함축된 의미이다. 한 평생을 죽어라 돈 버느라 일만 하다 보니 바다같이 많은 돈을 번다해도, 결국 욕망의 그릇은 그보다 더 크고 많은 비교 상대적인 박탈감이 자기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로 향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욕망이란 욕심과 욕구와 결합된 무한대의 사이즈를 가졌는데, 다 이루기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벌 만큼 번 사람도 늘 비교로써 결핍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열심히 일 했는데도 막상 내 호주머니가 빈 것처럼 착오같이 여겨지기도 하고 늘 남의 호주머니가 더 크고 우람해 보이는 효과 착시가 일어나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비교론적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웃기냐면, 내가 사는 30평에서 10평에 사는 사람 보고 행복감을 느끼며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인 양 착각하기도 한다. 반대로 40평을 보면 불행해진다는 거다. 내 기준의 비교론적인 관점에서 보는 행복은, 불행과 늘 교차한다. 혼자만 몰래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찾은 적도 없고 그 가치도 모르고 무시하며 산다. 비교당하며 사는 삶은 늘 불만과 불안에 떨며 자신의 삶을 부정하려 든다.


그러나 현실이란 것이 자본주의식 체재에 살면서 자본에 영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의 목적 전부를 자본에 집중하기에는 그 상대적 박탈감과 결핍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가? 자본은 더 큰 비교 우위의 자본으로만 이기고 흡족할 것이며 이에는 더 큰 자본에 비교당하면 다시  만족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가 이를 대신할 조금의 만족이란 것은 무엇이라야 할 것인가?

인생은 본질적으로 태생적 부조리함이다. 존재 자체부터 찾아오는 이별과 고통과 슬픔과 기쁨이란, 이미 수천 년 전의 사람들도 비슷했다. 당연히 돈으로도 해결이 결코 안된다.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수억만만큼을 준다 해도 이별을 막을 길 없고, 시간의 소모는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절대성 앞에서 상대적 가치란 그래서 절대적 허무할 따름이다. 또한, 사회가 사유를 통해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며 산 것이 자본만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무시한다. 늙어서 하는 소리가 허망하다는 주류의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당연하게도 자본주의 체재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돈벌이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나, 자본만이 오직 그 전부가 될 때, 또는 돈벌이가 삶의 전부이자, 존재적 생존 목적 그 자체가 되어 버렸을 때라는 게 결과론적인 "허무"를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생의 삶, 이 자체가 영업만 생각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도 다 아는 부분이지만, 당장에는 아니라며 미루고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릴 때, 미루고 미루다 결국 놓치는 것들을 나중에 가서야 소회로 토로하는 안타까움이라는 점이다. 콘트롤 되지 않는 무한의 욕망은 그래서 뒤끝이 길고 긴 회한과 미련이 만든 법이다.

먹고살고 하는데 사실 그리 많은 돈은 필요 없다. 다 상대적으로 많아야 좋을 뿐, 적정한 수준의 기준은 전부 다르겠지만 일정 부분 국민주택 규모와 서민형 suv 정도는 과시는 아니지만 부족하지는 않다. 그러나 삶의 외형적 수준에 인생이 비교당하면 상황은 오로지 돈벌이 욕망에 젖어들게 된다. 이것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놓치는 경향이 많이 있다. 불행은 비교할 때 만들어지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과연 당신과 나와 우리는, 절대적으로 흡족하고 만족한 자기 나름의 삶에 대한 방식이 있을까? 살면서 무엇엔가 쾌락하지 않고도 희열이 있었는가? 각 개인 스스로 고유한 음미할 수 있는 즐김이 무엇인가? 자기 방식의 고유성은 굳이 설득할 것도 없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해봤는데 이거였다는 것도 "사기"가 많다. 내가 해보니 매우 좋더라는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일 뿐이다. 나만의 고유한, 남들도 이해하지도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출한 자기 혼자의 희열이라면, 굳이 나타내려 하며 자랑삼아 말도 할 필요도 없다. 굳이 떠들어 주장할 이유도 없다. 제 혼자만 좋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왜 사진이 좋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난 애써 말하고 싶지는 않다. 말해봐야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굳이 억지스럽게 보일 법한 주장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만 그럼 그만이고 넌 안 좋으면 그로써 그만일 뿐이다.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은 영업 같아 보이기도 하여서 내가 영업할 필요도 못 느낀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 물론 묻는 사람도 없다.

아빠가 재벌로 둔 자식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마약으로 말초적 쾌락에 몸을 담그는 이유 뭘까. 삶이란 대체 어떻길래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물질을 탐닉하는 걸까. 이룰 수 있는 것을 거의 원하는 대로 대부분 자본으로 충족되고도 남을 텐데 왜 그렇게 혈관에 주삿바늘을 꼽고 헤롱댈까. 그게 다 이유 없을 수가 없다는 거다. 삶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그게 뭐가 되었든, 완벽한 삶이란 없다. 불완전한 이 삶의 부조리에 대한 천착이 마약이라는 게 얼마나 가여운 일인지 모를 일이다. 돈이 너무 많아서 타락한 삶이나 너무 없어서 돈 때문에 매몰된 삶이나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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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7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곤 실례 2019-09-17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입니다만, ㅎ,
저도 주부의 입장에서 한마디 한다면
와이프가 협조적이지 않은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두분은 경제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만약 입장이 바뀌어서 님의 부인이 자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며
공동으로 써야할 자본을 제법 자주 빼간다면 좋은 마음으로 지지 하시겠습니까?
역지사지를 할 수 있어야만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yureka01 2019-09-17 23:08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와이프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돈을 적당히 쓰고 즐긴다면 환영합니다.
사진 찍는데는 돈이 그리 많이 들지는 않죠..
문제는 시간이었어요....

겨울호랑이 2019-09-17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사람들은 옆구리에 붙은 살은 빼려하지만,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듯합니다. 몸의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돈의 다이어트도 기쁘게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yureka01 2019-09-17 23:09   좋아요 2 | URL
재미있는 사례연구 논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사는 대구 성서지역서 30년전에 개발될 당시, 토지개발에 따른 토지 보상금을 수령한 사람들을
추적한 논문이었거든요.
80%가 토지보상금을 대부분 투자 실폐나 낭비등으로 소진했고.나머지 20%가 다른 토지로 대토 비용으로 사용하여 더많은 부를 쌓았다는 결과였거든요.
다수가 자본이 생기면 살짝 혼이 뜨곤 하죠...그런 말있죠.없던 사람이 많이 가질수록 사람이 맛이 간다는 말....

적정함을 안다는 거....자기 그릇을 안다는 건 정말 어렵죠..

강옥 2019-09-18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영래샘 책이 썩 마음에 드셨나봐요. 보고 또 보니 더 반갑네요 ㅎㅎ
제가 알기론 조샘도 아마 돈 안되는 일에 열심이셨던 것 같고
유레카님의 생각과 비슷한 고민도 하셨던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은 볼펜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요즘은 컴터 하나만-)
사진가는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게 많잖아요. 카메라도 좀 비싼가요, 출사경비 또한 만만찮고 시간도 많이 들고
배우자의 취미생활을 이해 못하면 일생이 괴로울텐데 우리집처럼 각자도생하면 딱 좋은데 말이죠.

yureka01 2019-09-18 12:17   좋아요 0 | URL
네 책이 너무 좋더군요.시도 사진도 의미가 아주 치밀한 느낌이었어요..

멍하게 사진 담으면 결코 시가 나오지 않아서요...

제가 가진 카메라가 진짜 싸구려 저급기종입니다.
이거 얼마 하지도 않는 기종이었어요...

출사도 거의 대부분 동네 출사라서 몇시간 장거리 뛰는 출사는 거의 없었기도 합니다.

문제는 돈벌이에 신경써야지 왜 돈도 안되는 사진이냐는 거..
특히 사진은 동네든 어디든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서요..

이상하게 다른 집 부인들은 남편 꼴 뵈기 싫은 게 많다는데,
제 안사람은 자기 눈에 안보이면 불안증이 있는 거 같아서 ㅎㅎㅎㅎ

그런데 한 10년 정도 이해시키고 노력하다보니 이젠 훌륭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사진 담으로 안나가면 어디 안가냐고..이젠 찍은 사진을 달라고도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찍은 사진으로 유용하게 써먹더라구요..ㅎㅎㅎㅎ

이젠 카톡등 제가 찍은 사진으로 와이프 계정에 사진 올려 놓으면
지인들도 이젠 알아요....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무리 좋다고는 하나, 카메라 사진과는 비교가 안되죠..
그걸 알아 차린거라서요..

2019-09-23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3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9-23 15: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벌 2세가 마약에 빠지는 것이나 부자였던 사람이 수백 억을 강원랜드에서 날려 가난한 독거 노인의 신세가 된 것이나
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 저는 우선 자신이 매료될 만한 어떤 세계를 가지지 못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쁜 새로운 유혹에 빠졌다고 보죠. 글쓰기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적지요. 이미 자신이 매료된 세계가 있으니까 말이죠. 유레카 님은 글쓰기와 사진으로 행복한 세계에 계십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인 거죠.
돈은 꼭 필요합니다만 돈 걱정이 없는 정도로만 있다면 되는 것 같아요. 돈이 많다고 해서 더 행복한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건강하고, 돈 걱정이 없을 만큼 매달 연금이 나오고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견입니다.

yureka01 2019-09-23 20:13   좋아요 1 | URL
매혹과 유혹의 차이인가 봅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죽을 때까지 세상이나 주유하며 떠돌며 사진 찍으로만 다니고 싶어집니다.ㅎㅎㅎㅎ

2019-09-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3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5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5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