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의 하루출가
정석희 지음 / 황소자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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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IMF 시절 은행원으로 명퇴하고 나서 매주 산사를 찾으면서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와 법문을 적은 수양록 같은 기록이다. 왜 모르겠는가. 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50을 넘기기도 전에 미리 명퇴를 해야만 하는 엄혹한 시절과 비슷한 IMF 시절을 지나온 저자의 절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시기에는 기업의 통폐합과 부도 등으로 온 국민이 난리 난 상황에서 저자가 삶의 고뇌와 번민을 불교로써 용해시켜 내려 한 것이다. 물론 저자처럼 불교에 귀의하듯 매 주말 산사를 찾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독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하려 했다. 명퇴의 허무와 허전을 부처님의 법문에 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요즘도 나이 50 넘어가면서 직장으로부터 퇴직의 압력은 점점 높아간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나서 무얼 할 수 있을는지, 혹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은 다소 드물다. 우리나라 직장이라는 문화가 어디 개개인의 퇴직 후를 신경 쓰도록 준비기간을 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잘라내면 그만이고 준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그야말로 무방비로 막힌 구석으로 내모는 형국이다. 퇴직하고 나면 모르는 남남이 되는 철저한 계산 방식은 50 넘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책 없음을 토로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이 접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부 부유한 부모를 만난 사람이 아닌, 시골에서 상경하여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잡고 겨우 집 한 칸 마련하고 자식들 건사 시키고 나서 좀 살만해졌다 싶을 때에서야 닥친 자신의 노후는 어떨 것인지, 오늘날의 은퇴를 시작하는 세대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은퇴 후 당장에 먹고살아야 할 생활비 등 노후자금은 고사하고 다시 어딘가 벌이라는 전선으로 여전히 내몰린다. 은퇴가 은퇴가 아니었던 셈이다.  한창 생활 지금이 필요한 시기에 그만둬야 한다는 것은 50대가 닥친 벼랑 끝자락에 서서 아슬아슬한 형국을 연출하기 딱 알맞은 것이 아니었던가. 설사, 연금이나 보험 등의 생활 안정자금이라도 마련한 사람들이야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경제적인 사정뿐만 아니다.

 

그렇다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면, 당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시간의 흐름에 둥둥 떠다니는 무료함으로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 하릴없는 공원의 배회도 하루 이틀이지 죽을 때가 언젠지는 모르겠으나 생이 다하는 날까지 거리를 배회하다 생을 마감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여기에서 저자의 산사를 찾는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하기야 산이 아무리 좋아 산을 탄다 해도 산도 다리에 힘이라도 붙어있어야 하고 개인적인 특별한 의미와 시사점이 없다면 대게가 하루 이틀이면 심드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뭘 배우겠다는 것도 하루아침에 시작한다고 재미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늙은 노년은 무얼 하며 남아도는 시간과 어깨동무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역시 마찬가지로 살아온 꾸준한 자신만의 취미가 심도를 더해가야만 하는 열매라는 점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야 한다. 과일이 가을철에 풍성하게 익어가는 것. 이것이 늙어가는 것이라 해야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좋아할 만한 것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부지런히 찾지 않으면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을 50대는 스스로가 들여다볼 수 없는 오만가지의 핑계를 이겨 내야만 가능한 생각들이다.

 

늙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청소년의 사춘기처럼 오춘기가 닥친 번뇌의 삶은 그제서야 허무함을 느껴질 때, 늙어가는 자신의 대책 없이 봐야 하는 무너짐을 목도한다는 것이 괴롭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가까이하고 사유하는 삶을 가져야 하며 이 사유를 통해서 사회의 긍정성에 조금이라도 무언가 보탬이 될 수 있을 때 늙어감에 따른 자존감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자존심은 무너지는데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이 지탱하게 해준다. 누가 세워 주지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자기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늙어가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인생무상이라고도 한다. 지나온 삶과 살아 낸 시간에서 쌓여가는 허무의 앙금은 필름의 흑백 영상처럼 빛바랜 추억에서만 노니는 기억의 편린들이다. 점점 희미해지고 옅어지는 과거의 추억이 지나고 보니 다 뭘 하고 살았던 것인지 부질없어 보인다. 젊은 시절 그렇게 애걸복걸했던 첫사랑의 추억도 늙어버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봐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자기가 자신을 이해할 수없는 회환들과 같은 것이 얼마나 많을까 말이다. 산다고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잘 산거 같지가 않는 것은 또 왜 그런지 역시 인생은 살아봐도 종잡을 수 없는 이해불가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닌가라는 노년의 아쉬움은 짙어져 저녁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지게 만든다. 흡사 인생이란 불가해의 바다를 건너가는 노 젖기라는 꼴이다.

저자는 매주 법문이나 경전을 공부하며 산사를 찾으며 읽어내려간 생각들이 책이란 결과물로도 한 권 남아 떨어진 셈이니 결코 손해 본 인생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인생사의 손익 분기점에서 마이너스인지 플러스인지는 결국에는 결과물이 말을 해준다. 뭘 하고 살았냐라고 묻게 된다면, 자 이렇게 책 한 권에 내 인생이 담겼음을 책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낸 인생의 시간 그릇이었다는 것이다. 삶이 허무하면 허무한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사람의 개개인의 삶의 스토리텔링이 되어 축약된다는 것.

늙어서 책이라도 한 권씩 펴내고 삽시다. 아닌게 아니라 늙어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바로 예술이 아닐까. 물론 책도 예술적이라면 더 좋겠고...역시 진리의 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 틀리지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이 책은 방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이다. 졸다말다 좁은 좌석에서 엉덩이와 무릎이 뻐근해지는 힘든 시간 속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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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6: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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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6: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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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21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글은 극소수의 독자들(스물 명도 되지 않을 거예요)이 읽고 있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부족합니다. 그냥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만족합니다. ^^

yureka01 2018-08-21 17:14   좋아요 0 | URL
그동안 포스팅한 서평만 해도 충분히 원고가 될 거예요..^^..

2018-08-21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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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08: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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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08-21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데, 저는 그 긴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게 끔찍하고,
그 긴 시간을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더 끔찍해요.

한 50대까지는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60대부터는 자신이 없네요.

뭔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yureka01 2018-08-22 08:34   좋아요 1 | URL
젊은 청년은 시작부터 취직이 어렵고...
늙어가는 중년은 늙기도 전에 짤리는 분위기고....
한창 일할 나이는 치솟아 오르는 집값과 사교육비에 후달리고....

그러게요..자본주의적 삶에 대해 새로운 전환적 페러다임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8-08-22 0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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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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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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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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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0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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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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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0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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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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