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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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작가는 조금 특별하다.
20대 때 내 옆구리를 찔렀던 선배(지금의 남편)는 조금 촌스런 편이었다. 그럼에도 선배가 싫지 않았던 건, 그가 옆에 끼고 있던 책 한 권 바로 요슈타인 가아더의 <카드의 비밀> 때문이었다. 마침 그 소설을 사서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그가 옆구리에 낀 도서관에서 빌린 그 책!에 빌어먹을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이사를 하며 책장정리를 하던 끝에, <카드의 비밀>을 발견하곤, 남편에게 이 책에 대해 물었다.
“아, 그 책? 카드 잘 치는 법 인줄 알고 빌렸다가 바로 아닌 걸 알고, 다음 날 반납했지.”
그렇다. 남편은 그 책이 말 그대로 카드 잘 치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제목만 보고 빌린 것. 아마 타짜가 되고 싶었나보다 ㅎㅎ
내가 느낀 동질감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싶지만, 그래도 오순도순 잘 살아가는 걸 보면, 요슈타인 가어더 작가님의 중매가 나름 꽤 괜찮기는 개뿔이다.

밤의 유서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알버트가 근위축성 측상 경화증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추억이 깃든 오두막집에서 2009년 4월 23일에서 24일 사이, 하루 동안 유서를 쓰며 삶을 되돌아보고 자살에 대한 결심을 바꾸는 이야기다.
그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물음들과 답이 있다.
소멸하는 삶 속에서, 알버트는 그저 태어난 것만으로도 로또 당첨이라며 지금까지 살았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며, 우리는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이니 죽음 또한 별 것 아님을 자조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를 가르치지만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에일린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낯선 외따로운 곳의 오두막에서 사랑을 나눴고, 서로에게 시들할 때쯤 이 오두막을 운 좋게 구입해서 위기를 이겨냈다. 그리고 이 오두막에서 알버트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자살을 택하려 한다.
그의 선택이 옳은 걸까?
죽는 건 무서운 것일까? 사실 우리는 모른다. 죽어 본 적이 없으니. 그럼에도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공포는 크다. 텔레비전과 소설과 수많은 이야기 속 죽음들은 슬프고 우울하고 공허하다. 그렇지만 그 죽음은 상대방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의 죽음은? 모른다.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내가 아끼는 이들의 죽음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지는 나의 고통을 알 뿐이다. 죽은 사람에겐 무엇이 남겠는가. 찰나의 아픔? 어쩌면 조금 긴 고통과 아픔.

“남아 있는 자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면 된다. 가족들이 몇 달에 걸쳐 내가 겪을 불명예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함께 경험할 필요는 없다”고 했던 알버트가 고통스럽고 길지도 모를 죽음이란 방법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
그들이 고통에 빠지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길, 상실의 고통이 줄기를 바랄 뿐이다.

떠나는 자로서 남는 자에 대한 배려를 선택한 것이다.
그 이유에는 사랑 말곤 없지 않을까.


“나는 이 세상 전부를 빌려 살아왔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번에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채무 문서도 그렇게 적혀 있다. 내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녀딸 사라가 있다. 친구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삶이 내게 건네주었던 선물이자 빚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지나온 삶에 감사하며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갚아야 할 것들의 가치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삶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과시하며 살아왔지만, 우리는 정작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후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넬 기회도 없다.”

“오직 내게 남은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기만을 바란다. 어쩌면 그 시간은 딱 적당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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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11-06 1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보다 더 견딜만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는 경험하지 않아서 알지 못하겠지요. 죽기 직전까지 아마 모를 듯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 주위에 있는 이들보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mini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mini74 2021-11-06 18:59   좋아요 3 | URL
저도 담담하게 떠나고 싶다는 소망가져봅니다. 호랑이님 고맙습니다 *^^*

초딩 2021-11-07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mini74 2021-11-07 12: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

thkang1001 2021-11-07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ini74 2021-11-07 21:19   좋아요 1 | URL
축하인사 정말 고맙습니다. 편하고 즐거운 일요일 밤 보내세요 *^^*

러블리땡 2021-11-0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좋은 밤 되세요 ^^ 저도 이책 소피의세계 작가라서 바로 구입했는데 읽다가 중도 포기했거든요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mini74 2021-11-07 22: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도 좋았고 책 뒤편 강신주님 설명도 저는 좋았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죽음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ㅎㅎ 러블리땡님 즐거운 독서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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