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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평점 :
한 여자
자전적 글쓰기를 통해 솔직하게 과감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 그래서 더 진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걸까.
밝히기 힘들었을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적어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손쉽게 고치고 미화하고 자기방어적 기제를 발휘할 수 있는 일. 어쩌면 덜 솔직한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톤먼트런 영화가 생각났다. 작가가 된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과거를 소설 속에서 왜곡한다.
그녀의 거짓말은 악의적이었을까?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갈라놓은 거짓말. 고치려 번복하려 하지 않았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너무 어렸다고 오해얐다고 그저 시간이 속잘없이 흘렀다고 하기엔 너무 비극인 이야기.
결국 세실리아와 로비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쓸쓸함과 외로움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에서 결말을 자신의 사과와 그 둘의 행복한 만남을 허구로 써 내려간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고 말한다. 사실 결말의 왜곡은 그들에게 추억과 행복을 준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자신에게 내린 관대한 면죄부였다는 생각만 든다. 추악한 면죄부. 희망을 주기 위해 고쳤다는 내용은 위선만 느끼게 했을 뿐이다. ( 예전엔 브라이오니 너무 너무 욕하며 본 영화, 그렇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니, 죽음앞에 선 두 남녀의 눈동자가 브라이오니의 죽음앞의 눈동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삶이란 그런거지. 내가 원치 않는 결말을 맞이하거나 무엇인지도 모른체 흘러가거나 되돌릴 수 없는것. 그렇지만 그게 인생인걸. )그러니 슬픈 결말이라도 조금은 추억한 모습이라도 , 진실은 눈물을 앞세운 허구보다 더 큰 울림이 있다.
그녀의 글이 그렇다.
한 여자, 여기서 한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다. 아니면 어머니를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 글을 쓴 그녀일 수도 있다.
잠을 줄여가며 일한 대가로, 자신이 어린 시절 욕망했던 모든 것들을 딸에게 해 줄 수 있었던 어머니는 가끔 지친다. 왜 너는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지, 왜 만족하지 못하는 지에 대해.
그녀의 잣대에선 딸은 너무나 좋은 환경이지만, 사립학교에서 딸이 느낀 것은 괴리감과 열등감.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다. 어머니 또한 그런 딸이 어렵고 낯설었다. 노동자의 딸이지만, 지식인의 테두리안으로 진입했다. 남편 또한 잘 자란 남자다. 그렇지만 불안하다.
<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우리 학업이 끝나는 마지막 해에는 재정적으로 우리를 도우려고 했고, 나중에는 우리가 무엇을 받으면 좋아할지에 대해 늘 염려했다. 나머지 또 다른 가족은 유머와 독창성을 지녔고,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73p>
그리고 어머니를 잃었다. 점점 아이가 되어가는 어머니를 그녀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다시 어린 계집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96p>
그리고 그렇게 떠나보내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무작정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다.
어머니를 되짚어 보며, 어머니 삶을 거슬러가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곱씹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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