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마음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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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책읽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내 앞에 섰을까
나는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 섰을까.
나도 제대로 정의할 수 없었던 그 때 그 어줍잖고 낯설고 불편했던 감정들이, 작가님에게 속삭여 주기라도 한 걸까. 여지없이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 앞에 다시 소환되는 기분이었다.
그저 초조한 마음일 뿐인 연민, 가짜 연민.
 

1913년 헝가리 국경지대, 엄청난 부자로 알려진 케케스팔바의 딸 에디트와 주인공 안톤의 이야기다.
작고 여리고 귀한 존재의 불완전은 더욱 가혹하다. 눈을 돌리기도 어색하며, 어줍잖은 동정심으로 말을 건네기도 어렵다. 그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래서 머리를 거치지 않고 심장을 무시하는 말들이 나온다. 위기모면을 위해서 내밀었던 그 말들은, 상대방에겐 상처로 혹은 구원으로 혹은 달콤함으로 다가오지만 그건 모르겠다. 그저 그 자리를 피하고 모면하고 싶을 뿐이다. 작고 여리고 순수한 그 존재의 불완전함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하고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의 가졌답니다. 연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손을 떼고, 특히 마음을 떼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치료도 되지만 그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제때 중단하지 않으면 치명적적인 독이 됩니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
 

“나약하고 감성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합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을 꿰뚫는 듯 한 콘도어의 말 속에 비극이 담겨 있다. 어설픈 연민과 20대 치기어린 영웅 심리는 결국 불행을, 본인 또한 평생 수치심을 안고 살아야겠지만.
이게 모두 안톤의 잘못일까. 안톤은 그저 20대, 친구들의 놀림과 세상의 시선이 두려운 그냥 평범한 청년일뿐이다.
책을 덮으며, 케케스팔바에게 그의 딸 에디트에게 그리고 자신이 선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안톤, 모두에게 초조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감정에도 책임이 있는 것, 상대보단 주변의 소문이 두려워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고, 주변의 환대와 무력한 아버지를 보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안톤은 사랑대신, 진정한 연민대신, 초조한 마음에 갇혔을 뿐.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다.
 

나쁜 사람은 없다. 책임감 없는 감정이 있을 뿐,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거짓의 감정이 있을 뿐, 나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있을 뿐.
타인에게 전달하는 내 감정에도 책임이 있음을, 초조한 마음이 들 때면 잠시 생각을 해봐야 겠다. 진심인지 회피인지, 상대에게 행해지는 감정이 나의 평판을 위한 것인지,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것인지 말이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흠칫 할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찾을 때가 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던 나도 모르는 나를, 책에서 찾게 된다. 항아리쯤에 비유한다면, 나란 인간은 아직 반도 완성되지 않았고, 조각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조각들을 책에서 가끔 발견하는 것, 그것이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그 조각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소설 속 인물들 앞에서 나 또한 초조한 마음이 되었다
안톤의 무모한 마음이 ,아직 어린 그 마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되어서, 딸을 위해 매달리는 아버지의 결말도 우울하리라는 걸 알기에.
에디트는 초겨울의 얼음이다. 얇고 투명하게 언 초겨울의 얼음은 따뜻한 바람 한 번에도 쉽게 녹아 금세 진창이 되어버린다. 맑고 투명할수록 더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결국 어떤 결말일지 알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하는 독서, 작가님의 책은 등장인물들의 운명에 대해 기도하며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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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8 1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콘도어의 존재로 어설픈 연민이 더 초라하게 보였던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저런 캐릭터의 배치와 연관성도 전체적으로 잘 어우려져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나요.😊😍

mini74 2021-04-28 17:42   좋아요 4 | URL
콘도어. 그렇게 안보였는데진국이죠 ㅎㅎ *^^*

붕붕툐툐 2021-04-28 20:01   좋아요 2 | URL
콘도어 진국에 저도 한 표!!

새파랑 2021-04-28 18: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조한 마음 읽으면서도 마음이 초조해 진다는ㅎㅎ 마지막의 안톤의 태도와 우연에 따른 결말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저에게 이 책은 사랑과 연민에 대해 생각해볼수 있었던 좋은 작품 이었어요 ^^

붕붕툐툐 2021-04-28 2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람 초조하게 만들죠~ 그럴 수록 책장 넘기는 속도는 빨라지고.. 연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진짜 명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