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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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족들끼리 싸우게 하라. 이간질,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하고 서로 다른 특권을 나눠주어라.서로가 가진 것이 더 좋아보이게끔 하라. 그러면 곧 서로를 경멸하고 미워하며 분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의 성공요인이다.

<태어난 게 범죄>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세상이 어디 있을까. 축복과 기쁨 속에 혹은 외로움이나 버려짐이란 서글픈 태어남도 있지만, 그래도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니, 이건 어디 외계이야기인가 싶겠지만, 트레버 노아는 태어난 것 자체가 정말 불법이다.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못하고, 엄마와도 떨어져 걸어야 된다. 나가서 노는 것도 너무 위험하다.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의 남아공, 거기선 타 인종간의 성관계는 불법이다. 배덕법. 흑인이 타인종의 여인과 성관계를 할 경우엔 주로 강간죄 등으로 끌려가며, 타인종이 흑인 등 원주민 여성과 관계시는 주로 그 여성들은 매춘등의 혐의로 끌려간다. 아이라도 태어나면? 그 아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법의 증거가 된다. 트레버는 유색인 동네도 백인 동네도 아닌, 흑인 동네에서 흑인 아이의 정체성을 갖고 태어난다. 트레버가 보는 모든 이들은 다 흑인이고 코사족이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고통과 참혹함과 불평등과 불안과 위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만 트레버에겐 다행이 담대하고 어찌보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엄마가 있다. 백인교회와 흑인교회와 두 인종을 모두 받는 혁신교회까지 모조리 섭렵하며 책을 읽히고 교육열을 불태우는, 옆집 엄마들과는 좀 다른 트레버의 엄마는 그 모든 힘듦의 삶을 웃음으로 바꾸는 마법을 트레버에게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트레버의 할머니는 백인아이를 어떻게 대할지도 매질을 하는 방법도 모르겠다고 한다. 흑인들만이 거주하는 소웨토에선 백인, 백인거주지에선 범죄자인 트레비 노아의 이야기를 키득거리며 읽었다. 웃기고 재미있다. 인종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재치와 글빨로 시종일관 웃게 만든다. 눈물나게 웃긴데, 그게 웃겨서만은 아니다.

어린 트레버에게 아빠는 화이트 초콜릿, 엄마는 다크 초콜릿 나는 밀크 초콜릿일뿐 초콜릿이긴 매 한가지다. 트레버도 아는 이 단순한 사실을 어른들은 굳이 외면한다.

실제로 책을 읽고 나면 트레버도 대단하지만 그의 엄마가 새삼 위대해 보인다. 그런 현명하고 강단있는 엄마도 어찌하지 못 한 일, 무능력한 남자를 만나 돈과 노동력 착취에 매질까지 당하는데도 왜 도망치거나 이혼하지 않는 거지? 그 곳에서의 아내에 대한 매질은 인종차별만큼 당연한 것, 아이들을 죽일까봐 지키려 감내한 것이다. 결국 남편에게 총을 맞지만 살아나고, 아내에게 총질을 해댄 남편은 버젓이 아무 일 없이 풀려난다.

인종차별이 당연하고, 총질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가난과 굶주림과 불법이 판을 치는 곳에서 트레버의 엄마는 아이에게만은 다른 세상이 있음을, 다른 곳을 꿈꾸기를 바랐다. 트레버의 엄마 본인 또한 타자를 배워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비서라는 사무직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 노력했던 분이다. 트레버는 결국 자신의 삶과 처한 상황 등을 웃음 소재로 삼아 스탠드업 코메디언이 되었다.

사람들은 아니 나 또한, 세상이 만든 불합리한 고통앞에서 서면 주로 옆으로 가려 한다. 물웅덩이를 만나면 풀쩍 뛰어가려 하고, 무너지려는 담벼락을 보면 돌아가면 그만이다. 잊으려 하고 덮어두려 한다. 대강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다 보면, 고통에 함몰되어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혹은 그 고통을 나 보다 약한 자에게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트레버는 물웅덩이며 무너지려는 담벼락을 보며 돌아가지 않고 천역덕스럽게 썰을 풀기 시작한다. 여기 말이야, 물웅덩이가 있는데 말이야. 남아공에선 이런 건 ~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너는 내가 널 괴롭히는 미친 늙은 마녀 같겠지. 하지만 내가 널 심하게 몰아붙이고 네게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널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내가 네게 한 모든 일은 다 사랑에서 비롯된 거야. 내가 널 혼내지 않으면 세상은 널 더 심하게 혼낼 테니까. 세상은 널 사랑하지 않는다. 경찰은 너를 사랑해서 잡는 게 아니잖아. 내가 널 때릴 때는 널 구하려는 거야. 그들이 널 때릴 때는 널 죽이려는 거란다.” 멋진 엄마다.



(400페이지에 오류ㅡ 그러자 앤드루가 총을 들고 쏘기 시작했다.~ 앤드루가 아니라 엄마의 남편인 아벨이 총을 쏘는 것인데 이름이 잘못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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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가벼워보이고 제목이 좀 그래서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런 무거운 주제일줄이야....mini74님 덕분에 또 좋은 책을 한권 담아갑니다. ^^

mini74 2021-01-02 16:01   좋아요 0 | URL
표지가 잔망스럽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1-02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 보고 싶은데
관내 도서관에 달랑 한 권
있고, 내내 대여 중이네요 ㅋ

mini74 2021-01-02 20:48   좋아요 0 | URL
고 히틀러 란 에피가 있는데 너무 웃겨서 ㅠㅠ 슬프고 화 나는 상황인데 웃깁니다~

psyche 2021-01-05 0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았어요. 엄마도 대단하고 그런 상황에서 너무 잘 자란 트레버 노아도 대단하고요.

mini74 2021-01-05 09:37   좋아요 0 | URL
정말 엄마가 대단하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