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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옛날 맛집 -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황교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깨끗한 하얀 바탕에 다소 촌스러운 듯한 건물들..
그리고 정겨운 글씨체의 제목... 소문난 옛날 맛집속으로의 여행이 한결 흥미롭게
전개되어 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맛 칼럼리스트로 유명한 황교익씨가 쓴 책이라니 더더욱 기대감이 컸다.
책장을 처음 열어 만난 차례의 소제목들..
어..이거 그냥 제목들이 아니다.
음식의 추억,이야기,감동까지도 함축 되어져 있는 음식들의 반란 아닌 반란이다.
이 차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서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내가 책을 읽으며 차례 부분에서 이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는데..
뭔가 대단한 이야기들이 가득 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1장..추억을 먹는다.
저자의 유년시절,고향,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얽힌 먹거리들로 이야기가 가득하다.
맨 처음 만난 이야기는 호두과자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더 반가웠던 것은 내가 임신했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호두과자를 아버지의 호두과자라고 했다.
아버지가 사오시던 호두과자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제일 처음 먹고 싶다고 한 게 바로 호두과자였다.
그냥 아무데서나 파는 것도 아닌...꼭 천안의 호두 과자..그것도 천안학화호두과자..
그 때문에 천안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도련님께서
급하게 그 호두과자를 사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나의 추억에도 있는 호두과자..첫 이야기를 읽으며 슬며시 미소가 머금어졌다.
추억을 먹는다더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추억을 내뱉게도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뿐인가..기차를 타면 먹어싶어지는 달걀 이야기 하나로도 독자를 울게한다.
삶은 달걀에 눈물이 묻어날 때가 있었다...............꼬깃꼬깃한 어머니의 쌈짓돈,삐뚤삐뚤 써내려간 편지가 끼여 있곤 했다.
기차에서 먹는 삶은 달걀은 팍팍해서인지 자꾸만 목이 메어오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이 부분에서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거나 콧끝이 찡해지지 않는 사람은..
나도 모르겠다..다들 느끼기 나름이니...
2장..정성을 먹는다.
가정주부가 되어 매일 매일 음식을 하다보니 음식에 대한 남다른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음식은 그 무엇보다 정성이 필요하고 재료가 참 중요하다는 것...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보통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유럽이나 일본은 100년 200년이 된 식당이 수두룩 한데 우리나라에는 그토록 오래된 식당이 없다고 한탄을 한다.
너도 나도 원조라고 우기는 식당들을 새로 나온 국어사전에 '원조'라는 말을 찾으면
식당을 개업하면서 간판에 쓰는 말 이라고 나온다며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말칼럼리스트지만 자신의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음식의 고수들이 많다는 것도 이야기 한다.
그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는 이유가 뭘까..
정성..그것은 오랜 전통하고도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후배 아버지의 단골집 이야기나,된장 이야기,그리고 순라의 길을 읽어보면 그 정답이 보인다.
3장..머리로 먹는다.
음식은 사랑이다라고 맨 처음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차 문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는 조선 후기의 스님 초의선사의 시에서
그는 내내 생각했던 '음식이란 뭐지?'의 의문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나 엄마 젖을 먹고,,엄마가 입으로 씹어 주는 밥을 받아 벅고..
사랑하는 남녀간이 서로 음식을 먹여주는 행위..등을 이야기 하며
음식은 사랑이다 라는 정의에 대해 명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정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기가 믹힌 이야기였다.
4장..이야기로 먹는다.
부모님을 모시고 먹을 만한 음식들을 소개한다.
어찌보면 부모님 세대와는 맞지 않을 것 같은 음식들도 있지만..
그것은 편견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얼마나 좋은 맛집들이 많이 소개되었는지..
어른들이 좋아하실만한 맛집과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 장을 읽으며 부모님을 모시고 얼마나 식사를 하러 다녔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런데..정말 10번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음식들을 보며 부모님 생각이 더 났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음식은
정성이고..사랑이고..추억이며.. 전통이며..문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전 맛 칼럼리스트가 쓴 책이니 정말 맛있는 집들을 잘 소개하고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이 책에는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음식엔 정성이 들어가야 제맛이고..
우리의 음식엔 우리가 모르는 전통과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져 있고..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맛의 비밀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하여..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음식을 대할 때 조금 더 진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나 역시도 음식에 대한 생각과 자세를 바로 잡게 되었다.
그것이 이 책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에피소드*
몇주전쯤 남편과 21개월 된 아들과 함께 1박 2일로 전라도 여행을 계획하고
전라도를 다녀왔다.
여행을 가기전 남편은 전라도에 가면 유명한 음식을 먹어보고 올거라며
그 전날 밤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티비에서 방송 된 맛집들에 대한 상세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고 있었다.
담양엔 떡갈비가 유명하다고 해서 떡갈비 스테이크를 잘한다고 하는 경양식집에 가서
떡갈비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가격은 15,000원이나 하면서 그 맛은 정말 형편 없었다.
짜기는 얼마나 짜고.. 양은 또 얼마나 적은지 1인분을 21개월 된 아들과 나눠 먹자니..
참내...기가 막혔다.
담양 죽녹원 앞에서 팔던 3개에 2,000원 짜리 대나무 잎 호떡이 훨씬 맛있었다.
보성에 가서는 그렇게도 유명한 꼬막정식을 먹으러 갔다.
방송국에서 수없이 찾아와 촬영을 했다던 그 집은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인..
한마디로 아주 지저분 했다.
그 식당의 꼬막 정식은 정말 별로였다.1인분이 2만원이었다.
남편은 나오면서 살아 생전 이렇게 맛없는 밥은 처음 먹어 본다며 다신 꼬막을 먹지 않겠다며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2시간 동안 해댔다.
보성녹차 밭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던 우리는 보성군 시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1인분에 5,000원인 김치찌개 2인분을 시켜 밥을 먹었다.
지금까지 전라도에 와서 먹어 본 음식중에 최고였다.
아마도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기전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인터넷 앞에서 맛집을 찾고 있는 신랑에게 관두라고 말했을것이고..
전라도에 가서 그렇게 엉터리인 음식들을 먹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음식이라면 최고라고 자부하는 전라도에서 맛없는 음식들만 먹고 왔으니..
좋은곳을 구경하고 왔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은 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