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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20개의 키워드로 전하는 인생의 지혜
한상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평점 :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본서평은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과 칸트의 영향을 받아 20세기 실존철학에 큰 족적을 남긴 독일의 대표철학자입니다. 그의 주저는 ‘존재와 시간’으로써 이 책을 통해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깊이 있게 탐구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책은 독자로부터 난해한 책으로 소문이 나있기도 합니다. 그의 철학의 주요내용을 보면, 인간을 세상에 목적 없이 던져진 존재로 보았으며 숨겨진 본질보다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과 현재의 삶의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 하였으며, 타인의 평가나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다운 고유한 삶을 찾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초기 나치즘에 동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가 현대철학에 남긴 위대한 업적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판사 김영사에서 출간된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하이데거 철학의 정수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저술한 책입니다.
저자는 가천대학교 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로 재직중이시며,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함께 전공한 철학자 한상연 교수님이십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본 하이데거’,‘현대미술의 근본 관점’등 철학과 예술, 문학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관점을 나타내는 여러 저서들을 집필하셨습니다.
책은 5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1부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2부 어떻게 세상을 대할 것인가, 3부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4부 어떻게 행복해 질것인가, 5부 어떻게 나답게 살것인가,
하이데거철학은 난해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그의 철학 개론서에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카뮈나 한나아렌트등 여러 철학자들에 대해 읽어보면서 그의 업적과 행적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특히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유대인 한나아렌트가 그의 연인이었다는 점에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이책을 읽어보니 하이데거의 철학은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그렇게 하기 위하여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철학을 찾는 이유는 삶의 이유, 살아갈 이유, 살아갈 방법등을 찾기 위함인데, 하이데거 철학이 역시 이러한 것에 대답인 것을 알고는 놀랐습니다. 기존에는 난해하다는 소문 때문에 그의 철학은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철학이 강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책을 통해 하이데거의 철학 내용을 알게 되면서 그의 행적에 대해 더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데, 하이데거가 타인과 다름이 구별되는 개인의 고유한 특성, 즉 개성의 분출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던 철학자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그가 전체주의인 나치즘에 동조한 것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획일하는 이념이기 때문에 그의 이론적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이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접하면서 이것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는데,
맺음말에서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과 행적의 상반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근대이후의 현대 세계를 ‘계산적 사유의 폭력성’이 완전히 지배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여기서 계산적 사유의 폭력성이란 인간관 자연이 가진 고유함을 말살하고,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적, 도구적 사고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현실화한 것이 미국식자본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라 간주하였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존재를 상품가치로 환산하고, 사회주의는 모든 인간을 국가건설을 위한 부속품으로 취급 한다는 점에서 둘 모두 계산적 사유의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체제 였다고 본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나치즘이 이러한 거대한 폭력을 막아내고 인간의 고유성을 회복해 줄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초기 나치즘에 동조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치즘 역시 인간을 획일화된 부품으로 만드는 ‘계산적 사유’의 가장 타락한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목격하고 정신적방황과 고독으로 침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설명한 하이데거가 나치즘 동조이유를 읽고는 이것이 더더욱 이해가지 않는 것이 미국자본주의와 소련 사회주의의 본질인 ‘계산적 사유의 폭력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치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였다면, 이후 나치 역시 계산적 사유의 가장 타락한 변종에 불과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앞서와 같이 행동하지 않고, 다만 ‘침잠’했다는 점이 그의 나치 동조 변명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많은 사람을 희생케한 악에 동조하였고, 그것을 깨달았다면 오히려 선을 행하려고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연인이었던 한나아렌트가 나치의 유대인 탄압시절 망명길에 올랐을 때도 그녀를 보호하거나 도와주지 않았고, 교내 유대인 제거 정책 수행시절, 유대인 이었던 자신의 스승인 후설의 대학 출입을 금지 시킨 이유를 생각해 볼 때, 하이데거의 나치 동조이유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하이데거는 다른 철학자들과 같이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철하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고 그의 저서와 이론은 탁월하지만 그의 이론과 행적인 너무나 상반된 것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