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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성 - 개념의 기원과 형성 ㅣ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6
디트마르 폰 데어 포르텐 지음, 김정로 옮김 / 북캠퍼스 / 2026년 2월
평점 :
인간 존엄성
본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현대 법학과 윤리학을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이번에 북캠퍼스에서 출간된 디트마르 폰 테어 포르텐 교수의 저서 ‘인간존엄성’은 이 개념이 어떤 철학적 기원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실제 사례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은 철학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킨 칸트, 그리고 현대 철학의 뿌리가 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견해를 비교한 부분입니다. 놀랍게도 이 거장들 모두가 인간 존엄성을 긍정했던 것은 아닙니다. 칸트가 현대적 의미의 존엄성을 정립했다면,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쇼펜하우어는 이를 단호히 부정했으며, 니체는 앞선 두 철학자와는 또 다른 독특한 입장을 취합니다. 이 세 명의 시각차를 따라가는 과정은 인간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주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먼저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우는 자율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닙니다. 즉, 칸트는 존엄성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자연계에 살면서도 유일하게 자연의 법칙, 즉 본능을 거스르는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파도 타인을 위해 음식을 양보하거나, 편안함 대신 고난을 선택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오직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귀함입니다. 이러한 자유의지와 자율성이야말로 인간을 단순한 물건이 아닌,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존엄한 존재’로 만듭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칸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생에의 의지’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은 맹목적인 생존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일 뿐이며, 이런 점에서 다른 생물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을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에 비유하며, 태어남 자체가 비극인 존재에게 ‘존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라고 보았습니다.
니체는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토대 위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했지만, 존엄성에 관해서는 결을 달리했습니다. 니체 철학의 중심인 ‘힘에의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생존 욕구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모한 형태입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강해지려 노력하며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말합니다. 니체에게 존엄이란 태어날 때부터 거저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며 ‘쟁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는 칸트의 생각과 달리, 니체는 자신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으로 존엄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는 서로의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인간 존엄성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의 핵심 사상을 짚어보니 각자가 왜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이론적인 지식을 넘어, 지금의 나는 과연 존엄한 존재인지, 그리고 나의 존엄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금연처럼 스스로 세운 규칙조차 지키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곤 했던 저에게, 이 책은 단순히 지식을 넘어 '나는 과연 존엄한 존재인가'를 묻게 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정한 법칙에 따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본능을 이겨내고 자율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 존엄성의 서툰 시작임을 깨닫게 되면서 위안고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