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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평점 :
블랑쇼 “촛불은 꺼져가는 동안만 타오른다.”
죽어간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은 삶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여기 죽음을 소재로 하여 삶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973년 태어남.
열 네살 때 암선고를 받고 그 후 10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수술과 치료를 받았음.
그 결과 한쪽다리와 폐와 간의 일부를 잃게 됨.
24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지금은 스페인의 베스트셀러 작가 가됨.
에스피노사는 신작소설 ‘푸른 세계’에서 죽음을 소재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소설은 죽음에 임박한 아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소설을 풀어나가지만, 읽으면서 아이들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죽음이란 것을 통해 아이들은 삶을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몇 장을 넘기다 보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깨우침을 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기대 되어 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책은 조용합니다. 소설이 끝날 때 까지.
다만, 소설이 끝날 무렵이면 읽고 있는 독자의 마음만 소리를 낼뿐입니다.
책의 문체는 간결합니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소재로 교훈을 주는 내용은 진부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성인이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에 비하여 순수함에 더 가까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했기 때문에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거부감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메시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에서 감명 받았던 일부를 옮기겠습니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하도록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너 자신이 되어라. 남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면 정복당한 것이다.”
남들이 나에게 고치도록 충고하는 것, 즉 나의 단점이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에서 지면 살짝 인상 쓰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바로 표현하는 것 등..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타인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나의 무엇이 바로 나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단점으로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정답게 느껴지면서 마음에 한층 편안해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단점도 이 책을 읽기전과 비교해서 좋게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일부만을 얘기 했지만, 이 책은 이외에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나머지 메시지는 독자들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추구 하였던 것들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 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던 암막을 제거해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소중한지를 맨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지금 막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순간 그동안 그 사람이 하던 고민들은 고민할 가치 있는 것으로 느껴질까요? 아울러 지금까지 하찮게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이와 게임하기, 사랑하는 가족과 잡담하기, 나이든 어머니와 얘기하기등등....
죽음은 우리가 진실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작가가 삶에 관해 얘기하기 위해, 죽음을 소재로 한 이유를 알 수 있는 적합한 글이 있어 이를 인용하면서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한 신문사가 이 세계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한다면 최후의 시간에 귀하께서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을 당시 유명 인사들에게 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의 답변입니다.
“ 우리가 죽음의 위협에 놓인다면,삶이란 갑자기 우리에게 너무 훌륭해 보일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계획과 여행, 정사〈情事),연구 등을 그것一 우리의 삶一 이 우리에게 감춰놓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뭐든지 끝없이 미루기만 하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그런 것들은 결국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영원히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한다면 그런 것들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아! 만약 이번 그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잊지 않고 루브르의 새로운 전시실을 방문할 것이고, X양의 발치에 몸을 던질 것이고, 인도로 여행을 떠날 테니 말입니다.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가운데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생활의 중심부 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는 태만이 욕망을 잠재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굳이 파국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당장 오늘 밤에도 죽음이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러기에는 충분하리라고 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소설가 ‘프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