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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목민심서 - 상
황인경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2월
평점 :
<목민심서>는 목민관으로 부르는 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로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귀양가 있는 동안에 저술한 책이다
여기 <목민심서>는 황인경 작가가 정약용의 일대기를 소설로 완결시켰는데
읽는 내내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길 없었고 가슴이 먹먹하기에 이르렀다.
시대적 배경과 방법만 달랐지 지금의 정치실제와 부패의 극에 달한 사회 상태를 그대로 비춰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백년지계는 교육에 있고 교육의 근본은 修身에 있다는 저자의 머릿말에서의 서두가
많은 생각을 심어준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목민심서>는 상,중,하로 나뉘어 있다
정약용은 16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견문을 넓혔으며
백성의 고초와 목민관들의 부패를 직접 목격하였다
지방 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민생의 궁핍한 삶을 보면서도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천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책으로 펼쳐내기 시작하였다.
전정의 문란, 세정의 비리, 호적의 부정, 환자의 폐단, 부역의 불공정 이 모든 것이 탐관오리의 온상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은 정약용은 민본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어진 관리의 모습으로 백성들에게 사랑과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세력을 쥐고 있는 벼슬아치들에게는 제거의 대상이 되고 만다
왕의 사랑을 제아무리 받는다 해도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친한 벗들마저 등을 돌리게 되는 상황이 되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결국, 죄없는 죄인으로의 삶, 어처구니 없는 길고 긴 유배생활에서 정약용의 삶의 절정은 펼쳐진다.
자신의 처지에서 충성을 다하는 길은 오직 목민을 위한 글을 쓰는 것 뿐이였다
그것은 학문적 재능과 청렴 결백한 인품이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그렇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은 있었다
바로 실학의 선배이자 학문적 스승처럼 의지하며 지냈던 바로 정약전 형님이였다.
형님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나약하게도 하였다가 그 그리움으로 인한 희망이 그를 살리기도 하였다.
정약용과 정약전은 그토록 형제애가 강했다.
모든 학문에 통달한 조선의 천재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마과회통> <여유당전서> <흠흠심서>등등 500권에 달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고
천만호를 위해 솜틀 기계를 고안해 낸 것을 비롯하여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데 필요한 '거중기'를
고안해 내는 천재성을 발휘한다.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57세 되던 해에 신유사옥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19년간의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중 쓰기 시작하여 풀려난 해인 1818년(순조18)에 완성된 것이다.
부패가 극에 달한 조선후기에 지방의 사회 상태와 정치의 실제를 민생문제 및
수령의 본무와 결부시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신유사옥은 조선 말기인 1801년에 일어난 천주교도 탄압사건으로
정약용이 강진으로 귀양을 가게 된 때이다
정약용이 암행어사 생활을 하다보니 목민관들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목격한 후 이것을 바로잡고자 하여
목민심서를 쓰게 된 것이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와 있는 동안 저술한 '자산어보'의 훼손의 대목에서는
정약용의 그 안타까운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데 정말이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땅을 치고 통곡하듯 울고 싶은 심정이였다.
무식하면 약도 없다더니....
다산 정약용의 삶을 재해석하고 감동적이고 심금을 울리는 세밀한 묘사가 정말 좋다
작가는 무려 10년간의 자료를 수집하여 다산의 일생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시대를 앞서간 다산 정약용의 감동적인 일대기를 소설로 보여준 값지고 소중한 이
작품의 옥의 티라면 군데군데 오타가 제법있다는 것이다
오타가 제법 많아서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게 참으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