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이 어느덧 사십 고비를 넘어가는 사람 중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이 부유했던 사람은 흔치 않다. 어린시절이 기록된 기억의 필름을 돌려보면 흑백의 영상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보면 그 흑백의 영상은 생각보다 또렷하고 지워졌어야 할 아픔까지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직까지 이 나라를 떠나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기행문은 외국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읽었던 소설 속에서의 외국은 상당부분 19세기나 20세기 초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며 그것이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여행 안내 책자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실재하는 외국의 풍경을 접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면서 지독한 목마름이 있었다. 역사에 관한 통찰력과 리얼리티를 겸비한 사람의 깊은 체험을 바탕으로한 기행문을 접하고 싶었다. 이상문님의 [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만난 낙타와 다름없다. 최근 네팔이나 몽골 등으로 여행을 다녀 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으며 그들이 여기 저기 뿌려 놓은 잡스러운 글들을 읽다보면 차라리 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느낌이 강했었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의 그것 또한 문화적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대개의 경우 관광 다녀온 소감에 불과한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는 그 제목에서부터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으며 책표지에 서 있는 목발을 짚은 사내에 대한 호기심이 책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인도라고 하면 혜초, 간디, 테레사 수녀, 카레, 불교, 이마에 박힌 점, 큰 눈, 갠지스 강 등이 아는 것의 전부였던 내게 이 책은 인도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풍부한 간접 경험을 하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잔칫상 한 귀퉁에 있는 간장 종지에 불과하다. 작가가 우려했던 <어린시절의 끼어듬>은 탁월하게 본문과 어울렸다. 왜냐하면 그가 봤던 인도의 현실과 작가의 어린시절이 갖는 유사성이 짙기 때문이었다. 인기 대중소설 작가가 흉내낼 수 없는 리얼리티가 가슴팍을 뚫고 들어왔다. 나의 유년시절, 그 골목길에서 이상문을 만났고 짜이를 파는 어린 인도 소년을 만났다. 그 시절을 감추려고 했던 내 삶이 부끄러웠다. [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는 기행문의 범주를 많이 벗어난다. 그것은 아주 긍정적으로 독자의 삶에 기여하고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는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인도에 대한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