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게이타로는 주인의 착각에 내심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기 전에 우선 차가운 구렁이라도 손에 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묘하게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고풍스러운 담배통에서 살담배를 집어내 대통에 채우는 주인의 오해는 게이타로에게 사실인 것과 마찬가지의 불안을 안겨주었다. 주인은 담판에 따르는 일종의 예술처럼 교묘하게 담뱃대를 다루었다. 게이타로는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저 모른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상대의 의혹을 풀어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예상한 대로 주인은 쉽사리 담배통을 허리춤에 넣지 않았다. 담뱃대를 통에 넣었다 뺐다 했다. 그때마다 퐁퐁하는 예의 그 소리가 났다. 마침내 게이타로는 어떻게 해서든 그 소리를 물리치고 싶어졌다. - P46

게이타로는 진심으로 자신이 탐정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본디 탐정이란 세상의 표면에서 밑으로 기어드는 사회의 잠수부 같은 존재라 그만큼 인간의 불가사의함을 포착하는 직업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입장은 그저 남의 어두운 면을 관찰할 뿐이고 스스로 타락할 위험성은 없어 더욱 괜찮은 일임은 틀림없지만, 애석하게도 그 목적이 이미 죄악의 폭로에 있기 때문에 사전에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속셈 위에 성립된 직업이다. 그런 고약한 일을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인간 연구자, 아니 인간의 이상한 장치가 깜깜한 밤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모습을 경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이런 것이 게이타로의 주된 뜻이었다. 스나가는 방해하지 않고 들었고, 이렇다 할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게이타로에게는 원숙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평범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졌다. 더군다나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밉살스럽다고 생각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닷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스나가의 집에 가고 싶어 밖으로 나와서는 곧장 간다행 전차에 올랐다. - P55

게이타로는 멍하니 사오일을 보냈다. 문득 학창 시절 학교에 초대된 어느 종교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가정에도 사회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는 처지였는데도 스스로 중이 된 사람으로, 당시의 사정이 아무리 해도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그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쾌청한 하늘 아래 있어도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아괴로웠다고 한다. 나무를 봐도 집을 봐도 거리를 걷는 사람을 봐도 또렷이 보이지만 자신만 유리상자에 넣어져 바깥 존재와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아 결국에는 질식할 것같이 힘들었다고한다. 게이타로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일종의 신경병이 아닐까하고 의심해봤을 뿐 여태껏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사오일을 끙끙 앓기만 하며 멍하니 있는 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끝까지 해내 통쾌감을 맛본 적이 한 번도없는 것은 중이 되기 전 그 종교가의 마음과 어딘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의 느낌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미약한 데다 성격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 스님처럼 용단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좀더 분발하기만 한다면 되든 안 되든 그래도 지금보다는 통쾌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그렇게 마음 쓸 일을하지 않았던 것이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강철은 어떻게든 단련돼.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너는 어떤 소설을 쓸 거야?
나는 어떤 소설이든 쓸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식에다 이게 뭔 짓이야. 너 진짜 모르는 사람 맞지?
몰라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라리, 하고 단념해봤지만 이상하게도 특별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도쿄에 있던 시절, 때로는 차라리 하며 무분별한 일을 저지르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나중에야 오싹해서 아, 그래도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아예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도 오싹하지도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도, 오싹해도 멋대로 하라고 할 만큼 불안감이 가슴 가득 퍼져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차라리, 하며 일을 단행하는 것이 지금 바로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어딘가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경우에 따라서는 일주일이 될지, 잘못되어 무기한 연기해도 별 지장이 없다며 하찮게 여기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게곤(華嚴) 폭포‘나 아사마(淺間) 분화구‘로 가는 길이 아직 꽤 남아 있다는 것 정도는 무의식중에 느끼고있었을 것이다. 도착해서 막상 일이 닥치지 않는 한 누가 가슴이 덜컥내려앉겠는가. 따라서 차라리, 하며 생각한 일을 단행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온통 흐릿한 이 세계가 고통이고, 그 고통을 가슴이 덜컥내려앉지 않을 정도로 벗어날 가망이 있다면, 묵직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는 보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정도의 결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그때의 심리 상태를 해부해본 것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저 어두운 곳으로 가면된다, 어떻게든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로지 어두운곳을 목표로 걸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빙충이 같은 짓이었지만, 어떤 경우가 되면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최소한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다만 목표로 하는 죽음은 반드시 멀리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운명이다. - P21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을 생각이었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어 살아가기 위해 일할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지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쿄에서 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을 때도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돈만 벌자는 주의를 몹시 경멸하고 있었다. 일본 어디를 가든 누구나 그 정도의 생각은 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테라가 조금 전부터 돈벌이, 돈벌이 하고 말할 때마다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화를 낼 입장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아니라서 아주 태연하게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지대한 감언(言)이고 가장 효과적인 권유 방법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못했다. 그래서 도테라의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비웃음을 사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할 따름이다. - P37

생각은 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테라가 조금 전부터 돈벌이, 돈벌이 하고 말할 때마다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화를 낼 입장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아니라서 아주 태연하게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지대한 감언(言)이고 가장 효과적인 권유 방법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못했다. 그래서 도테라의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비웃음을 사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할 따름이다.

요컨대 이 여주인도 꼭 갱부가 되라는 듯한 어투인 것이, 도테라와완전히 같은 의견인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래도 좋았다. 또 그렇지않아도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묘하게도 그때만큼 얌전한 기분이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잘못된 것을 주장해도 나는 그저 예, 예, 하며 듣고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1년간 해온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든지 의리, 인정, 번민‘ 같은 것이 파열하여 대충돌을 일으킨 결과, 정처 없이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니 어제까지의 내 자신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렇게 얌전해질 수 없을 터였지만, 실제로 그때는 남의 말에 거스르겠다는 생각이 약에 쓰려고 해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것을 모순된다고도 이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 안에서 하나로 뭉친 것은 몸뿐이다. 몸이 하나로 뭉쳐 있으니 - P42

마음 역시 하나로 정리된 것이라 생각하고, 어제와 오늘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도 역시 원래대로의 자신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이 꽤 많다. 뿐만 아니라 일단 책임 문제가 생기고 자신의 변심을 힐난당할 때조차, 아니, 내 마음은 기억이 있을 뿐 실은 따로따로흩어져 있으니까요. 라고 대답하는 자가 없는 것은 왜일까? 이런 모순을 종종 경험한 나도, 억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책임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상당히 편리하게 사회의 희생이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토록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태워주지 않는지페르미나 다사가 신기하게 여기고 있자, 선장이 저건 물에빠져 죽은 여자의 망령이며, 지나가는 배를 건너편 해안의
‘위험한 소용돌이 쪽으로 꾀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 P6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