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은 가짜다. 최후의 심판도 가짜고 대혁명도 가짜다. 성급한 독서는 모두 가짜다. 니체는 정직한 혁명만을 믿었다. 30년 동안 병이 들었다면 30년을 치료에 쓸 생각을 하라. 초조해서 발을 구르는 자는 죄를 짓는다. 조급해하는 이로부터 눈을 빼앗고 영혼을 빼앗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때는 꼭 와야만 하는 때에 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 와도 좋은 때에 온다. 다만 당신이 천천히 걷기를, 혁명이란 빠른 걸음이 아니라 대담하고 단호한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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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역사적 기원을 파헤치면서도 니체는 그것을 시 관점에서 다시 조명해본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적‘ 이라는 고을 인간적‘ 이라는 말로, ‘선사적‘ 이라는 말을 ‘동물적‘ 이라는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동물‘ 이란 생물 분류상의 식물과 대비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인간의 타자‘로서의 ‘동물‘이다. 말하자면 ‘동물‘은 인간의 ‘선사적 존재를 가리킨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 여기서 역사 이전, 즉 ‘선사적‘ 이라고 말하는 것은 연대기적 시간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존재했으며, 또 그것이 만들어지기위해 은폐되어야 했던 요소들과 관련이 있다. 달리 말하면 역사‘가 만들어지면서 우리 인식에서 사라진 비역사‘와 관련이 있다. ‘선사’란 달력의 어느 시점이 아니기에 모든 역사에 출형할 수가 있다. 니체가 “선사시대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있거나 다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60~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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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대우고전총서 46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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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가 인식하는 자라면 어느 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훌륭한 취향 따위는 악마가 가져가 버려라! 규칙이 예외보다 예외인 나 자신보다 더 흥미롭다.˝ 그러고서 그는 아래로 내려갈 것이며 무엇보다도 [대중]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평균적인 인간을 오랜 동안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 이를 위한 많은 가장(假裝)과 자기 극복, 친밀함, 저급한 교제(동등한 상대와의 교제를 제외한 모든 교제는 저급한 것이다)는 모든 철학자의 전기(傳기)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며, 아마도 그들의 전기에서 가장 불쾌하고 악취가 나며 환멸로 가득찬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인식의 총아(寵兒)에 어울리는 행운을 지녔다면 그는 자신의 과제를 단축시키고 경감시켜줄 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자들로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바 냉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동물성과 비속함, 규준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인정하며 이때 자신과 아울러 자신과 동일한 인간들에 대해서 증인들 앞에서 말하듯이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성과 욕망을 가진 자들이다. 때로 그들은 자신들의 분뇨 위에서 뒹굴 듯 책들 속에서 뒹군다. 냉소주의는 비속한 영혼이 진실에 접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보다 높은 인간은 보다 조야한 것이든 보다 섬세한 것이든 모든 냉소주의에 귀를 열어야 하여, 자신 앞에서 파렴치한 어릿광대나 학문적인 호색한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행운에 기뻐해야만 한다.
심지어 혐오와 매력이 뒤섞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자연의 변덕으로 인해 분별없는 숫염소와 원숭이 같은 성질에 천재성이 결부되어 있는 경우인데, 당대의 가장 깊이 있고 가장 예리한 인간이면서 아마도 가장 추악한 인간이기도 했을 아베 갈리아니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는 볼테르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었고, 따라서 많은 경우, 볼테르보다 한층 더 과묵했다.
많은 경우 볼테르보다 한층 더 과묵했다. 앞에서 암시한 것처럼 원숭이의 몸체에 학문적인 머리가 얹혀 있고, 섬세하고 예외적인 지성이 저열한 영혼에 깃든 경우도 자주 일어난다. 이는 특히 의사들과 도덕-생리학자들 가운데서 드문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격분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인간은 두 가지 욕망[식욕과 성욕을 지닌 배와 한 가지 욕망[명예욕]을 지닌 머리로 되어 있다고 말할 때, 또한 인간 행위의 유일하고도 참된 동기로서 도처에서 식욕, 성욕, 허영심만을 보고 구하고 발견하려고 할 때, 간단히 말해서 인간에 대해서 ‘나쁘게‘ - 악의 때문은 아니다 - 말할 때, 인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말에 세심하게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는 분노가 담기지 않은 말이라면 어떤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분노에 찬 인간은, 자신의 이빨로 자기 자신을(또는 그 대신에 세계, 신, 사회를)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인간은 웃으면서 자신에 만족하는 호색한보다 도덕적으로는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지 몰라도, 그 밖의 모든 면에서는 보다 평범하고 냉담하며 완고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분노에 찬 인간만큼 거짓말을 잘하는 인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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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란 어쩌면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드문 것은 ‘올바른 때—를 마음대로 하기 위해, 우연의 앞 머리털을 잡기 위해, 필요한 500개의 손이다!˝
-27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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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읽다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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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자는 가면을 쓴다.

이를 지켜본 심리학자는 물을 것이다. 꼭 그래야만 했는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에 매달리는가? 가령, 그럴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물론 깊은 고통을 겪어보았다는 것은 고귀함의 표시다. ˝깊은 고통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 니체는 ˝얼마나 깊이 고통스러워할 수 있는가에 따라 위계질서를 정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귀한 자는 누구보다 자부심이 높기에 역겨운 것 앞에서 누구보다 깊은 고통을 맛보고 누구보다 큰 구토감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고귀한 자들은 그래서 ‘가면‘을 쓴다. 사람들의 오해를 오히려 이용한다. 이들은 깊은 고통을 지녔지만 ˝명랑하다고 오해받기 때문에, 명랑함을 이용하는 좀 더 명랑한 인간˝이고, ˝학문이 명랑한 외관을 주기 때문에 그리고 학문이 인간이란 피상적이다(천박하다, oberfachlich)라는 결론을 가능케 하기에, 학문을 이용하는 ‘학문적 인간˝이다. 고귀한 자들은 때로 뻔뻔한 정신을 가면으로 쓰기도 하고 심지어 어리석음까지도 이용한다.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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