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으로 선잠이 들었던가 보다. 이상한 술렁거림에깨어난 나는 공포에 젖었다. 주위는 완벽하게 어두웠다. 불을켜놓고 잤는데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잠기운을 떨어내려 애썼다. 악머구리 끓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과거 속에서 길잃은 환자처럼 나는 현재의 주소를 알아내지 못해 당혹했다.
기차가 서울역에서 고향 역까지 날 실어 온 것처럼, 악몽이 막삶의 차안에서 피안으로 나를 날라 온 건 아닐까. 시간이 딱멈춰버려 이제 종이로 만든 관처럼 좁고 허술한 이 방에서 낯선 소음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서울역과 고향 역 사이에 한 줄 철로밖에 없듯 나와 세상 사이에 사랑도 빛도 없는서른다섯 번의 봄, 서른다섯 번의 여름, 서른다섯 개의 역만오롯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어서 그가 내 악몽에 간단한 대답이라도 해주었으면. -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