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지수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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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p. 나는 가성비를 항상 염두에 두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므로, 시끄러운 학생의 입을 다물게 하는 단기적인 메리트와 교실 전체를 울적하게 만드는 장기적인 디메리트를 바꾸는 불리한 장사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업을 방해할 성싶은 학생에게는 내 쪽에서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넨다.
내 경험상 이런 종류의 반항적인 학생 대부분은 초중등 교육 기간 가운데 선생님에게 ‘우호적인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교실에서 어떤 발언을 해서 선생님이 받아준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교실에 있기만 해도 그만 진절머리가 나는 것이다.
반항적인 학생은 오히려 순진한 인간이다.
따라서 ‘자네는 훌륭하군. 자네같이 비평성을 지닌 학생이야말로 대학에 어울린다네’라는 표정을 얼굴 가득 띠고 웃어주면, 이제까지의 교육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인 환상은 꽤 간단히 무너지고 ‘뭐야, 대학은 제법 즐거운 곳이잖아‘라고 생각하게 되어 하룻밤 만에 성실한 공부벌레로 변모하기도 한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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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지수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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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p 그러나 ‘점점 알게 된’ 것은 내가 지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레비나스 선생의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 어법이나 말투의 리듬, 사고의 발걸음에 익숙해져서다.
레비나스 선생의 책을 이해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레비나스 선생의 책을 읽은 덕분이다. 나를 ‘레비나스의 책을 읽을 수있는 주체‘로 형성한 것은 ‘레비나스의 책‘ 이지 나의 노력이나 지능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 독서를 통해 발견했다.
그러므로 ˝내가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자기중심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나를 고르고, 책이 나를 불러들이고, 책이 나를 읽을 수 있는 주체로 구축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책에게 불리는 것, 책에게 선택되는 것, 책의 ‘부름’을 감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마 책과 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가장 행복하면서도 풍요로운 관계가 아닐까 한다.

302p
“나는 나의 역사적 사명을 끝냈다˝라는 선언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면 그 선언을 할 수 있는 ‘나‘가 있어야 한다. 이는 일본국헌법 제정을 위해 대일본제국헌법의 국회법에 기초하여 제국의회가 소집되거나, 제3공화제의 종언을 선언하고 페탱 Philippe Pétain 원수에게 전권을 위양하기 위해 공화제 최후의 국민의회가 소집된 것과 비슷하다.
어떤 제도를 끝내려면 누군가가 그 제도의 ‘최종 주체‘라는 성가신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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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지수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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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p
‘교양‘의 깊이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려 할 때 얼마나 큰 지도책‘을 상상할 수 있는지에 따라 계측된다.
‘교양 없는 사람‘이란 ‘자신이 누구이고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생각할 때 살고 있는 맨션의 배치도 따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교양 있는 사람‘이란 세계사 지도 같은 두꺼운 책을 떠올리며 그 어디쯤의 시대, 어디쯤의 지역에 ‘자신‘을 놓아두면 좋을지(킵차크한국 같은 데는 아니겠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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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47p
‘경제적 자립‘은 당연히도 현행 경제 시스템에 편승‘ 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현재의 노동 시장에서 상당액의 대가를 얻는 사회적 능력 없이는 이룰 수 없다. 나름대로의 학력, 적절한 직업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사람과의 협상, 다른 의견과의 타협, 도량 좁은 사람의 편견에 대한 관용…… 이러한 ‘사회적 기량‘은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중시되며, 상당액의 임금을 얻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다.
기존의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적절한 포지션을 차지한다는 사실만이 ‘경제적 자립’을 뒷받침한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자립‘은 남들의 ‘경의’ 없이는 얻을 수 없다. ‘자립‘이란 ‘나는 자립했다‘는 단정이나 깨달음으로 이루는 게 아니다. 그런 간단한 이야기라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을것이다.
정신적 자립을 이룬 사람이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지원을 부탁하고 조언을 청하고 의존하고 공동의 영위에 참가하기를 거듭 바라는 이다.
보시는 바대로 ‘자립‘이라는 말은 ‘종속‘이 그러하듯 함께 같은 사회를 구성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와 함께 같은 사회를 구성하는 타자 대부분은 ‘국가‘나 ‘인권‘ ‘신‘과 같은 환상에 ‘아직도’ 깊이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경제적 · 정신적 독립‘은 그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과 함께 살며 그들의 신뢰와 경의를 얻음으로써만 실현된다.

166p 지식인의 함정은 자신이 동의하는 것은 <옳은 일>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에 있다. 이론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어도 실천적으로는 용인한다‘는 대중의 생활 감각과의 괴리는 여기서 생긴다.

177p 타인을 경멸함으로써 우월감을 얻으려는 자는 언제나 ‘자기보다 천한 인간이 안정적이면서 대량으로 공급되는 장소’로 이동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105p 우리의 마음을 오랜 세월에 걸쳐 산酸처럼 침식하여 우리를 폐인으로 몰아가는 종류의 ‘후회‘는 ‘무언가를 하지 않은 후회’다.
둘도 없는 시간, 둘도 없는 사람, 둘도 없는 만남을 놓친 것에 대한 후회,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을 끝없이 계속 도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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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p 의식 있다는 선진적 지식인들이 걸핏하면 우리 현대사가 치욕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절대빈곤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경험할 필요가 없던 그들의 불구적 행운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땅에서 누릴 것을 가장 잘 누리면서 전혀 고마움을 느끼 지 않는 것이 도덕적 정의인가 하는 것은 생각할 문제이다. 모두 제 복이요 능력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이란 생각을 못 하는 소아적·유아론적唯我論的 발상이다.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주체의 부정과 함께 몰염치한 자기기만이다. 부족함과 부러움 없이 살면서도 없는 사람 편을 드는 자신이야말로 이해관계를 초월해의 편에 선다는 선의의 자의식도 숙성된 자기기만이니허영인 경우가 없지 않다. 정치로 연결되기 마련인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은 단순한 도덕적 감정 차원의 사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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