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불꽃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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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셸리의 문체는 아주 단순하고 훌륭하다’라든지 ‘예이츠는 항상 진실하다‘ 같은 해석 말이지. 이런 해석은 아주 만연해 있어서, 어떤 비평가나 작자 모두가 어떤 작자의 진정성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 비평가가 바보란 걸 알 수 있어.˝ 킨보트: ˝하지만 전 고등학교에서 그리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고 들었는데요?˝ ˝바로 거기부터 빗자루로 쓸어버리듯 뜯어고쳐야 해. 한 아이에게 서른 과목을 가르치려면 서른 명의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네. 중국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경도와 위도 차이도 설명할 수 없어 달랑 논 사진 한 장 보여주며 그게 중국이라고 귀찮은 듯 말하는 여선생은 없어야지.˝
킨보트: ˝예, 동감합니다.”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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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사람은 참다운 인간 본연의 자세를 매일매일 유지할 여유가 없다. 그는 정정당당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여유가 없는데, 만약 그렇게 하려 들다가는 그의 노동력은 시장가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p

잘못된 고정관념은 지금이라도 버리는 것이 낫다.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 혹은 행동방식일지라도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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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일부일처제, 낭만, 분수는 높이 솟구친다. 힘차게 흩어지는 물은 거품까지 일으킨다. 충동의 출구는 단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사랑, 나의 아기뿐이다. 이 전근대적인 인간들이 미치고 사악하고 비참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의 세계는 유유자적한 태도를 허용하지않았으며 건전하고 덕망이 있고 행복해지도록 허용하지않았다. 어머니라든가 연인으로 인해서, 조건반사적으로 따를 줄 모르는 여러 가지 금기로 인해서, 유혹이라든가 고독한 회한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과 끝없이 고립화되는 고통에다 불확실성과 빈곤으로 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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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월급쟁이들이여. 끝내 아무도 그대를 탈출시켜 주지는 못했으나 그것은 그대의 죄가 아니다. 다만 그대는 흰개미들이하는 모양으로 광명을 향하여 빠져나갈 구멍을 무턱대고 시멘트로 막고 또 막은 나머지, 그대의 평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대는 자유 시민적 안전 속에, 천편일률적인 일 속에, 시골 생활의 그 숨막히는 예절 속에 공같이 뭉쳐 그 속에 가두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람과 조수와 별들을 막기 위한 이 초라한 성벽을 쌓아 올렸다. 그대는 인생의 큰 문제를 아랑곳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대는 유성의 주민이 아니며, 대답 없는 질문을 아예 품지도 않는다. 그대는 툴루즈의 한 소시민이다. 아직 그럴 여 유가 있을 적에는 아무도 그대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다. 지금은 그대를 이루고 있는 진흙이 말라 굳어 버려서, 이제부터는 아무도, 애초에 그대 안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잠든 음악가, 시인, 혹은 철학가를 그대 안에 다시 깨워 일으키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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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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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디 그림의 추상성은 그림 한 점만 놓고 봤을 때도 드러나지만 여러 점울 연속해서 볼 때 더 확실해진다. 비슷한 상자와 병의 배열을 조금씩 끊임없이 바꾸며 전경과 배경을 스미듯 넘나들고 면과 면, 형태와 형태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조심스레 탐구한다. 모란디가 일찍이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사실에서도 유추가 가능하지만 입체파처럼 모란디에게 있어 커다란 주제는 부분과 부분, 면과 면, 부분과 전체의 서틀한 관계˝ 였다. 이렇게 커다란 주제 아래 같은 소재를 반복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특징을 이루기도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모란디를 향한 애정을 담뿍 담은 짧은 글에서 ˝무엇이 혁신과 발전을 위한 기본 메커니즘인가?애 대한 답을 ‘변주’라 했다.
- 201p

모란디는 그 혁신의 세월을 살았다. 촌동네에서 그 세월을 살았고 여행은 의도적으로 자제했지만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무슨무슨 파에 가담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추상을 누구보다 이해한 사람이었지만 보란듯이 추상의 물결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구상과 추상이 충돌해 낳는 미세하고도 끝없는 균열 같은 시정을 완성했다. 사물과 사물 사이 속삭이듯 가늘게 흔들리는 골, 병에서 벽으로 벽에서 다시 병으로 진행되는 그 은근한 넘나듦, 겹치고 떨어지고 드러내는 이런 양상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가 가진 구상성과 추상성 사이의 긴장이 사람을 숨죽이게 하는 정적감과 또 끝없는 변주를 낳은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이 말에서 모란디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반복적 기억은 같은 종류의 움직임이다. 다만 그 방향이 반대일 뿐이다. 기억 속의 대상은 뒤로 가는 방향으로 반복되는 반면, 반복은 말하자면 앞으로 나아는 방향으로 그 대상을 기억한다. 모란디에게 있어 반복은 혁신을 위한 방법이었고 그 방법은 먼지로 덮인 사물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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