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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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십만왕국-N.K. 제미신



제게는 순정만화하면 잊을 수 없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들장미 소년 캔디'라거나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이 이름들이 떠오르면 동시에 함께 어떤 노래들이 떠오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와 '장미, 장미는 화사하게 피고 장미장미는 순결하게 지내~~' 같은 노래들. 캔디든 베르사이유의 장미든, 저에게는 순정만화의 대표작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왜 갑자기 순정만화 이야기를 꺼내는지? 차근차근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작가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N.K. 제미신 하면 떠오르는 건 '부서진 대지' 3부작입니다. 저에게 이 작품들은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 작품으로 3년 연속 휴고상을 수상하는 신화를 이룩했다는 찬사는 곁가지에 불과했고요. 조금 더 단순하게 말하면 '부서진 대지' 3부작의 서사는, 저에게 모녀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모녀의 서사에 '세계의 구원'을 덧붙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뒤에 읽은 '위대한 도시들' 2부작은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인들의 서사를 SF 판타지로 재구성한 느낌이었습니다. 미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함을 판타지적인 다양함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현대적인 빌런을 더한 서사로서. 

다시 <십만왕국>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아 근데 또다른 이야기를 해야할 거 같군요.^^;; N.K. 제미신의 데뷔작인 <십만왕국>이 나온 건 2011년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가 나온 건, 2013년입니다. <도깨비>의 방영이 시작된 건 2016년이고요.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냐구요? ㅋㅋㅋ 일단 들어보세요. <별에서 온 그대>는 신적인 힘을 가진 외계인이 여성을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도깨비>는 신적인 존재인 도깨비의 사랑을 받는 여성이야기입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제가 왜 <십만왕국>을 썼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십만왕국>은 신의 사랑을 받는 여성이야기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나 <도깨비> 이전에,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짜 신에게 사랑을 받는 여성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십만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십만왕국>을 읽으면서 저는 '부서진 대지' 3부작이나 '우리들의 도시' 2부작과는 다른 서사의 힘을 기시감처럼 느꼈습니다. 그 서사의 힘을 순정만화식 여성서사의 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런 서사에는 삼각관계가 자석처럼 딸려오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도시의 하늘궁전에 와서, 역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아라메리 가문의 후계자를 둘러싼 다툼에 말려든 주인공 예이네를 삼각관계의 중심축인 사랑받는 여인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일종의 캔디 역할이죠. 다른 한축에는, 여인 옆에서 든든하게 버티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주는 남성 역할이 있습니다. 일종의 안소니라고 할 수 있는 이 역할을 <십만왕국>에서는 '시에'가 맡습니다. 주신이자 빛의 신인 이템퍼스에게 패한 뒤에 이템퍼스를 믿는 아라메리 가문의 노예가 된 신들 중에서,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장난을 치는 신 시에는 예이네의 곁에서 꾸준히 버티며 사랑을 해주는 존재입니다. 반대편에는 매력 넘치지만 어딘가 위험한 풍모의 남성 역할이 있습니다. 테리우스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나하도스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이템퍼스와 함께 가장 강한 세신 중 한명인 나하도스는 밤의 군주이자 어둠의 신으로서 주신 이템퍼스에게 패한 뒤에 아라메리 가문의 노예로서 인간 형상을 한 채 하늘궁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력한 매력을 뿜어내는 나하도스는 진짜 위험한 존재입니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럽지만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존재. 나하도스의 매력적이자만 위험한 면모는 소설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예이네는 나하도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를 사랑하면 죽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피할 수 없죠. 결국 예이네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하도스와의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이 정도니까 제가 순정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순정만화의 서사로만 이 소설이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다른 복잡한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지며 이 소설을 구성합니다. 저는 단지 이 서사의 핵심축을 두 신과 한 여성의 삼각관계로 본 겁니다. 그리고 순정만화식 삼각관계에 덧붙여 또하나 중요한 요소가 더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인 예이네의 '각성'이라는 부분입니다. 소설이 시작할 때 예이네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소설의 이야기를 겪고 끝날 때 예이네는 각성한 존재가 됩니다. 저는 각성을 통한 성장이 순정만화식 연애와 함께 <십만왕국>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십만왕국>은 순정만화식 연애소설과 각성을 통한 성장소설이라는 두 가지 서사 스타일을 판타지로서 합성해서 만들어낸 소설인 셈이죠.

읽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읽기 시작했으니 이제 멈출수가 없습니다. 저의 독서는 <무너진 왕국>과 <신들의 왕국>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순정만화이든 성장서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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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기의 역학 TURN 3
설재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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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 변기의 역학-설재인


2025년 첫 서평을 써봅니다. 2024년 12월달에 한편을 쓰긴 했지만, 너무 오랜만에 쓰는 것이라 여전히 쓸 때마다 어떻게 쓸지 잘 모르겠네요. 이 책의 서평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써야 할까. 아 파트를 나누어서 써보려고 합니다.


1. 에세이편: 변기에서 역류하는 물에 대한 공감


2025년 첫날부터 변기 이야기를 하는 게 부적합해 보이지만(^^;;) 책이 책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기의 역학>의 주인공인 성아정은 40이 다 된 나이에 별다른 재산도 없고, 직업도 불규칙한 상태에서 작가라는 꿈을 좇는 인물입니다. 당연히 부모님이나 여동생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죠. 그렇게 불안정하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던 아정은 우연히 청년전세임대지원사업에 당첨되어 서울 한 복판의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주변인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집의 변기에서 물이 사라지고 악취가 올라오는 '봉수파괴'라는 현상을 겪으면서 아정의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멀쩡한 집에 이사왔는데 이건 무엇인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건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 현상이 위층 집의 배관문제와 엮여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고민은 더 깊어지죠. 지금까지 남한테 나쁜 말 한 번 제대로 못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민은 집에서 변기에 앉아 있다 역류하는 물이 엉덩이에 닿으면서 최악의 절정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부분까지 읽고 깊은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저도 변기에서 물이 역류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정이랑 다르게 앉아 있을 때 물이 역류한 건 아닙니다. 저는 서 있는 상태에서 변기의 버튼을 눌렀는데 물이 역류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넘치는 물 앞에서 얼마나 절망감이 밀려오던지. 아정만큼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변기 물 역류는 최악의 경험이었습니다. 삶의 밑바닥에 내려간 듯한 느낌으로. 


2.분석편: 가족의 타자성

가족은 피가 이어진 혈육이 맞습니다. 하지만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기도 합니다. 가족과 나 사이의 관계에는, 완벽한 동일성과는 다르면서도 완벽한 타자성과 다른, 타자성과 동일성 사이의 모순적이고 혼란스런 모습이 가득합니다. 우리에게 그 혼란은 피가 이어진 혈육이라는 관계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 카프카의 <변신>입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됩니다. 가족들은 당황한 상태에서 벌레가 된 잠자를 돌보지만, 시간이 지나 잠자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이 명확해지자 잠자를 죽음으로 내몰게 됩니다. 가족의 서늘한 타자성을 너무나 잘 드러내는 것이죠.


한국식 서사에서 자주 나오는 가족 로망스나 가족주의 신화는 <변신>과는 반대지점에 위치합니다. 이 때의 가족 로망스나 가족주의 신화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거나 가족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가족이 삶의 마지막 보루이자 일상의 안온한 평온함이 유지되는 장소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물론 반대로 가족 로맨스나 가족주의 신화를 해체하는 서사들도 있습니다. <그 변기의 역학>은 해체서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감 1000%의 변기 역류 일 이후에 이 책의 서사는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봉수파괴의 원인이 된 윗집 남자를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 아정은, 남자를 따라서 취직하게 됩니다. 그가 하던 자기 자신의 어머니의 몸을 깎는 일을 하는 같이 하면서. 저는 이 부분에서 놀랐습니다. 아니 이야기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흘러간다고. 네, 설재인 작가는 가족의 타자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갑니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위에서도 적었지만 가족은 나가 아닙니다. 부모님과 나 사이가 혈육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부모님은 나가 아니기에 나를 백프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육체적 폭력을 행사했거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폭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면 그 사이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정과 아정의 어머니 사이에는 서로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 없는 오래된 가족 서사가 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그 울분을 딸에게 풀었던 어머니, 나이 들어서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어머니. 딸인 아정은 윗집 남자를 따라서 자신의 어머니의 육체를 깎으면서 어머니를 서서히 소멸의 길로 몰아넣고, 자신은 그걸로 돈을 법니다. 


윗집 남자와의 인연을 통해 어머니를 소멸로 몰아가면서, 아정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가족주의 신화 속에서 '사랑'이라는 무형의 가치 때문에 시장에서 통용되는 교환가치로 측정되지 않던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시장에서 교환가치로 측정되는 길로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교환되고 측정되지 않는 사물이 아닌 어머니가, 돈으로 측정되고 시장에서 교환되는 사물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오직 돈을 위해 존재하는 사물로. 


책을 읽다가 내가 느낀 거부감은 거기에서 옵니다. 눈뜨고 살아가며 관계 맺는 어머니라는 사람이, 육체가 깎이고 깎이며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수량화되고 가격이 매겨지는 극단의 사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 냉정한 자본주의의 현실화 앞에서 어머니라는 가족은 완벽하게 타자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완벽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반박할 수 있을까요? 반박과 부정이 힘든 면이 있기 때문에 <그 변기의 역학>은 거부감 들고,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설재인 작가의 작품과는 다른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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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

2025년 1월 11일에 있을 독서모임 때문에

도서관에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빌렸습니다.

빌리고 보니 책이 너무 두껍고 크네요.^^;;;

오랜만에 이렇게 두껍고 큰 책을 읽으려고 하니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그래도 새해 첫 독서모임을 맞아,

열심히 읽고 말할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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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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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년이 온다-한강


1.

1980년 5월 18일. 

그때, 부산 출신의 나는 너무 어렸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말그대로 살아 있기만 했다.

그때,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벌어온 돈의 상당수를 금융권 출신의 친척에게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일을 겪은 뒤었다. 다른 말로 하면 친척이 아버지의 돈을 떼먹은 상황을 겪었다. 아버지는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몸져 누웠서 지냈다. 아침마다 목에서는 가래가 끓었고, 온몸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벌어온 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대가로 아버지의 정신과 몸은 피폐하다 못해 망가져서 회복되기가 힘들어 보였다. 병원에 가면 몸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날마다 아픔의 습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약을 쌓아놓고 먹었지만, 아버지의 고통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호하고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 나이 어린 누나들은 세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단지 누나들은 우리집이 가난해졌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부산에 살던 우리집 가족들은 5월 18일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때, 10살의 한강이 있었다. 광주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온 한강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친척들과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년이 지난 뒤에, 한강은 아버지가 가져온 사진을 우연히 보고 광주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충격을 받은 한강은 후에 그날의 일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을 쓰게 된다.


그때, '소년'이 있었다. 고립된 도시 광주에서 시민들을 목놓아 부르던 시민군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소년. 계엄군들의 총에 죽음을 맞은 소년.


2.

2014년.

나는 독서모임을 위해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읽는 내내 펑펑 울었고, 너무 아팠다. 글 속에 알알이 새겨진 고통이 글을 통해 내 몸으로 전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고통을 인으로 새기는 듯한 고통의 독서 경험. 무지와 무자각 속에 1980년 5월 18일을 살았던 내게, <소년이 온다>는 34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광주와 부산이라는 공간적 거리를 뛰어 넘어, 그날 광주의 고립과 고독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전해준다. 소년을 통해, 광주의 죽음을 바라보는 정대의 영혼을 통해, 일곱 번의 뺨을 맞는 경험을 한 은숙을 통해, 살아남았지만 고문 당하고 그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한 진수를 통해, 그 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선주를 통해, 소년을 잊지 못한 소년의 어머니를 통해, 그 날의 경험을 글로 쓴 작가 한강을 통해.


3.

2024년 12월.

다시 내게로 '소년'이 왔다. 과거의 망령이 살아난 듯한 현실 속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소년이 찾아 온 걸 느꼈다. 과거의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p.213) 그리고 2024년의 현실에 계엄이 왔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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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근 10년중에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해입니다.

물론 서평은 한 편도 안 썼지만. ㅋㅋㅋ

아, 이렇게 적고 보니 서평을 한 편 썼다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블로그나 서재가 아닌 카톡에.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독서모임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제가 모임 선정 책도 아닌데,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해서

불꽃 같은 비판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의 여력이 남아 있었던 탓인지

집에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독서모임 인원들이 모여 있는 카톡에

이 책에 대한 장문의 서평을 남겼습니다.

그게 올해의 유일한 서평이 되었네요.


너무 정치공학적인 이야기로 가득해서

서재에 올릴 생각은 없습니다.


신기한 건, 올해의 유일한 서평을 쓴 플랫폼이 

카톡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시 서평은 감정의 여운이 있어야 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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