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정서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20대에는 우울함도 심했고, 조증과 울증을 자주 왔다갔다했죠. 그때만 해도 저는 제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습니다.^^;; 젊은 날에 자살하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빨리 삶을 마감하리라고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예감은 예감일 뿐. 저는 제 예감을 벗어나서 생각보다 오래 살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 살아서 당혹스러울 정도로. 근데 뭐 저보다 더 일찍 죽을 것 같던 우울증이 심한 제 친구가 100세 사는 걸 자신하는 걸 보니 제가 오래 사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네요. 아마도 스무 살의 청춘에게는, 강렬한 정서적 충동이 삶을 지배하는 걸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스무 살 청춘에게는 스무 살 청춘의 삶의 방식이 있고, 20대를 벗어난 30,40대에게는 30대와 40대의 삶이 있는 것처럼.
20대를 벗어나서, 30대 초반마저 벗어나니, 감당할 수 없는 우울함이나 조증과 울증의 심각한 변화가 자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좋은 거죠.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는 말이니까요.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과거의 친구들인 조증과 울증이 찾아옵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그 친구들이 반갑습니다. 울증이 와서 정신적인 나락을 경험하는 것도, 조증이 와서 하늘을 꿰뚫은 상승의 기분을 느끼는 것도, 어차피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저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잘 아니까요. 오늘은 드물게도 조증이라는 옛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오랜만에 찾아오면서,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계획을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증이 불러낸 달려드는 자신감은 바로 글로 이어집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로.
우선 제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획부터 말해야겠네요. 계획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이 글에서 시작되어 하려는 건,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어려움도 없는 것입니다. 그건 거창하고 거대한 계획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소소하달 수도 있는 계획인데요, 자세하게 말하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고 복잡해져서 이 글에는 쓸 예정이 없습니다. 줄여서 말해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써온 서평들은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마다 떠오른 것들을 마구 쓴 것입니다. 저는 이것의 반대로 어떤 특정한 시점을 바탕으로 일관된 관점에서 서평을 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관된 관점과 생각의 틀 속에서 움직이지만 서평 자체는 저마다 특색이 있는, 일종의 연작 서평을 써보는 것이죠. 물론 한 번도 실행한 적은 없었습니다. 실행을 못한 이유는, 제가 게을렀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증이 찾아온 김에, 조증이 불러 일으킨 자신감이 글을 쓰라고 하네요. 그래서 시작해보겠습니다. <데미안> 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