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숏-마이클 루이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나를 분노하게 만든 책들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글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좋게 느끼거나 감동시킨 책들에 대해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마치 감정은 느끼는데,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쓰려고 하면 백지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빅숏>도 마찬가지다. 나는 <빅숏>을 읽고 좋은 감정을 느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기쁨이나 즐거움, 감동과는 다른 감정이다. 그건 이상한 쓸쓸함, 서글픔, 슬픔, 상실감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 이상하게 '좋은' 감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경제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한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 어쩌면 언어는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이란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 감정의 근사치를 언어로 표현해놓고 그것이 진짜 감정이라고 주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말에 따른다면 내가 <빅숏>을 읽고 느낀 이상하게 '좋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기로 다짐했으니까. '순환의 오류' 같은 말이지만, 나는 쓰기로 했기에 쓸 수밖에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불가능하든. 하여 나는 앉아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쓰고 보니 역시 떠오르는 건 없다. 잠시 가만히 있어 본다. 떠오르는 건 '폐허, 재난, 재앙, 어리석음 ' 같은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을 가지고 뭘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은 계속된다. 아, 뭔가 떠오른다.
우리는 재난을 어떻게 아는 걸까? 예언 같은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인간이라면, 재난이 닥치기 전에는 그게 재난일지 모를 것이다. 평범한 이들에게 재난이란 닥치고 나서야 그게 재난인 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재난이 닥쳐서야, 재난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게 재난인 줄 아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평범한 이들보다 조금 일찍 재난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도 평범한 이들보다 조금 일찍 아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존재한다. 다수가 아닌 지극히 소수 중에 재난을 빨리 눈치채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외친다. '재난이 닥치고 있어요'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한다. '무슨 재난이 오냐'라고 하면서.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미래를 알지만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예언가 카산드라처럼. <빅숏>은 그 '소수'의 이야기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러올 재난을 미리 눈치챈 사람들이 바라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재난의 이야기. 경제나 금융에 관심없는 평범한 이들뿐만 아니라 소위 난다긴다 하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업자,애널리스트,관련인물들과 경제학자들도 파악하지 못한 그 재난의 모습을 파악한 이들이 파멸로 질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야기.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있을까? 아니, 단언하지만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은 없다. 여기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 회의감, 서글픔, 상실감 같은 감정들의 회오리가 있다.
'우리가 실패할리 없어요, 그러니 우리에게 돈을 맡기면 당신의 돈을 불려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추호의 의심도 없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팔고 사고 그것을 이용해 다시 복잡하기 그지없는 금융파생상품을 만들어 다시 팔고 산 월가의 금융업자들과 그들을 따라 돈을 굴린 전세계의 금융업자들과 투자자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돈을 얻기 위해 금융업자들의 의사에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좋게 평가한 신용평가기관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지만 시장을 안 건드리면 좋다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맹신해서 수수방관했던 규제기관의 관료들. 금융업자들에게 속아서 투자했던 평범한 사람들. 이들 모두는 알지 못했다. 빚에 빚을 더해서 만들어진 경제 호황의 끝에 어떤 재난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가정부 일을 하던 이가 빚에 빚을 더해 집을 15채 사고,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라틴계 불법 이주자가 대출을 갚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빚을 내어 집을 사고, 그 사람의 채권이 신용평가기관에 최고로 높은 AAA등급을 받아 다시 팔려나가고, 미국의 JP 모건,골드만삭스 같은 유수의 금융회사가 이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호황은 이어질 것이라고 외치고,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그에 호응하여 미국 경제는 안전하다고 외치는 기막힌 현실.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눈치채지 못한 채 모두가 최악의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 괴짜이자 세상과 다른 시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파악하여 사람들에게 외친다. 이것은 위험하다고. 당신들은 미쳤다고.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좋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이상한 소리 하냐고 하면서. 그들은 파국이 닥치고 나서야 깨닫는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모든 걸 지켜본 파국을 미리 눈치챈 소수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앞에 말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 회의감, 서글픔, 상실감 같은 감정들의 회오리를 느끼지 않을까? 책을 읽은 독자가 느끼는 감정 또한 그들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감정은 책에 나오는 파국을 미리 눈치챈 소수와는 다르다. 우리는 이미 그 재난을 지나왔기 때문에. 하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직접 겪지 않은 한국의 독자들의 경우는 더 거리감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회오리는 직접 그 사건을 지나온 그 소수의 사람들이나 재난을 겪고 몰락한 이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시한 한국의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근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건,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근사치라도 느끼게 한다는 점. 파멸의 구렁텅이를 운좋게 비켜간 이들이나 파멸을 맞은 이들의 감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게 하다는 점. <빅숏>의 미덕은 그것에 있다. 우리는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어떻게 사람들이 파멸해갔는지를. 파멸을 피한 이들은 어떻게 피해갔는지를.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경제적 재난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긴다.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만이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언가를 쓰기는 썼다. 내가 한 다짐을 지킨 것에 안도한다. 글이 어떻든 썼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이제 글을 끝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