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 공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403.역사 사용 설명서-마거릿 맥밀런

우리는 역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역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6)
역사는 우리가 기분 내킬 때 바라보는 과거 속에 고분고분하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역사는 이로울 수도 있고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역사란 낙엽 더미나 먼지투성이 유물 더미가 아니라, 현재에 머물면서 시나브로 우리의 제도와 사고방식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형성해가는, 가끔 평온하고 대개는 격동적인 웅덩이로 보아야 한다.(7)
우리는 역사를 지금 하고 싶어하는 거의 모든 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거짓말을 꾸며내거나 단 한 가지 관점만 보여주는 역사를 기록할 때 역사를 악용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신중하게 끌어낼 수도 있고 부정하게 끌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역사에서 이해, 지지, 도움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중히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8)
역사는 인간의 가치관, 두려움, 염원, 사랑, 미움을 형성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과거의 힘을 이해하게 된다. 심지어 사람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조차, 주로 과거에서 전범을 가져온다.(20)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이룬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환경 속에서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물려받아 이미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이룬다.(21)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를 도우려고 과거를 불러낸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이유는 오늘날의 권위자들을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이다.(35)
역사는 우리의 권위다. 역사는 우리의 정당성을 입증해줄 수 있고, 우리를 심판할 수 있으며, 우리와 맞서는 자들을 응징할 수 있다.(36)
과거와 현재가 서로 따로 노는 한, 과거에 대한 지식은 현재에 별 쓸모가 없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에 살아 있다고 생각해보라. 즉 현재에 둘러싸여 언뜻 보기에 현재의 모순되고 두드러진 특징 밑에 가려졌더라도 과거거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보라. 이럴 경우 역사가와 비역사가의 관계는 능숙한 산사람과 무지한 등산객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66~67)
너무 자주 되새겨지는 기억과,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되는 기억은 정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 원래 기억 대신 들어앉아 스스로를 희생시키며 자라는 가운데 구체화되고 완벽해지고 치장된다.(73)
집단의 과거 속 주요 상징에 관한 서로 상반된 설명들과, '과거와 집단성의 관계'가 집단의 현재를 재정의하기 위해 논의되고 협의된다.(74)
이데올로기가 역사에 기대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수중에서 과거는 예언이 된다.(96)
역사는 민족주의를 부채질한다. 역사는 집단기억을 형성함으로써 민족의 생성에 일조한다. 민족의 위대한 업적을 함께 찬양하고 패배를 함께 슬퍼함으로써 민족을 지탱하고 육성한다.(121)
민족이란 기존의 희비록 일부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울지라도 과거를 정직하게 성찰하는 일은 사회를 성숙시키고 다른 사회와 교통할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200)
민족이란 희생자들과 미래에 양산될 희쟁자들에 대한 감정에 의해 생성된 거대한 결속이다.(122)
민족의 자아는 민족이 기억하는 만큼만, 즉 민족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하나의 자주 독립체로 결합하는 법을 아는 만큼만 존재합니다.(133)
역사는 현세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쓰여서는 안 되고, 인간사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쓰여야 합니다.(187)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216)
"과거를 방문하는 것은 타국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거기서는 똑같이 돌아가기도 하고 다르게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거기서 이른바 '고국'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여 겸손, 회의, 자기 각성밖에 배우지 못하더라도 역사 연구는 유용한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으추측과 남들의 추측을 조사하여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다른 설명도 가능한지 캐물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이것이다.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게 다루어라.(249)


D의 주장
(앞부분 생략)
<역사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을 보니 역사를 '사용론'의 관점에서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사용론의 관점에서 말한다는 건, '역사'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등장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서인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사용가치라는 말이 등장하거든요. 그래서 첫번째로 저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서 '역사'를 '사용론'의 관점에서 말해보겠습니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화폐 얘기를 먼저 해보죠. 마르크스는 '화폐'를 그 자체로 사용가치는 없지만 교환가치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망치 같은 물건은 그 자체로 못을 박거나 건축 현장에 사용되는 공구로서 망치 자체의 '사용가치'가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사용가치가 있는 물건들과 비교하여 화폐의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화폐'가 그 자체로는 어디에서도 사용되기 힘든, 사용가치가 없는 물건이고, 다른 물건들과 교환되는 역할만 담당하는, 사용가치 없이 교환가치만 있는 물건이라고 말합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화폐를 사용가치가 없고 교환가치가 있다고 정의합시다. '역사'는 반대입니다. 역사는 다른 무엇과 교환되지 않으므로 교환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 자체로 사용가치가 있습니다. 과거를 교훈이나 본보기로 삼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에서 비균질적인 한 국가의 구성원들을 균질적인 '국민'이라는 가상의 개념으로 묶기 위해 사용하는 것 같은. 교환가치는 없고 사용가치만 있기 때문에 역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역사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정체성과 역사의 사용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두번째 지점이 정체성과 역사가 연관되는 부분에 관련이 있습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저는 인간 개개인이 자기 심리의 영역에서 좋은 부분만 인식하고 나쁜 부분을 무시하거나 없는 것처럼 한다면, 조금 더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정체성의 문제를 더 확장해서, 공동체,사회,국가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동체가,사회가,국가가 자신들의 멋지고 뛰어나고 좋은 역사만 기억하고, 잘못됐거나 실패했거나 나쁜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다면서. 역사가 건강하지 않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면 악용됐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 사용설명서>를 보면 역사가 악용된 무수한 사례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려는 세번째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사의 악용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거의 대부분 '과잉된 민족주의'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위대하고 뛰어나며 잘못이나 실수나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과잉된 민족주의'는 민족을 이상화, 우상화하고 한 공동체와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무수한 사건들이 축적되어 이루어지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실수 없이 무조건적으로 위대하고 뛰어난 민족이 있을 수 있나요? 그게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인가요? 인간으로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게 옳은 일인가요? 여기에서 민족주의가 어떻고 그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과잉된 민족주의가 이룩한 이상화,우상화는 결국 한 사회와 공동체의 현실을 그 자체로 파악하는 걸 가로막고, 그 사회와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들의 정체성의 문제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는 겁니다. 인종주의를 주장하며 소수자,약자,생각이 다른 자,인종적으로 다른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죽인 독일 나치들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잉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처한 현실,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것을 현실 속에서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하느냐가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 역사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와도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책을 읽고 어떤 대답을 스스로 할지 기대하며 이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