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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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네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그들의 언어는, 언어로서 완성된 하나의 범용 그래픽 언어라고 생각해요.(180)
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목표를 조준하는 것과 같아. 너는 언제나 내 예상보다 앞서 나가 있을 거야.(188)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201)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207)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212~213)
그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력한 자동인형인 것도 아니다. 헵타포드의 의식 양태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그들의 행위가 역사상 사건과 일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동기 또한 역사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를 창출해내고, 연대기를 실연해 보이기 위해 행동한다.(217)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헵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219)
나의 의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간 선을 따라 기어가듯이 전진하는 기다란 담뱃불이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억의 재가 뒤뿐만 아니라 앞쪽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진짜로 타오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 헵타포드 B가 진정한 우위를 점하면서 일별의 순간이 올 때, 나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경험한다. 나의 의식은 시간 밖에서 타다 남은 반세기 길이의 잿불이 된다. 이런 경험을 할 때 나는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 이것은 나의 남은 생애와 너의 모든 생애를 포함하는 기간이다.(223)

*이 글은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한편인 '네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리뷰입니다.

C의 주장
(앞부분 생략)
테드 창은 설계에 뛰어난 작가입니다. 그가 소설을 쓸 때, 먼저 소설의 세계관이나 틀을 철저하게 설계를 하고 들어갑니다. 철저한 사전조서와 지식의 습득을 바탕으로 하나의 소설에 맞는 세계관과 틀을 철저하게 짜맞추고 나서, 테드 창은 그 틀에 맞게 소설을 써내려갑니다. 결국 소설은 틀에 맞춰서 만들어지고 우리는 소설의 틀에 쓰여진,틀에 맞춰서 형성된 소설을 읽기만 하면 됩니다.
(중략)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간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근대적 시간관이란, 직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거쳐 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이 시간관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이야기됩니다. 거기에 더해 근대적인 사고는 과거를 거쳐 현재,미래로 이어지면 우리는 발전하고 진보한다고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 근대적 시간관을 주입받고 젖어 지내온 우리는 이 근대적 시간관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대적 시간관은 지극히 근대적인 사고에 불과합니다. 유럽의 중세를 바라볼까요? 농업과 기독교를 중심에 두고 있던 유럽의 중세에서 가장 중요한 건 '1년'이라는 시간입니다. 씨를 뿌려 작물이 자라게 하고 작물을 거두고 겨울을 견디는 것은 유럽 사회 경제의 핵심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은 1년의 순환에 중심을 두지 전체적인 틀로서의 시간이 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늙고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신의 섭리'로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수용할 뿐이었습니다. 굳이 큰 틀의 시간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죠.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헵타포드의 시간관은 근대적 시간관이나 유럽 중세의 시간관과는 다릅니다. 외계인인 이들은 과거,현재,미래를 한 번에 인식합니다. 근대적 시간관처럼 시간을 인과관계가 이어지는 선처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한꺼번에 뭉쳐져 있는 '점'처럼 인식하고 동시에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저도 그 말을 이해합니다. 우리 시대의 시간에 관한 인식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어서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바라본다라는 것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 자신도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바라본다'라는 것을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테드 창이 열어보인 전혀 새로운 시간관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통해 잠시 그 시간관을 엿보고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때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탐색하는 헵타포드의 시간관은 우리의 시간관이나 인식으로는 알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범위를 넘어서는 시간관을, 세계상을 인식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결국 우리의 인식을,시야를,세계관을 넓히게 될 것입니다. 테드 창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중심이 되는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우리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게 만듭니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이라는 가능성을 넘어서는 기회를 가지는 셈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넘어선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테드 창이 '네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시간관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그건 '신'입니다.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없는 신이라는 존재가, 만약에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인 신은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헵타포드의 시간관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신의 시간'에 가까운 시간관일 겁니다. 사실 저는 '네 인생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책 전체에 걸쳐 신의 그림자를 느낍니다. 첫 작품인 '바빌론의 탑'이 성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옥은 신의 부재' 같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독교적인 부조리함의 느낌까지, 이 책은 신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어쩌면 테드 창은 신에 대한 탐구를 자신의 SF소설을 통해서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테드 창의 문학세계가 어느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테드 창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며 어떤 방식의 탐구를 할지 기대가 됩니다. 어찌 되었든, 인간이 만든 소설을 통해 인간을 넘어서서 신의 세계를 엿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네 인생의 이야기'가 올해 제가 읽은 소설 중에 최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요, 인간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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