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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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18)
제가 버클리에서 '인지과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프레임 연구를 강의할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인데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옮긴이] 저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23~24)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26)

예전에 저와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흥분해서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들더군요. '어차피 말도 안통하는 사람이고 말을 해봤자 내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다 이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바꿀 여지가 전혀 없는데 이렇게 쓸데없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자료와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하는데 상대방은 '안 들을건데, 안 믿을건데'로 응수하는 수준이라 도저히 내가 이 사람과 왜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지더군요. 말다툼을 끝내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식의 말다툼은 하지 않겠다고.

2006년도에 이미 읽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독서모임 때문에 다시 읽으며 저 말다툼이 떠올랐습니다. 나와 말다툼을 한 나이 많으신 분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얘기한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틀로서의 프레임을 완벽하게 구축해놓고, 언어는 그 프레임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자신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말은 완벽하게 무시하는 모습으로. 저는 그 말다툼을 통해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2006년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2006년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그것이 얼마나 옳은지 알았고, 인식틀로서의 프레임과 인식틀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저마다 자신만의 인식틀인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서 세상을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한 뒤에 그것을 언어로서 표현하고 있는 셈인데, 이 프레임과 말의 힘을 무시하고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006년에도 저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프레임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말을 써야할까. 깊은 고민만큼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써봤습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인의 벽은 높았고 저의 좌절은 깊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저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저만의 언어를 써왔죠. 어느새 시대가 바뀌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저만의 노력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가 따라주어야 성과가 있는 거라고. 시대의 변화는 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냥 저의 이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렇습니다.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하는 것들이 어떤 희망을 준다고 해도 시대가 따라주어야 성과가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묵묵히 자신을 믿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제는 미소가 지어지네요. 미소로 글을 끝내려 하는데, 마지막으로 덧붙여서 미국인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조지 레이코프가 과거에 저에게 주었던 힘만큼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제가 힘을 주고 싶네요. 노력하다보면 분명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말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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