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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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이사카 코타로

1.
평화경찰은 진짜 위험한 인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경찰에게 필요한 건 진짜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위험한 인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나는 통제와 질서다.
당신이 위험해서 위험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위험인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위험인물이 된다.
위험인물이 되는 순간 당신은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자백하게 될 것이다.
자백한 순간, 당신은 죽은 목숨이다. 위험인물이 되었기 때문에.
가학을 즐기는 평화경찰들은 즐기며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이 굴복하여 자백하면 역시 웃으며 당신의 공개처형을 결정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앞에서 단두대 앞으로 끌려간 당신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신이 죽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그들은 당신이 죽는 걸 은근히 바라기까지 한다.
당신의 죽음이 그들에게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당신이 운이 좋다면, 정의의 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오른손에는 목검을, 왼손에는 골프공 같은 신비의 무기를 든 남자.
그가 온다면 눈을 감고 기도하라. 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2.
위의 글은 이 소설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한 느낌이 있지만, 거의 들어맞는다고 보면 된다. 위의 글만 읽다보면 이 책이 어둡고 무거울 것 같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사카 코타로 특유의 위트와 톡톡 튀는 감성이 있어서 소설은 어둡다거나 우울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설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는 무엇인가라거나 영웅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거나 사회적 부조리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같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와 무거운 질문의 역설적인 공존 앞에서 독자들의 고민은 무겁지 않게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사카 코타로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읽고 나서 무겁게 고민하는 식으로.

3.
책에서 흐르는 정치에 대한 독특한 시각은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자민당의 일당 독재 같은 일본의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변화를 꿈꾸는 이라면 어쩔 수 없이 회의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회의감이 너무 깊어서 절망감과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 절망감과 패배감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만의 절망을 피하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구현하며 그 절망감과 패배감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뜻언뜻 들여다보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나 무력감마저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사카 코타로가 일본보다 정치적인 의사소통이 쉽게 이루어지고 정치 시스템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면 그의 소설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소설을 읽다가 문뜩 그것이 궁금해졌다. 아마도 제목이 '지구에서 살 생각인가?'로 바뀌지 않았을까.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소설 '지구에서 살 생각인가?'를 떠올리며 이제 이 글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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