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 - 아이에게 준 최고의 선물, 발도르프 학교
강성미 지음 / 샨티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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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모노 드라마 형식을 이용해서 글을 썼습니다.

처음 무대는 빛이 한조각도 없는 깜깜한 어둠이다. 극이 시작되고 나서야 조명에서 뿜어져나간 빛이 무대를 내리비춘다. 빛이 비춘 원형의 공간 안에는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듯한 남자는 빛이 자신을 비추자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기 시작한다.

수업을  듣는 곳에서 '내 기억속의 학교'라는 주제로 글을 써오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에 대한 기억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망각은 축복이라고들 하는데, 학교에 대한 기억이 지나치게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일까요?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는데 나만 안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어쩔 수 없이 내 머리에 있는 낡은 기억 속 서랍을 열심히 뒤졌습니다. 서랍을 열어 살펴보니, 먼지가 가득 쌓여 있어 쉽게 분간이 되지 않는 '학교에 대한 기억들이' 있더군요. 먼지를 털고 바라보니 잊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더군요. 좋은 기억들도 있었죠. 근데 부정적인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더군요. '아직도 그 기억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나 봐요.

씁쓸한 미소를 짓던 남자는 입을 다물고 골똘히 생각을 한다. 잠시간의 침묵을 거쳐 그는 입을 열어 말을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수업의 기억이었습니다. 무슨 수업을 했고, 어떤 것들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앉아서 무언가를 들었던 기억은 확실히 있습니다. 덥든 춥든 잠이 와서 눈이 감기든 상관없이. 그 다음으로는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주로 친구들과의 기억입니다.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같이 놀고 운동하고. 좋았던 기억 다음으로는 기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부정적인 기억들이 생각납니다. 뺨맞고 두드려맞고 몽둥이로 맞아 피멍들고 욕듣고 비난듣고 기합받고. 내가 맞은 기억도 있지만 친구들이 너무 심하게 맞아서 그것 때문에 공포스러웠던 기억도 많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이 심하게 싸웠던 것도 기억납니다. 의자와 책상을 집어던지고 패싸움하고. 부정적인 기억의 힘이 막강하진 학교에 대한 기억이 좋지는 않네요. 휴우~~

남자는 갑자기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는듯이 앞을 지그시 바라보던 남자의 입이 열린다.

부정적인 기억 때문인지는 학교에 대한 기억을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잊고 지냈습니다. 나쁜 기억을 떠올려봐야 좋은 게 없기 때문이죠. 지금에 와서 다시 떠올리나 예전만큼 감정이 북받치는 것은 없습니다. '그때는랬구나'하는 생각만 듭니다. 굳이 떠올리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요. 내가 지냈던 시절을 되돌아보니, '조금 더 좋은 시절을 보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남자는 말을 그만두고 의자 근처에 놓여 있던 책을 든다. 책을 자기 앞쪽으로 보이며 남자는 말을 이어간다.

수업 때문에 글을 쓴것과 더불어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라는 책도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더군요. 한 한국인 여성이 아이들과 같이 미국의 콜로라도 주의 볼더라는 곳에 가서, 발도르프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서 자신과 아이들이 겪은 일들을 쓴 책인데, 읽으면서 너무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내가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을 받았더라면, 덜 맞고, 덜 비난받고, 나 자신으로 오롯이 존재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아이를 아이 자체로 바라보고 그 자체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 자신의 자아를 존중하게 하고, 시험과 성적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게 하는 교육을 받았더라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 지금에 와서 이런 후회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아쉬움은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남자는 말을 멈춘다. 잠시간의 침묵. 일정 시간이 지나자 그는 입을 연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본적인 지식, 한국이라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가치관과 관습 정도는 배웠습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것, 삶에 대한 것 같은 살아가면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배우지는 않았어요. 나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세상은 어떤지, 세상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같은. 물론 답을 내리기 쉽지 않겠죠. 그걸 아는데, 답을 주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질문을 하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습득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정도도 할 수 없다면 지금 교육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 가지는 것 외에 삶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 효용이 무엇일까요?질문을 던지기는 했는데 저 자신도 여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푸념이나 늘어놓는 것 밖에 없겠죠.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의자에서 일어나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빛이 꺼지고 무대에 막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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