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시인선 84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김민정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5)


나는 시를 버렸다. 거의 6개월여동안. 그런데 다시 시집을 펼쳐읽으니 시가 내게로 왔다. 하나의 의미가 되어, 하나의 꽃이 되어, 하나의 몸짓이 되어. 내 의식에 도달하지 못하는 어렵고 난해한 시가 아니라, 내 의식에 밀려들어와서 자신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주장하는 사람과 삶의 언어로서의 시로.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의미'로서의 시로. 


비 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하자, 가 아니라

하면 할게, 라는 사람이

무조건 착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우리는 오늘에 이르렀다(78)


김민정 시인의 시는 거침없이 내달린다. 외설과 예술, 경쾌함과 우울함, 비루함과 비루하지 않음, 현실과 가상, 시의 화자와 독자, '나'와 '너'의 경계를. 경쾌하고 거침없이 내딛는 시인의 시와 함께 걷다보니 어느순간 해방감과 더불어 웃음이 찾아오더라. 삶이 이렇게 가볍기도 하는 것이구나. 인간 존재가 무겁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이 빚어내는 웃음. 웃음이 끝나고 나니 다시 시에 생각하게 된다. 과연 시란 무엇인가.


밤에 뜨는 여인들

...

4

여기

그녀가

있다

영정사진 속

아무도 아닌

동시에 어떤 것도

되려 한 적 없는

그 무엇으로

여기

그녀가

있다(47)

시를 6개월만에 읽다보니, 거침없이 내달리며 삶을 쏟아내는 김민정의 시를 읽으며 웃음을 터뜨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란 무엇인가가 생각난다. 시란 무엇인가. 물론 시를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내 나름대로 시를 정의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막상 정의해보려 하니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쩌면 시는 알 수 없는 것, 정의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시를 시로서 정의하는 것은 오직 각각의 시밖에 없는 것 아닐까. 세상의 모든 시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시'를 정의하는 것 아닐까. 천개의 정의, 천개의 개념들. 무엇으로 개념화할 수록 그 개념화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시. 이렇게 비겁한(^^;;)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김민정의 시집을 덮었다. 현실로서의 시, 세속에 파묻힌 시, 난해하고 어려운 예술작품으로서의 시가 아닌 삶의 표현양상으로서의 시집의 매력을 되새기면서. 


근데 그녀는 했다


양망이라 쓰고 망양으로 읽기까지


메마르고 매도될 수밖에 없는 그것


사랑이라


오월의 바람이 있어 사랑은


사랑은 멀리 있어 슬픈 그것(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