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확실히 쉽게 쓸 수 있는 한 쉽게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생각이 쉽게 표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생각 자체가 나쁜 것이거나 반민중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어렵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생각이 이 세상을 억압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생각이 억압을 받고 있다고 해야 옳다. 어렵고 까다로운 글보다 간단명료한 구호 투의 말들이 사람들을 더 억압해왔던 예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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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지적 상태와 정신 상태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말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물론 지식인이 만들어내고 학문이 만들어낸다. 학문의 어떤 부분에 어려운 말을 많이 써야 한다면 그 부분이 민중과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겠으나, 그 학문 전체를 놓고 본다면 민중과 만나는 부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민중과 멀어진다고 해서 그 부분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는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뿐이다.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장 주네는 "자신이 배반자라고 여겨질 때 마지막 남아 있는 수단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도 아마 이와 관련될 것이다.(273~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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