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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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1. 

이 글은 이 책의 옮긴이가 마지막 부분에서 했던 얘기 때문에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옮긴이인 김지선 씨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근에 과연 독일 문학이 읽힐지 의문스

럽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 반드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

다. 나는 옮긴이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독일 문학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이 꾸준히 독일 문학을 읽는 이들은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옮긴이가 걱정을 품는 것

은 괜찮지만, 걱정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라고. 따라서 나는 나의 결심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쓰고, 다음에 읽을 독일문학의 제목까지 여기에 쓰기로 했다. 다음에 읽을 독일문학은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다. 책을 읽고 기회가 된다면, <에피 브리스트>의 감상문을 올려보

도록 하겠다.(나의 고질병인 게으름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

이 책의 저자가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독일 최고의 스타 문학비평가, 독일 문학의 교황

이라는 <작가의 얼굴>의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비평가의 역할이란 문학과 대중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비평가의 첫째 임무는 정직함이고, 명료함은 예의이며, 비평

가는 항상 대중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비평가들만 알 수 있는 글이나 동료 비평가와

작가들에게 영합하는 글을 거부하고, 동료 비평가들과 작가들의 온갖 비난과 공격, 논쟁에 굴하

 않고 자신만의 명료하고 명징한 글을 쓰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불가침의 영역은 

다면서 신랄한 독설을 날렸고, 권위 따위는 무시하며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으며, 사람들에게 잊힌 작가와 작품들을 어떻게든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에게도 문제점은 있다. 정직성과 명료성을 글의 모토로 하는 사람답게, 그의 글은 일정

정도의 단순화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강력한 주관성과 강력한 단언들로 채워진 글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평론이 언제나 독서대중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비평가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나는 <작가의 얼굴>을 통해서 그의 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글에서는 어려운 이론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개념과 관념과 단어들도 없었다. 그는 그저 작가의 작품, 작가의 삶, 작가와 동시대인들의 사회문화적 배경, 자신의 삶과 작가의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통해서 독

일 문학을 수놓은 작가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의 글에서 알 수 없는 난해하고 현학적인 부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단지 독일 역사와 독일 문화, 독일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이 글이 독일 독자들을 상정하고 쓴 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은 특유의 표현, 리듬감과 경쾌한 속도감으로 흡입력과 가독성

뿐만 아니라 문학성도 놓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읽는 맛이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소개한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3. 

그래서 나는 독일 문학으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할 생각이다. 그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먼저 걸어간 길을 그를 뒤따라서 걷는 행위이자, 그가 걸어가면서 경험한 것들을 얘기 듣고 나도

따라 걸으며 다시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물론 그때의 나의 경험은 그와는 다른 나만의 경험이 될

것이다. 나에게 남은 건 걷는 것일 뿐. 나는 이제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로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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