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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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소포클레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인들의 삶과 이어진다. 그리스인들의 삶의 정수인 그리스 비극. 거기에는 그들의 종교성과 철학과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들이 이룩한 문화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의 삶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작가에 따라서 이것은 조금씩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아이스퀼로스는 조금 더 종교성에 치중해 있고, 에우리피데스는 기존의 전통과 질서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담아서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비극을 만들어냈다. 에우리피데스와 아이스퀼로스의 중간 영역에 위치한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그들 두 사람과 구분되는 비극을 만들며 진정 그리스 비극다운 비극, 아테네 삶의 총화인 비극, 그리스 비극의 정점에 도달한 비극으로서 존재한다. 그의 비극은 아테네 문화와 가치를 추종하는 아이스퀼로스의 경직성보다는 유연성을 드러내며, 에우리피데스의 회의적인 시각과는 달리 안전하고 정련된 언어로 전성기 아테네의 자신감과 그들이 이룩한 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소포클레스는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인간 자신의 오만으로 인해 파멸하면서 그 파멸을 받아들이는 인간을 넘어선 인간의 모습을 비극 속에 그리며, 인간이 신의 의지와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교만하고 오만하기보다는 겸손하고 세상을 두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비극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건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그 자신감을 경직된 믿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적인 언어로 표현해내는 예술적인 몸부림이었다. 비극적인 아름다움, 애달픈 슬픔, 지나치게 인간적이어서 영웅적이고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장중함이 이룩한 비극이라는 예술의 힘은 그리스 신전을 지탱하는 기둥들처럼 비극이 아테네의 전성기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아테네를 떠받친 이 기둥은 소포클레스 때에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그러나 벚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 지는 것처럼, 아테네도 화려한 전성기의 뒤안길에서 몰락의 길을 걸어간다. 강력했던 힘은 사그라지고, 화려하게 꽃피던 문화도 정치적 혼란과 몰락의 영향 속에서 그 힘을 점차 잃어가고, 사람들은 과거의 힘과 질서를 잊고 혼란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아테네 전성기의 산증인으로서 아테네의 힘과 가치를 굳건히 믿던 소포클레스는 죽기 전에 자신이 가진 힘을 다끌어모아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지어서 전성기 시절 아테네의 목소리로 외친다. 아테네의 힘을 믿으라고. 하지만 이 노거장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흩어지고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테네는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하고 몰락한다.

 

나는 이 책에서 아테네인들이 들었어도 되돌릴 수 없었던 내용이 담긴 목소리를 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전했던 목소리는 이제 내용의 의의는 사라졌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히 간직한 채 전해졌다. 그건 이천 년의 시간을 넘어 고대의 그리스인들이 현대인에게 전하는 아름답고 찬란하고 비극적이며 애달픈 예술적 목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목소리가 남긴 비극적 잔향을 느끼면서 나는 힘이 있는 예술은 시간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시간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언제나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틀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을 넘어서 전해진 목소리와의 조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 있는 예술이 하나의 기적이라는 사실 또한 알려준다. 지극히 당대의 기준에 부합했던 예술이, 시간을 넘어서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감동을 준다는 건 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처럼 과거라는 시간은 소포클레스를 통해 내게 전해지고 현재를 거쳐 다시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실과 더불어 지극히 현재적인 것이 초시간적일 수도 있다는 또다른 시간을 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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