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응물시선 - 당대편 106 중국시인총서(문이재) 106
권호종 지음 / 문이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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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위응물 시선-위응물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씁니다. 이것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며,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항상 낮은 데로 임하는 물의 덕(德)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위응물의 시들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오르더군요. 시가 인위적이거나 화려하거나 날카롭거나 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일 겁니다. 사물을 표현할 때도, 인간의 모습을 그리거나 삶을 형상화할 때도,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때도 위응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담담한 언어로서 시를 썼습니다. 마치 원래부터 그러했다는 듯이, 자연의 이치로서 그렇게 되었다는 듯이.

 

그의 시는 흘러가는 물이 자연과 인간의 삶을 흘러가서 시인의 붓끝으로 스며들어 그것이 다시 한편의 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그의 시를 읽다가 시 속에 스며있던 물이 제 마음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꼈거든요. 어쩌면 그건 저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위응물의 시는 자연스러웠고 부드러웠습니다. 그건 세상을 초월한 신선 같은 이백의 시들도, 민중의 고단하고 슬픈 삶을 표현한 두보의 시들도, 세상을 벗어난 은둔자의 정서를 드러낸 왕유의 시들도, 요절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귀기로운 세계를 창조해서 화려하게 표현했던 이하의 시들도, 미치지 못한 위응물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지였습니다. 안사의 난 이후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중당 시기의 삶을 살며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과 현실적인 욕망 사이에서 흔들렸던 위응물은 자신의 그런 욕망을 그저 덤덤하게 시로서 그려나갈 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지속적으로 관직에 나갔고, 그 때문에 현실의 욕망과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욕망과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 사이의 갈등을 그 자신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밖에 없었기에 그 자신의 시가 자연스러움을 획득했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는 벗어나고 싶음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신의 정서와 느낌을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또 그때의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현실을 살면서 보이는 현실의 모순과 잘못을 비판하고 싶을 때에는 또 그에 맞게 표현하는 것. 이것이 위응물 시의 자연스러움입니다. 언제 어떤 때라도 그는 능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식으로,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식으로 시를 써내려 갑니다. 한쪽 발은 현실에 두고, 한쪽 발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에 두고, 양발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자연스러움의 표출로서의 시. 이것이 위응물 시의 ‘자연스럽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일 겁니다. 그러니 그의 시가 물같다고 느껴질 수밖에요. 그의 시가 저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대리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 시를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읽고 나서 보니 위응물의 시가 가끔 너무도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마음 속의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게 힘들고 고단할 때, 삶에 치여 나 자신의 자연스런 욕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다가 그것이 생각날 때, 그의 시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의 시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나 자신의 자연스려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다는 말이자 잃어버린 자연스러운 나 자신을 되찾게 해주는 시원한 물같다는 얘기입니다. 물처럼 그의 시를 가끔 마시며 저 자신을 되찾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습니다.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런 행복은 하나의 독서행위가 가져다주는 행복이겠죠. 아니 어쩌면 그 행복은 오래 전에 살다간 사람이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긴 ‘오래된 미래’로서의 선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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