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별을 먹자 - 일본 세계숨은시인선 4
나나오 사카키 지음, 한성례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 별을 먹자 - 나나오 사카키

 

 

1.

순수하고 열정적인 시들을 좋아한다. 신선 같은 품격을 풍기며 아이 같은 동심의 세계와 이 세상을 넘어선 초월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이백의 한시와, 순수한 열정과 세상과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이상을 가열차게 노래하는 월트 휘트먼의 시와, 평범한 일상의 삶을 소재로 삼아 순수하고 아이같은 삶의 면모를 노래하는 프랑시스 잠의 시와, 극도의 불운하고 슬픈 삶을 살았지만 일상의 평범한 사물과 삶을 통해서 삶의 풍경을 슬프지만 즐겁게 만드는 힘을 간직한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 같은.

 

 

이제 여기에 또 한명의 시인을 추가해야 겠다. 나나오 사카키. 우리 별을 먹자고 외쳤고, 죽을 때까지 전세계를 무소유로 돌아다니며 배낭 하나를 유품으로 남겼으며, 지구와 지구의 자연과 지구의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인간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과 그 생명들이 포함된 지구와 지구를 포함하는 모든 별들이 포함된 우주가 하나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아서 그 하나됨을 삶으로서 표현했으며, 전쟁과 살육과 폭력과 환경 파괴로 얼룩진 현대 문명을 풍자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해서 그 감정을 시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표출한,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는, 자유인이자 방랑자이자 무소유의 철학자이자 실천가이자 전 세계를 고향으로 삼은 유목민이자 자연인인 시인.

 

 

2.

그의 시를 읽었다. 정확하게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만났다는 표현이 옳겠다. 삶과 시가 하나가 되는 시인이 ‘걷기의 신’인 발바닥 따라서 걸어다니며 움직인 삶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노래라는 흔적으로 남겼고, 나는 거기에 운좋게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운명의 힘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내게 남은 것은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삶을 맛보고 느끼며, 그의 삶과 시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그와 같이 우리 별을 먹었고, 그와 같이 걸어다녔고, 그와 같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고하고 상상했으며, 그와 같이 자연을 집이자 벗이자 연인으로 삼았으며, 그와 같이 자연의 아픔을 공감하며 아파했으며, 그와 같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문명사회의 모순적인 면모를 풍자하고, 그와 같이 숲에 살며 자아와 자연의 부자가 되었고, 그와 같이 세상을 세상 그 자체로 느끼려 했다.

 

 

자연과 세상과의 하나됨이 불가능 현대라는 시대에 이런 경험은 그 자체가 기적이고 경이다. 아니, 그것은 선물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자연에서의 삶은 지속되고 있는 한 시인이 후대에게 보낸 선물. 평가하거나 분석하려고만 하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마음과 마음, 삶과 삶을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마음과 삶의 선물.

 

 

3.

어느새 시인은 나에게 너가 되어 있었다. 불특정 다수의 타인이 아니라 내 곁에 서 있는, 나와 함께 하는 너. 당신이 아닌 ‘너’라는 의미 속에, 내가 시를 읽으며 느꼈던 행복과 즐거움과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서 외쳐본다. 너라는 존재가 된 시인이여, 살아줘서, 시를 남겨줘서, 그것을 내게 가닿게 해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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