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결혼 민음사 세계시인선 46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김종철 옮김 / 민음사 / 1990년 10월
평점 :
품절


 천국과 지옥의 결혼-W. 블레이크

 

 

 

 

지금 분명히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전쟁 때문에, 질병 때문에, 폭력 때문에, 우울증이 심하기 때문에, 세상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범죄 때문에, 가난과 빈곤에 의해서 굶주림을 겪고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범주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죽음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시인은 다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의 범주를 넘어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에, 도처에서 넘쳐나는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 그도 마찬가지였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는 블레이크가 도처에서 넘어나는 죽음을 모른 척 하고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대 영국이라는 시대 속에서,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속한 산업화 때문에 생겨난 변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급격한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빈곤과 가난과 폭력과 범죄가 넘쳐나는 도시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던 블레이크는 그곳에서 비명을 들었다. 그에게 런던은 공포와 비명이 가득한 공포의 도시였다.

 

 

 

‘사람마다의 울음 속에

모든 어린아이의 공포에 질린 울음 속에서

모든 목소리와, 모든 금지령 속에서

나는 인간이 만들어 낸 굴레를 듣는다.‘

 

 

 

도처에서 들리는 비명과 도처에서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라도 블레이크는 시를 쓰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판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를 쓰고 판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만들고 만들어도 그에게 들리는 비명이 줄어들지 않았고, 눈앞에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결국 블레이크는 자신만의 독특한 신화체계를 구성하고 그 속에 빠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신화적 세상을 창조하고 그것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상상해야만 했다. 그의 후기 시들에서 그의 독특한 신화적 체계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그것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진정 간절히 세상이 변화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바람과는 달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의 망막 앞에서 어른거렸고, 사람들의 공포의 비명은 그의 귓가에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고, 죽음이 다가와서야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죽음이 다가와서야 평안을 찾은 시인.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평생 무명과 가난과 빈곤 속에서 살아야 했던 블레이크가 눈을 감자, 그가 토해냈던 시의 흔적들 또한 거대한 망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19세기 중엽에 라파엘전파에 속한 예술가들과 테니슨 같은 시인들이 그의 시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들이 블레이크의 시들을 발견하자, 그의 시는 세상에 거대한 용트림을 하며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나 여기 있다고. 여기 세상의 죽음을 그냥 넘기지 못한 시인의 영혼의 울림이 있다고.

 

 

 

‘어리석음이란 하나의 끊임없는 미로,

얽힌 뿌리들이 길을 어지럽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기에 빠졌던가!‘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만난 시들이 망각의 심판을 극복한 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더군다나 그 시들이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얘기하는 영혼의 울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나 스스로가 위안 받았던가. 여기에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그냥 넘어가지 못한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감정들은 이내 블레이크가 느꼈던 아픔과 고통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가 느꼈던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낄 수 있는 만큼만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느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느낌을 가져보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진짜 블레이크가 아닌 작은 블레이크가 돼서 ‘천국과 지옥의 결혼’을 상상력으로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이 모든 것들이 블레이크의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시들이 초래한 일이기에. 덧붙여서 블레이크의 영원의 울림이 계속해서 이 세상이라는 어두운 골짜기에 계속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나는 속이 빈 갈대를 꺾어

 

그것으로 전원의 붓을 만들어

그리고 맑은 물을 물들여서

모든 아이가 듣고 기뻐하도록

내 기쁨의 노래들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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