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민음사 세계시인선 25
T.S.엘리어트 지음, 황동규 옮김 / 민음사 / 197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황무지- T. S. 엘리엇

나는 책을 사랑한다. 이 사랑은 내가 읽었던 책들과 읽고 있는 책과 앞으로 읽을 책 모두를 포함한다. 나에게 있어 책에 대한 사랑은 불평등이 없는 공평하고 공정한 사랑이다. 그러나 때로는 나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온다.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책들, 지독한 편견에 물들어 있는 책들, 자신만의 주장이 옳다는 책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책들을 읽을 때는 사랑의 감정이 시들어버린다. 그럴 때 나는 책과의 지독한 대화를 시도한다. 책들의 주장의 문제점을 파고들어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책에 대한 나름의 개선방안을 요구한다. 물론 언제나 내가 지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책들이, 책의 내용들이 나의 마음을 울리고 나의 영혼을 파고든다면 나는 그 울림과 균열에 따라 나 자신을 반성하고 바꿔나가려고 노력한다. 책을 쓴 저자와의 내적이고 긴밀한 영혼의 대화.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은 내 사랑의 위기를 극복하게 돕는다.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었을 때도 내 사랑에 위기가 찾아왔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인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 시는 내게 무엇을 속삭이고 있는가? 그러니까 모든 질문을 종합해보면 ‘도대체 이 시는 뭔가?’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이건 뭔가?’이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황무지, 너는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내 질문에 『황무지』는 어떤 대답도 없이 지긋이 자신의 시어를 내밀 뿐이다.

 

:갑자기 『올드보이』의 최민수 형님의 대사가 떠오르더라. ‘누구냐 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은 뿌리를 봄으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P.46)

 

이 내밀한 시어의 속설을 들여다보며 나는 ‘황무지’의 세상을 만난다. 내적인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이성을 이용한 정련되고 정제된 시어가 가득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의 세상, 죽음을 통한 재생이 불가능한 불임과 진짜 죽음과 정신적 메마름이 가득한 황량한 현대의 세상, 고대의 시어들이 현대의 시어와 표현들과 병렬되어서 다양성이 꽃피는 콜라주의 세상. 이 모든 세상을 통해서 도시적 감성의 차가운 시인 엘리엇은 현대라는 시대의 황량함을 보여주며 우리가 황무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 마음에 속삭인다.

 

살아 있던 그는 지금 죽었고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간다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P.102)

 

재미있는 사실은, 세련되고 이성적인 창작 기법과 시어를 사용하며 20세기 영미 시단의 모더니즘을 주도한 대표주자로서 꼽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이 과거의 순박하고 단순한 전원 사회를 꿈꾼다는 점이다. 그의 언어와 창작 기법은 모던하지만 그의 지향점은 과거라는 사실은, 그의 복고주의가 내용은 복고주의지만 표현은 모더니즘이라는 사실 앞에서 역설을 드러낸다. 알다가고 모를 것 같고, 모르다가도 알 것 같은 시를 쓰지만 그의 시가 그려내는 꿈들은 우리 누구나가 꿈꾸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 황무지의 놀라운 역설을 접하고서 나는 힘이 솟는다. 나의 황무지에 대한 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이들 이미지들 주위로 웅크리고, 그리고

달라붙는 심상들에 내 마음 끌린다:

어떤 한없이 순하고

한없이 아파하는 것에 대한 생각.(P.38)

 

베르테르의 사랑이 자살로 결론 나고, 페트라르카의 사랑이 언제나 시로서 표현되고, 단테의 사랑이 『신곡』을 만들어낸 것과는 달리 내 『황무지』에 대한 사랑은 『황무지』를 계속 읽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사랑이 쉽지 않지만 나는 계속해서 읽고 또 읽으리라. 그러면서 황무지의 세계를 접하다보면 이전보다 더욱 더 황무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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