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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사랑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하는 이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랑은 맹목적인 믿음이나 맹신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랑은 오히려 분별있음을 지향한다. 이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느끼고, 음미하며, 공감하며, 이해하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목소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품에 안으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품에 안지는 않는다. 나의 이 사랑은 호르몬의 폭발이 아니라 머리와 머리의, 가슴과 가슴의 교감이다. 나의 이 사랑은 불꽃처럼 확 타오르다가 꺼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되는, 영원을 향한 몸부림이다. 나의 이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꾸준히 말을 건네고, 대화하면서 티격태격하고 자신들의 무언가를 나누는 몸짓이다. 이 사랑은 내 마음속의 얘기들을 꺼내는 장이자 은밀한 비밀을 주고받는 장이다. 이 사랑에 스킨십은 없지만 영혼의 교감은 풍부하다. 아마 이쯤 얘기했으면, 이 사랑이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인지 알아차렸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굳이 확인해보자면 내게 이 사랑은 책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한 몸부림으로서의 독서. 책을 쓴 이들이 글과 종이에 남긴 영혼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독서. 그 영혼의 흔적과 교감을 나누고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행동으로서의 독서. 내게 독서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내가 독서라는 사랑의 행위를 하는 순간 책은 단순히 종이에 글이 쓰인 종이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대상이 된다. 이때 책은 무생물이 아니라 책을 쓴 저자가 보여주는 삶의 가능성, 저자 스스로의 삶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삶의 모습이 된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책에 대한 사랑은 바로 그런 삶의 모습과 가능성들에 대한 사랑이기에 책을 사랑한다는 건 삶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나의 독서는 이런 삶의 모습과 가능성들에 대한 사랑을 꿈꾸기 때문에 치열한 대화를 지향하고, 치열해야한 한다. 삶의 모습과 가능성들에 대한 사랑이 무심하거나 맹목적이라면 그 삶의 모습과 가능성들에게 얼마나 미안한가? 그래서 나의 독서는 어떻게든 책에 대해서 꼬치꼬치 질문하고 치열하게 대화하는 행위가 된다. 이것은 나의 책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에 대한 독서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선 나는 이 책을 즐겼다. 현대의 빠른 삶이 아니라, 산에서 백년을 내다보고 살아가는 임업 종사자들의 느린 삶을 만나면서, 현대의 강박적인 빠른 삶에서 벗어나 한번 숨을 쉬어보고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환경 친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느린 산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건 너무나 느리고 따스하지만 치열한 면도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도시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생각함으로써 우리의 삶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친근하면서도 편안한 미우라 시온의 문체와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것을 만끽하면서 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렇게 무균질의 이상화된 낯선 공간으로서의 산이 과연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공간에도 과연 이 소설처럼 단점과 모순이 없는 것일까? 자연과 함께하는 삶도 삶의 하나라면 언제나 좋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공간이든지 그것만의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생각하니 이 소설의 모습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그저 이상화된 자연 공간에, 도시의 삶에 지친 도시인들을 인도해서 쉬게 해주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도시의 삶과 반대로서의 삶에 대한 갈망이 담간 소설. 하지만 현실은 아마도 다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나아가자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급브레이크를 건다. ‘그것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자연 친화적이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낭만적 꿈을 형상화한 휴식 같은 소설에 더 이상의 딴지가 필요할까’ 하고. 어쩌면 나는 너무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런 행위가 나의 독서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사랑의 행위의 일부라는 사실. 질문은 나의 독서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며, 나의 사랑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든다. 그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이 글을 마친다.